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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늚이의 노래 1

(엽서수필) 98. 달은 살아있다

98. 달은 살아있다

이영백

 

 달이 살아있다는 것을 아는가? 비록 지구에서 약38Km 떨어져 있지만 걸어가면 약 11년이나 걸려야 도착한다니 숫자에 무딘 나로서는 감이 안 온다. 도회지 살면서도 간혹 하늘의 달을 찾는다. 일 년 중 가장 밝은 정월 대보름달에는 아직도 달의 고마움에 돗자리 깔고 절 올리던 시골생활이 생각난다. 도시에서 달은 나의 거창한 일의 결정 때에 마음속으로 물어본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달빛은 창호지 문에 뭔가 주는 고상미를 그림 그리듯 나뭇가지 그림자를 연출하고, 풀벌레가 찌르르 울어 예는 소리로 들리는 듯하다. 우리들 정서에 많은 이로움을 달과 달빛이 그냥 준다.

 달은 살아있다. 그믐에서 초이튿날까지 숨어 있다가 초사흘이 되면 어김없이 서쪽 하늘에 눈썹달로 뜬다. 초승달은 무섭다. 시골에서는 호랑이가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집을 바꾸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초사흘 눈썹달이 무서웠던 것이다. 숨어 있었던 달이 반달(상현)이 되면 어슴푸레한 달빛에 처녀총각 연애하기 좋은 밤이었다. 그런 일 모두 거쳤다.

 달은 보름달에서 가장 밝은 빛을 우리들에게 반사로 선사한다. 어느 누가 그렇게 하늘 높이 매달아 은은한 조명을 가슴깊이 전해 줄 수 있으랴. 특히 청상과부의 마음을 흔드는 교교한 달빛은 예전부터 참지 못하는 사랑의 애증을 느낀다. 그러하던 보름달도 기울면 차츰 반달(하현)로 사그라지면서 마음의 깊은 곳을 아파한다. 그믐달이 오면 칠흑 같은 밤이 싫다. 아무도 공중에 매달아 주지 않았기에 내 마음까지 캄캄하였다.

 달은 다시 살아난다. 살아났다. 이는 주기적으로 돌아온다. 달은 28주기로 여성의 달거리와 같다. 여성의 젊음을 발산한다. 마치 달처럼 초승달에서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처럼 잊지 않고 주기적으로 죽었다 살았다 한다. 그 주기에 젊은 여성인 처자들은 사랑의 고픔을 지극히 고통으로 참는다. 그 고통의 마지막은 마침내 사랑하는 낭군을 만나 세상의 극락한계치를 내리 받아 참한 후손을 낳는다. 아들이나 딸이면 어때 요즘은 똑같다.

 달은 요사스럽다. 아무런 감정도 없었던 총각을 후려치고 천지 풍파를 만들어 유혹한다. 달은 요염하다. 달빛으로 출렁이는 사랑을 간질이며 터져버리고야 말 청춘의 표상이 꽂힌다. 사랑의 큐비트를 얻었다. 요사스러운 달이 살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28일이란 주기에 따라 초승달로 마음을 흔들었고, 상현에 멈추지 못하고 만월이 되었다가 하현으로 사라지는 달은 살아 있기에 분명 다시 뜬다.

(20200708. 정보보호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