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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2/4다마 계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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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2) 118. 4다마 "계룡산"을 탈고하면서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118. 4다마「계룡산」을 탈고하면서 이영백 글 쓰면서 한 고비를 넘는다. 마을 뒷산, 계룡산을 오르내리면서 인생을 얽어 살아왔다. 누가 물어왔다. “계룡산에 대하여 무슨 글을 그리 오래 쓸 수 있느냐?”고. 사실 그랬다. 처음 시작할 때는 막연하였지만 글 쓰고, 산 오르고 하다 보니 참 인생을 알아버렸다. 살았던 인생을 알았다. 수필은 묘하다. 지난 삶을 돌아보아도 좋고, 현재를 탄하여도 좋을 것이다. 사람 살아가는데 흔히 자기 고생을 글로 쓰면 책이 몇 권이나 될 것이라고 장담하면서도 평생 책 한 권 못 쓰고 죽고 말았다. 쓸 수 있으면 글로 표현하라. 그리고 책도 만들어 후손들에게 유훈처럼 전해 주라. 내가 그렇게 살았다고. 글을 쓰면 그렇게 살아왔던 흔적..
(엽서수필 2) 117. 올라가 봤으니 내려와야지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117. 올라가 봤으니 내려와야지 이영백 내가 사는 동네에 작은 동산인 계룡산이 있다. 그곳을 요즘 근래에 와서 “야시골공원”이라고 구청에서 명명하고, 편백나무도 심고 가꾸어 놓았다. 아울러 흙길을 조성하여 맨발로 걷기 할 수도 있다. 순환로(A, B)가 각 350m로 두 곳을 돌아오면 700m이다. 왕복하면 딱 1.4km로 젉은이로서 운동하기에 좋다. 매일 이곳을 올라가 봤으니 이제 내려온다. 도심공원 산 정상에 올라서 생각해보니 이곳으로 오르내린 것이 마치 사람들의 삶이었던 인생 같았다. 내가 오르내리면서 치열한 삶의 현장을 오르내린 것과 진배없다. 그래서 더욱 야시골공원이 좋았던 모양이다. 인생의 첫걸음은 촌사람으로 살면서 헐벗음 그대로 살았다는 표현이 맞..
(엽서수필 2) 116. 자문자답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116. 자문자답 이영백 나는 무종교다. 그러나 어려서 엄마 따라 절에 자주 갔다. 그렇다고 종교가 “불교”인 것은 아니다. 다만 통달의 원리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종교적 설파방법을 이용할 뿐이다. 티베트에서 스님이 되고자 공부하는 방법이 있다. 즉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배워 자신에게 묻고, 스스로에게 답하여 해탈의 경지로 이르게 하는 것이다. 마치 옛날 서당식 문리(文理)틔우기 방법과 일치하는 것 같다. 나는 무엇에 통했기에 자문자답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겠는가? 남을 가르치는 방법을 배웠기에 알고 있는 이론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라”가르칠 뿐이다. 수필 쓰는 것을 자신의 일상 드러냄에 불안하거나 공개가 어려..
(엽서수필 2) 115. 엽서수필의 답변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115. 엽서수필의 답변 이영백 수필이 나를 말한다. “엽서수필”씀이 말한다. 비록 짧은 수필이지만 갖출 것은 모두 갖추고 세상으로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 자꾸 장르로 굳히어 간다. 짧은 수필인 엽서수필을 계속 쓰고 있다. 지금도 엽서수필을 쓴다. 글을 쓴다. 수필을 쓴다. 짧은 수필인 엽서수필을 쓴다. 누가 묻는다. “왜 그렇게 내일 죽을 것처럼 글을 써 대는가?”라고. 그렇다 글을 쓰지 않고는 하루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손목과 팔을 아파하면서도 글 쓴다. 글은 곧 나의 분신이다. 내가 사회에 뒹굴고 살아왔던 궁색한 삶의 궤적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마치 곤충이 제 허물 벗듯 그 흔적을 남기고 싶기 때문에 글을 쓴다. 또 글을 쓰면 재미나다. 그 기억으로..
