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백두산 등척기
이영백
연변 대평원의 길을 봉고로 달린다. 어둑해지면서 전깃불이 군데군데 밝아지고 장백산 산문에 들어섰다. 백두산 밑 호텔에 도착하였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비 내린다. 여인숙 같은 호텔이 눅눅하여도 고된 하루로 잠든다.
아침잠을 깨서 비룡폭포 보러 10여 분 걸었다. 해발 1,700m! 온통 안개구름 속 무진기행이다. 목책다리 아래 흐르는 유황 온천물에 오리 알을 삶는다. 철제계단 올랐으나 “비룡폭포”우리 말은 사라지고, “장백폭포”라는 중국표지 앞에서 사진을 촬영하였다. 안개 속에 물소리만 들린다. 그러다 갑자기 강렬한 햇빛이 비친다. 장엄한 흰 폭포가 쌍 갈래로 하늘에서 물동이로 내리 퍼붓는다. 천애단애 비류직하 하얀 비단으로 68m 높이에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친다. 바닥에는 둥근 소의 소용돌이로 천지 광천수다.
빅뉴스다. 천지에 온통 햇볕이라고 가이드 친구가 전한다. 안개구름 속으로 2,700여m 고지를 향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밤새 비가 와서 천지구경은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볼 수 있다니 천만다행이다. 약980여 년 전부터 백두산이라 하였다. 북한 쪽 산봉우리는 여섯 개이고, 중국 쪽은 아홉 개다. 중국과 북한에 함께 속하는 것이 세 개 봉이다. 천지의 4할이 중국에 속하며, 6할이 북한이다. 중국 쪽 천문봉(2,670m)으로 오른다.
바깥을 보니 장관이다. 해발고도 2,000여m부터 안개는 걷히고, 쨍하게 따가운 햇살이 비치며 구름바다가 멀리 발아래 보인다. 절경이다. 안개가 걷힌 백두산이다. 곧은길을 곧장 달려올라 가는데 옆에는 고산화원(高山花園)이 아니던가? 녹색 밭에 노랑꽃이 듬성듬성 섞여 피어서 이국적이다.
높은 산꼭대기에 가로막는 집 한 채가 기상관측소다. 집 모양새가 팍 퍼져있다. 주차장에 여러 수백 대 자동차가 산꼭대기에 놓여있다. 저만치 천문봉 위로 100여 명이 납작 붙어서 경쟁하듯 기어오르듯 한다. 산 흙은 희며 부석이 뒤덮여 있어 백두산(白頭山)이다. 그러나 그 이름도 빼앗겼다.
오른쪽으로 올라갔다. 햇볕은 쨍쨍 내려 쪼이고 천지의 수면은 반사하여 새파란 청포지 위에 은가루를 한 움큼 흩뿌려 놓은 것 같다. 하늘과 맞닿아서 경계가 모호하다. 자꾸 백두산 천지를 응시하다가는 그냥 빨려들어 갈 것만 같았다. 천지 속에 북한 쪽의 장군봉이 오롯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으로, 눈으로 백두산 천지를 모두 퍼 담았다. 춥다. 내려갈 시간이다.
평생에 세 번은 보아야 한다는데 나는 두 번을 보았다. 한 번 더 가보고 싶지만 여의치 못한 형편에 제발 한 번 더 백두산을 오르고 싶다.
(20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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