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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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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98. 달은 살아있다 98. 달은 살아있다 이영백 달이 살아있다는 것을 아는가? 비록 지구에서 약38만Km 떨어져 있지만 걸어가면 약 11년이나 걸려야 도착한다니 숫자에 무딘 나로서는 감이 안 온다. 도회지 살면서도 간혹 하늘의 달을 찾는다. 일 년 중 가장 밝은 정월 대보름달에는 아직도 달의 고마움에 돗자리 깔고 절 올리던 시골생활이 생각난다. 도시에서 달은 나의 거창한 일의 결정 때에 마음속으로 물어본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달빛은 창호지 문에 뭔가 주는 고상미를 그림 그리듯 나뭇가지 그림자를 연출하고, 풀벌레가 찌르르 울어 예는 소리로 들리는 듯하다. 우리들 정서에 많은 이로움을 달과 달빛이 그냥 준다. 달은 살아있다. 그믐에서 초이튿날까지 숨어 있다가 초사흘이 되면 어김없이 서쪽 하늘에 눈썹달로 뜬다. 초승달은 ..
(엽서수필) 97. 밥 먼저 먹어라 97. 밥 먼저 먹어라 이영백 “얘들아! 밥 먼저 먹어라” 예전에는 이러한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요즘 공정시대가 꽃핀 사회에서는 아이가 먼저 숟가락을 들고 퍼 먹어도 어느 누가 나무라지 않는다. 이 얼마나 세상이 정말 공정한 사회가 되었는가? 가부장시대에 태어난 우리들은 평생 아버지가 계시는 밥상머리에서 아버지 숟가락 들기 전에 아이들이 먼저 먹을 수 없었다. 아니 상상도 못하였다. 그러한 식사예절은 어머니의 시어머니, 그 시어머니의 시어머니로부터 익히 알고 있었던 상식의 예절이었던 것이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놈이라고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만 하였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식사시간만치 고마울 수가 없을 것이다. 예부터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산다.”하지 않았던가. 그래. 배고프면 먹어야 한다..
(엽서수필) 96. 소나기 맞자 96. 소나기 맞자 이영백 인생에서 행복은 소나기는 맞을 일이다. 물론 우산도 없이 다니다 보면 그날 일기에 따라 소나기 맞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소나기 맞기를 싫어할 것이다. 비가 아닌 행복의 소나기는 없겠는가? 흔히 세상의 남자라면 세 가지를 갖고 다녀야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돈, 우산, 거짓말이다. 남자라면 돈이 있어야 큰소리를 칠 것이다. 남자는 일기예보에 상관없이 우산을 가지고 다니면 비록 햇볕이 나더라도 그늘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선의의 거짓말은 꼭 필요하기도 하다. 소나기는 고향에서 “소내기”라고 한다. 혹은 비로 말할 때 “소낙비”라고도 한다. 한자로는 “취우(驟雨)”라고도 한다. 한자에 ‘달릴 취(驟)’자가 보인다. 소나기가 오면 소, 말, 아이들, 사람들도 모두 달린..
(엽서수필) 95. 이제 서다 95. 이제 서다 이영백 나는 늘 입버릇처럼 발하는 것이 있다. “나는 겨자씨만큼 작은 지식이라도 알고 있는 것은 남에게 그냥 가르쳐 주고 싶다.” 교육대학 다닐 때 노교수는 남학생들에게 늘 일러 주신 말씀이 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송충이가 솔잎 먹지. 다른 것 먹을 게 있을 것인가”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교육대학 졸업하고 교사발령 받고 보니 1/3이 교직을 떠나 버렸다. 솔잎 안 먹고도 산다. 나도 교직을 버리고도 늘 옛날처럼 교탁 앞에 서는 것이 그리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늘 머리 한 부분에서는 그렇게 생활하고 싶었던 여러 장면들이 수시로 떠오르거나 꿈에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자주 나타나고 하였다. 한편은 못 다한 문학의 쏠림현상을 억제하지 못하고 ..
