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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104. 수필분과 회장 맡다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104. 수필분과 회장 맡다

이영백

 

 사람들은 모임 만들기를 좋아한다. 단 세 사람이 모여도 회장, 부회장이 있으며, 총무가 있다. 2012년에 지방 문예잡지에 등단하고 문학 활동을 어떻게 하는지조차도 몰랐다. 문학 활동이란 자기 분야에 글을 쓰고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동아리로 모여 합평하고, 문학 관련을 이야기하는 일이다.

 작품을 통하여 문학모임 한다기에 천지분간도 모르면서 나갔다. 조직 속에는 늘 복잡하고 회장ㆍ부회장에 장르별 회장과 지부회장 등 소소하게 많은 조직이 있다. 신참으로 나가니 저절로 첫 회식비도 내었다. 월회비도 내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문학 활동인가를 느끼고 부지런히 나다녔다.

 수필로 등단하였으니 수필분과에 소속하여 분과활동을 하였다. 다달이 작품 올려 “합평”하자는 것이다. 등단한지 얼마 되지 않고 글이 올바른지 그런지도 모르고 대낮에 등불 들고 다녔다. 첫 합평할 자료를 제출하자 잘근 하여 주었다. 글에 혐오증이 나고 절필하고 싶어서 활동을 중지하였다.

 “운전면허증 받았다고 운전을 잘 할 수 있겠느냐?” 몇 편 수필 내어 등단하였다고 합평거리로 올리니 잉크도 안 마른 사람 작품을 하이에나 식으로 질타하였다. 그 글로 인하여 합평이라는 용어를 허가받아 인격을 흔들었다. 차라리 도망하고 싶었다. 그래서 도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모임의 선배 몇 분이 위로의 문자를 주었다. 고마웠다. 어찌 보면 병 주고, 약 주고였다. 마침 어느 곳에 수필이론을 가르친다기에 3년 동안 6학기 공부하였다. 주제로 글을 써 보면서 자신을 가졌다. 모지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모임에 나갔다. 공모전 수상 등으로 돈 내어 회식하였다.

 2018년 모지 문학회에서 수필분과 회장을 떠맡았다. 기간은 2년이었다. 그러나 시기상조요, 기회의 말살이다. 2019년에 활동을 전개하려 하였을 때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하여 저절로 식물 문학회로 변하고 말았다. 또 2020년에 수필분과 회장 자리에 중임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하여 활동할 수가 역시 없었다. 동인지발간 기획도 못하고 시간만 지나가고 있다.

 아직 대구문인협회에도 가입하지 아니하였다. 그곳에서도 역시 문학 활동이니만치 조직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가입비, 연회비며, 활동에 따른 경비도 소소할 것이다. 다시금 용기를 얻어야 할 것 같다.

(20210819.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