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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늚이의 노래 1

(엽사ㅓ수필) 100. 나 태어난 기쁨

100. 나 태어난 기쁨

이영백

 

 여러 글에서 나의 태어남을 기쁜 탄생이 아니라 괴로운 탄생으로 묘사하고 말았다. 이제라도 태어남은 괴로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맞아들이고 싶다. 그렇다.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남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부모님으로부터 얻은 사랑의 결실이 바로 출생이고 탄생의 기쁨이 아니겠는가?

 탄생은 15천만마리 이상의 정자가 경쟁을 하여 단 한 개뿐인 난자와의 결합하여 오로지 하나만 이겨야 탄생한다. 그것도 좋은 날, 좋은 시간에 이웃, 친지들의 박수 받고 결혼한 후 얻은 사랑의 결실이 아니던가? 이런 상황에서 태어난 나이기에 세상의 고난과 경험으로 얻은 실체다.

 탄생은 기쁨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새끼로 금기를 두르고 잘한 액땜으로 자라나 첫돌을 맞이하였다. 어린 날 그때는 아무런 나의 기억이 소환되지 못하였지만 아무런 탈 없이 이렇게 잘 살아오지 아니하였던가?

 태어나자말자 625전쟁이 일어났다. 어린 나로서는 기억이 없다. 어른들의 말씀과 역사를 배웠으니 그렇게 알고 있을 뿐이다. 세 살 때부터 어렴풋한 기억은 전쟁 후유증으로 미군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스리쿼터에 타고 자랑스럽게 아이들에게 껌을 던져 주었다. 그것이 처음에는 무엇인지도 몰랐다. 기분 좋은 날은 씨 레이션(C-Ration) 한 통도 주웠다.

윗저고리만 걸쳐 입고도 마을을 종횡무진하며 살았다. 저고리에는 옷고름이 붙어있어 몸을 한 바퀴 돌아와 묶이었다. 흙길에서 먼지와 흙장난 하면서 놀았다. 진흙 판에다 낫으로 그림도 그려대면서 살았다.

 초등학교 다니기 전 서당 가서 한문 읽고, 붓 들고, 글씨 쓰고, 꿇어 앉아 문구를 암송하였다. 그때 그 시절에는 그렇게 어린 날이 채워졌다. 전쟁이 끝나고 길거리에는 군인들이 곧잘 보였다. 1957 4 1일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었다. 왼쪽 가슴팍에다 코 수건을 삐침으로 달고 남자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학교 종이 땡땡땡~’, ‘산토끼 토끼야를 불러댔다.

 어려운 세상에 태어났으므로 우리들은 고적지 경주불국사 사하촌에서 문화재로 오르내리며 놀았다. 1학년 소풍 가는 곳이 신라38대 원성왕릉(=괘릉)이었다. 보물찾기도 하고, 사자 상을 그리기도 하였다. 소풍이 아니라 원족(遠足)이라 하였다. 어린 날들의 추억이 서려있는 고향이 아리다.

 탄생으로 기뻤다. 불국사 자하문에 오르기 위해 청운교, 백운교를 탔다. 요즘은 문화재법에 걸릴 일이다. 범영루 문지방을 베개하고 누웠다.

 인간 세상에 태어남이 즐거웠고, 인간으로 자랄 수 있어서 기쁨이다.

(2020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