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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106. 왕건 길 아카데미 가다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106. 왕건 길 아카데미 가다

이영백

 

 나이 들고 멍해 앉아 있으면 안 된다. 그러나 난 무언가라도 하고 싶어 좀이 쑤신다. 지방신문에 모집 광고가 떴다. “왕건 길 아카데미 제5기 수강생모집”광고이다. 게다가 수업료는 없었다. 참가하고 싶어졌다. 고려 왕건이 나라를 세우기 전에 대구 “동수(桐藪)전투”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폐퇴하여 도망간 길 찾아서 공부와 현장답사를 겸한다니 금상첨화였다. 특히 신라 말의 역사와 일화를 확보하는 것은 덤이기에 수강하러 찾아갔다.

 참여한 모집 회수가 5기였다. 그곳에 모인 여남은 사람 중에 최 연장자라고 회장을 받았다. 자연히 첫 점심시간에 밥값을 지불하였다. 처음부터 회장직을 올바르게 수행할 참이었나 보다. 그렇게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그 곳을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밥값도 더러 보탰다.

 뿐만 아니고 현장답사에서는 야외라는 자연환경에 묻혀 회원끼리 대화하고, 지나간 길을 답사흔적으로 강의도 있었다. 그렇게 또 새로운 모임에서 황혼인생의 일상으로 즐거움을 느꼈다. 아울러 자연과 어우러져서 숨 쉬는 공기도 좋았다. 산속 새소리는 새로운 힐링이다. 돌 틈사이로 숨어 피어 있는 이름 모를 야생 꽃들이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고 생각하였다. 사실 오랜 세월 전에 왕건이 그길로 폐퇴하여 갔건, 안 갔건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지만 추량으로 그 길이 맞을 것이라고 답사를 찬찬히 하고 다녀왔다.

 나 또한 직업이 강의로 시작한 것이라 듣는 것도 괜찮았다. 저절로 수필을 끄집어내는 실마리로 다음 기수 강좌에서 “왕건 길에서 수필쓰기”라는 주제로 한 꼭지 강의도 맡았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좀이 쑤시다가 한 번씩 강의 듣거나 현장답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틔었다. 수료 전에 논산 “개태사(開泰寺)답사”는 왕건이 죽고 난 뒤에 영정을 모셔 둔 곳이다. 그곳을 답사도 하였다.

 5기 수료식을 하고 난 후 수필을 매주 목요일에 강의하였다. 새로운 소일이 되었다. 5~6명을 두고도 강의를 1년간 묵묵히 이어갔다. 문제는 강의 장소가 비좁고 불편하여 시내 반월당 소재 한비문학관 3층으로 옮기었다.

 왕건 길 수강생들 중 몇 명은 한비수필아카데미 “수요일愛수필쓰기”반에서 3기~5기까지로 이어 오고 있다. 왕건길 아카데미의 인연이다.

(20210822.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