(엽서수필) 94. 안목 있다 94. 안목 있다 이영백 부모님의 생활이 곧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입힌다. 특히 부모의 직업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1세대가 철저하게 노력하고 투자하여야만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나의 아버지는 농부였다. 아버지의 직업을 탈피하고자 나는 한 세대를 몸 받쳤다. 강릉에는 안목(“앞 목”인데 “마을 앞”뜻)항구가 있다. 사람살이에 가장 중요한 말이 ‘안목(眼目)’이라는 말이 있다. 안목은 바로 ‘사물의 좋고 나쁨 또는 진위나 가치를 분별하는 능력’을 말한다. 안목의 진실을 안다면 세상 살아가는데 안목을 키울 일밖에 없다. 지인이 재개발 ㆍ 재건축 된다고 평생 붙들고 산 집을 너무 오래 기다리다 지쳐서 그냥 팔고 나갔다. 그러자 집 팔고 나간 지 한 달도 안 되어 그곳이 재건축으로 고시되고 개발되었다. 안목이 사라진..
(엽서수필) 93. 이목 끌다 93. 이목 끌다 이영백 흔히 세상에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많다. 한 가지는 너무 남의 주의나 시선을 끌어 괴로운 “이목(耳目)집중”의 경우이며, 다른 한편은 너무 남이 알아주지 않아서 “자기평가가 떨어지는 경우”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세상을 사는 데는 서로 장ㆍ단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므로 적당히 중용(中庸)을 취하며 살아갈 일이다. 초짜선생으로 발령이 났다. 본래 그 자리는 여선생님 TO이었다. 학년 당 한 학급뿐인 소규모학교에서는 그 구성원 발령을 교육청에서 잘 내주어야 하였다. 나는 5월 1일자 중간발령으로 그 규칙대로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교장, 교감(2학년), 교무(최고경력자, 3학년), 老선생(4학년), 여선생(1학년), 경력자(5ㆍ6학년) 등으로 마치 정해진 발령이라야 하는데 ..
(엽서수필) 92. 백두산 등척기 92. 백두산 등척기 이영백 연변 대평원의 길을 봉고로 달린다. 어둑해지면서 전깃불이 군데군데 밝아지고 장백산 산문에 들어섰다. 백두산 밑 호텔에 도착하였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비 내린다. 여인숙 같은 호텔이 눅눅하여도 고된 하루로 잠든다. 아침잠을 깨서 비룡폭포 보러 10여 분 걸었다. 해발 1,700m! 온통 안개구름 속 무진기행이다. 목책다리 아래 흐르는 유황 온천물에 오리 알을 삶는다. 철제계단 올랐으나 “비룡폭포”우리 말은 사라지고, “장백폭포”라는 중국표지 앞에서 사진을 촬영하였다. 안개 속에 물소리만 들린다. 그러다 갑자기 강렬한 햇빛이 비친다. 장엄한 흰 폭포가 쌍 갈래로 하늘에서 물동이로 내리 퍼붓는다. 천애단애 비류직하 하얀 비단으로 68m 높이에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친다. 바닥에는 둥근..
(엽서수필) 91. 나의 정체성 91. 나의 정체성 이영백 사람으로 태어나서 가끔 멍 때리고 사는 경우가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왜 살아가는가? 사람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결과적으로 너무나 많은 화두(話頭)를 발화하고 그 답을 찾지 못하며 꾸물대고만 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러다가 죽었겠지. 고교를 2년 늦게 다녔다. 1968년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은 봄 교정에 “큰 나의 밝힘”이라는 석비(石碑)를 세우고 건립 고유제하는 것을 보았다. 왜 이런 비를 건립하는가라고 좀 낯설게 생각하였다. 물론 제자(題字)에는 “큰 나의 밝힘”이었다. 비문 속에는 “나란 나의 힘으로 생겨난 내가 아니다. 나란 나만으로서 있을 수 있는 내가 아니다. 나란 나 만에 속한 내가 아니다.”라고 돌에다 새겨 두었는데 깊은 뜻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