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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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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 미늘 110. 창립 50주년 DGB스토리공모전에 우수상 받다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110. 창립 50주년 DGB스토리공모전에 우수상 받다 이영백 의자에 앉으면 글을 쓴다. 오늘도 글을 쓴다. 대구은행에서 “창사 50주년 2017 DGB스토리 공모전”이 있었다. 어찌 귀가 번쩍 뜨이지 않으랴! 그날도 그렇게 의자에 앉아 글을 썼다. 구분은 대구은행 창립년도인 1967년 이전 출생자로 한정하는 1부문과 그 이후출생자 2부문으로 공모하였다. 은행에서 글을 모집한다니 처음에는 생소하였다. 은행하면 왜 얽히고설킨 사연이 없겠는가? 은행통장 그림이 계속 바뀌는 것에 착안하여 때맞춰 나온 통장 보고 제목을 “웃다-꽃비 종이 은항(銀行)통장”이라 정하였다. 공모처에서 여러 측면을 고려하여 순수문학 공모전이 아니라 스토리 공모전이기에 문학성 혹은 예술성보다는 ..
(엽서수필 3) 미늘 109. LH-여성동아 에세이공모전에 동상 받다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109. LH-여성동아 에세이공모전에 동상 받다 이영백 의자에 앉으면 글을 쓴다. 그러려고 산 것이 아니지만 나는 글을 쓴다는 대명제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의자에 앉으면 글을 쓴다. 글은 나의 던져두었던 생각을 정리하고, 손가락이 더 아파오도록 혹사시킨 결과다. 누가 알려 주었다. “이야기가 있는 집”에세이공모전이 있다 알려준다. 공모전에 응모하는 것은 스펙을 쌓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작가 입장에서도 제출하게 된다. 골똘히 생각해도 삶 이야기를 하기 에는 너무 일러 아버지가 시골에서 반농, 반목수 생활한 것으로 소재를 얻었다. 아버지가 집 짓던 일이 아버지 삶의 편린(片鱗)이라 생각하고, 주제를 이끌어 내었다. 제목은 “내 고향 초가를 본다”라고 정했다. 그리..
(엽서수필 3) 미늘 108. 매일시니어문학상 1.2.5회 수상하다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108. 매일시니어문학상 1ㆍ2ㆍ5회 수상하다 이영백 의자에 앉으면 글을 쓴다. 컴퓨터 자판기로 붉은 피 같은 검은 글씨를 찾아 모은다. 한 편의 글을 쓴다. 오늘도 내일도 글을 쓴다. 차곡차곡 모여 지는 글에서 공모전을 기다린다. 그렇게 공모전 찾았다. 2015년 매일신문사에서 제1회 시니어 문학상 모집요강이 떴다. 만65살 이상이어야 응모할 수 있는데 그때가 딱 3월 5일로 65살이니 써둔 글로 제출하였다. 응모하고 잊어버리며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논픽션 부문 “우수상”으로 당선되었다고 하였다. 제목은 “가마솥에 뜸들인 눈물”이다. 셋째형 6ㆍ25참전 내용이다. 내 글이 일간지 전면으로 4주간에 걸쳐 게재되었다. 너무 고마웠다. 딱 5년이 지난 ..
(엽서수필 3) 미늘 107. 한비수필아카데미에서 강의하다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107. 한비수필아카데미에서 강의하다 이영백 “한비”라는 말은 “큰 비”를 말한다. 월간「한비문학」은 지방인 대구지역에서 발행되는 문예잡지이다. 그곳에서 등단하고 수필가로 문예활동과 글을 계속 써댔다. 또 가르친다는 희열 때문에 보학교재를 발간하여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보학을 강의하였다. 수필 강의도 재능기부로 계획하였다. 2018년 연말이다. 2007년 은퇴하고, 5년을 습작하였다. 또 6년간 수필이론을 연수하면서 수필가, 논픽션가로 등단하였다. 2015년부터 3년간 퇴직한 대학교오십년사 편찬위원으로 근무하였다. 2019년 3월에 “재능기부 무료 수필 공개강의”를 진행 하였으나 시의적절하지 못하게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운영이 어려웠다. 그러나 소규모 모임으로 강..