(엽서수필 2) 114. 계룡산 혼에 빠지다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114. 계룡산 혼에 빠지다 이영백 시골에 살던 사람이 그렇게 애 답다워 하면서 산 이름을 찾았다. 조그만 구릉(丘陵) 같은 산, 계룡산(溪龍山)이다. 그 산에는 희로애락을 함께 부둥켜안아 주는 산이다. 괴로워도 그 산속으로 쫓아 들어가면 저절로 신기하게도 속이 후련해지고, 즐거운 사람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서 삶의 활력소를 만들어 준다. 마치 “나는 자연인이다”하듯 자가 치유가 된다. 분명 좋은 혼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 오르내리면 저절로 계룡산 혼에 빠진다. 흔히 “계룡산에 등산 다닌다”고 하니까 웃으며 “공주까지 멀리 가느냐?”고 되묻는다. 아니 “나는 대구 계룡산에 오르 내린다”고 하니까 대구에서도 그런 산 이름이 있느냐고 다시 묻는다. “예. 있습니다...
(엽서수필 2) 113. 누구 탓하지 말자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113. 누구 탓하지 말자 이영백 어떤 종교에서는 “모두가 내 탓이요!”한다. 세상사 모든 것이 내 탓으로 돌리면 행복해질 것이다. 나도 그렇게 해볼 냥으로 결정해도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 아마도 성인군자가 아니면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 짧은 한평생에 누굴 탓하고 살랴! 내 탓으로 하고 살자. 이제껏 누구를 탓하며 살아왔던가? 또 누구를 탓하며 살아가야 하였을까? 가장 좋은 해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 이 세상에 살면서 명답은 다름 아닌 남을 탓할 내 존재가 아닐 것이다. 이는 스스로 자기 탓하는 것으로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탓으로 하고 살자. 그래. 해법을 알았으니 이제부터는 아무에게도 탓할 수가 없다. 남을 ..
(엽서수필 2) 112. 얇은 지갑 열다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112. 얇은 지갑 열다 이영백 나는 남자다. 봉급을 받고 결혼하고 나서부터는 다달이 세금과 공제금을 제외하고는 현금으로 갖다 주었다. 그 돈은 살림살이 하는데 쓰이는 돈으로 지급하며, 남은 돈은 목돈으로 저축하였다. 지금도 생활비를 현금으로 찾아다 직접 손에다 쥐어준다. 남성은 평생 샐러리맨이다. 남성은 돈 벌고, 여성은 돈 쓰면 된다. 이체하지 않고 현금 찾아주는 재미로 산다. “지갑이 얇다.”함은 돈이 없어 가난하다는 은어(隱語)이기도 하다. 남성이 외출하려면 지갑에 현금을 넣고 다녀야 친구를 만나도 쫄지 않는다. 요즘은 현금 없이도 카드만 소지하기에 괜찮겠지만 과거에는 현금이 없으면 정말 난처하기에 늘 현금을 조금 넣어 다녀야 마음이 든든하였다. “지갑(..
(엽서수필 2) 111. 73년 통째보다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111. 73년 통째보다 이영백 엽서수필로 글을 쓰면서 돌아보는 기회를 얻었다. 많지 않은 햇수를 살아왔다. 인생은 파노라마처럼 알록달록 하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스스로 반성할 좋은 기회다. 지나가고 있던 73년 세월을 맛보았고 그 인생은 쓰다. 흔히 삶의 뒤통수를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기회로 뒤통수를 겁도 없이 내어보였다. 참 아담하고 잘(?) 생겼다. 마음대로 툭 불거진 것이 아니라 변형 타원형으로 아담하게 생겼다고 보인다. 거울로 통해 확인해 봐도 역시 그렇게 느껴졌다. 나 스스로 삶의 뒤통수를 내어보였다. 요즘 인간 일백세 시대를 맞이하였다. 유명 인사들은 건강까지 좋아서 일백세를 넘기신 분들이 좋은 글도 남겨 주셨다. 1세기다. 앞선 시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