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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늚이의 노래 1

(엽서수필) 94. 안목 있다

94. 안목 있다

이영백

 

 부모님의 생활이 곧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입힌다. 특히 부모의 직업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1세대가 철저하게 노력하고 투자하여야만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나의 아버지는 농부였다. 아버지의 직업을 탈피하고자 나는 한 세대를 몸 받쳤다. 강릉에는 안목(“앞 목인데 마을 앞)항구가 있다.

 사람살이에 가장 중요한 말이 안목(眼目)’이라는 말이 있다. 안목은 바로 사물의 좋고 나쁨 또는 진위나 가치를 분별하는 능력을 말한다. 안목의 진실을 안다면 세상 살아가는데 안목을 키울 일밖에 없다. 지인이 재개발  재건축 된다고 평생 붙들고 산 집을 너무 오래 기다리다 지쳐서 그냥 팔고 나갔다. 그러자 집 팔고 나간 지 한 달도 안 되어 그곳이 재건축으로 고시되고 개발되었다. 안목이 사라진 것이다.

 나의 직업전환 안목이었다. 2년 동안 교육대학이란 곳에서 피나는 노력으로 여러 과목을 공부하고 마침내 교사발령을 받았지만 겨우 7 11개월 25일 만에 교직을 항복하고 던져 버렸다. 어떤 결과로든 교장이라는 대통령발령의 사령장을 내버린 것이다. 나의 안목은 어떠한가?

 나의 두 번째 직업의 승진 건이었다. 사립전문대학 행정의 꽃인 사무국장자리를 놓고 정년 3년 두고 명예퇴직하고 말았다. 후회는 없었겠는가? 차마 내 입으로 말하기에는 그렇겠지만 시원섭섭하였다.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든가? 나는 그 3년을 활용하여 글쓰기에 매진하여 수필가논픽션가가 되었다. 나의 안목이 짧았던가? 국장자리 연연하다 화병(火病)으로 저 세상 일찍 가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 아닌가?

 현재 살고 있는 상가주택이다. 처남 없는 장인모시기 32년 동안에 얻은 것은 주택에 사는 것이 낫다는 장인 말씀하신 대로 아직도 상가주택에 살고 있다.

 생애 첫 번째 11 8작 아파트를 산 것이고, 3년 뒤에 팔아서 18평 아파트를 샀다. 아직 그때까지 시골에서 교사를 하여 살아보지도 못한 것이다. 2007 8월에 명퇴하고, 장인 2012 10월에 돌아가셨다. 그 상가주택에 아직도 살고 있다. 장인께서 시구가 아파트 파골라에 매달려 내려오는 것이 싫다고 하여서 아파트에 못간 것이다. 아파트에 안간 것이 잘 되었다. 상가 둘에서 월세 나오고, 이제 재건축 발의를 하고 있으니 이제껏 장인말씀 듣고 그 집에 산 것이 비록 늦었지만 나의 숨은 안목에 속하지 않을까?

 잘못 판단한 안목에 눈물 흘려도, 잘 판단한 안목으로 웃음을 짓는다.

(20200704.협동조합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