(엽서수필 3) 미늘 106. 왕건 길 아카데미 가다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106. 왕건 길 아카데미 가다 이영백 나이 들고 멍해 앉아 있으면 안 된다. 그러나 난 무언가라도 하고 싶어 좀이 쑤신다. 지방신문에 모집 광고가 떴다. “왕건 길 아카데미 제5기 수강생모집”광고이다. 게다가 수업료는 없었다. 참가하고 싶어졌다. 고려 왕건이 나라를 세우기 전에 대구 “동수(桐藪)전투”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폐퇴하여 도망간 길 찾아서 공부와 현장답사를 겸한다니 금상첨화였다. 특히 신라 말의 역사와 일화를 확보하는 것은 덤이기에 수강하러 찾아갔다. 참여한 모집 회수가 5기였다. 그곳에 모인 여남은 사람 중에 최 연장자라고 회장을 받았다. 자연히 첫 점심시간에 밥값을 지불하였다. 처음부터 회장직을 올바르게 수행할 참이었나 보다. 그렇게 매주 목요일 오..
(엽서수필 3) 미늘 105. 한국시낭송문학 잡지편집인 되다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105. 한국시낭송문학 잡지편집인 되다 이영백 “문학은 낭송이다. 낭송은 예술이다”라는 주제를 시작으로 「한국낭송문학」반 연간 잡지가 발간된다한다. 나에게 “편집위원”을 의뢰하여 왔다. 이미 월간 문학지에도 “편집위원”으로 있으니 겸해 달라는 것이다. 편집이라면 기초 이론도 터득했고, 편집 일을 좋아하기도 하기 때문에 반대하지 아니하였다. 낭송이란 청각적 언어이다. 낭송은 낭송자의 목소리를 통해 사람의 심성을 어루만져 주는 소리예술이다. 한 편의 시(詩)를 가지고 천 갈래의 낭송이 가능하다고 하니 낭송 그 자체로서도 가히 새로운 예술이 된다. 쓰여 진 시가 말없이 존재만 하고 있다면 이를 일깨우는 역할은 낭송가가 해 내는 작업이다. 시 속에 들어앉아있는 시인의 영..
(엽서수필 3) 미늘 104. 수필분과 회장 맡다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104. 수필분과 회장 맡다 이영백 사람들은 모임 만들기를 좋아한다. 단 세 사람이 모여도 회장, 부회장이 있으며, 총무가 있다. 2012년에 지방 문예잡지에 등단하고 문학 활동을 어떻게 하는지조차도 몰랐다. 문학 활동이란 자기 분야에 글을 쓰고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동아리로 모여 합평하고, 문학 관련을 이야기하는 일이다. 작품을 통하여 문학모임 한다기에 천지분간도 모르면서 나갔다. 조직 속에는 늘 복잡하고 회장ㆍ부회장에 장르별 회장과 지부회장 등 소소하게 많은 조직이 있다. 신참으로 나가니 저절로 첫 회식비도 내었다. 월회비도 내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문학 활동인가를 느끼고 부지런히 나다녔다. 수필로 등단하였으니 수필분과에 소속하여 분과활동을 하였다. 다달이 ..
(엽서수필 3) 미늘 103. 뿌리를 찾아서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103. 뿌리를 찾아서 이영백 일찍 차성이씨 뿌리를 찾다. 서당에서 한문을 익히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관심이 더해진 것 같다. 너무 어려서 뿌리가 귀한 줄도 몰랐다. 초교 3년께 사랑채에 오는 집안 아저씨로부터 족보를 펴놓고 있기에 아는 글자 몇 자씩 읽어댔다. 나이 묻고서 칭찬하여 주었다. 아마 어려서도 그 칭찬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 족보는 1955년 乙未譜 석판본 족보였다. 족보의 서문부터 아는 글자만 읽어도 어렴풋이 뜻이 통하였다. 어려운 글자는 자전 찾아보고 고개를 끄덕이었다. 아버지는 수단하러 울릉도로, 포항 청하, 부산 미남, 경주, 월성 등 두루 다니면서 수단지를 받아 왔고, 벼를 가마니 채 싣고 가서 “차성이씨 용강재(龍岡齋)”를 지었다. 젊어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