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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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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 미늘 제2부 글 씀의 변명 14. 메모지 엽서수필 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제2부 글 씀의 변명 14. 메모지 이영백 작가는 메모지를 늘 곁에 두고 산다. 잠들기 전에 갑자기 생각이 돋아나면 즉석 메모하는 습관은 필수적이다. 곧 잊어버리기 전에 작은 아이디어 어휘라도 꼭 적는 습관은 바로 작가적 능력을 보완하는 데 요긴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제때 메모하지 못하면 이튿날 잠 자고나도 기억에서 모두 사라진다. 이 때문에 꼭 메모하여 마치 소중한 밤새 자리끼처럼 머리맡에 남겨두고 잠을 청한다. 작가는 어찌 보면 일생 메모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메모습관은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생각한다. 늘 곁에 메모지가 준비되어 있고, 게다가 연필 혹은 볼펜이 함께 있어야 하였다. “메모(memo)”는 구어체 용어며, 본래 영어에서는 “memor..
(엽서수필3) 미늘 13. 화분 앞에서 엽서수필 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13. 화분 앞에서 이영백 인생에서 직장으로 인하여 고민을 많이 만들었다. 첫째직업으로는 교사 8년 생활이었다.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떠나 야지’하는 소리를 입버릇처럼 되 뇌이었다. 그리고 과감히 버렸다. 둘째직업은 대학 교직원 26년 4개월이었다. ‘모토는 내일 떠날 것처럼 현실은 오늘의 일로 마무리 하였다.’ 정년 3년을 남겨 두고 또 떠났다. 셋째직업은 자유기고가(수필가, 논픽션가)로 이제 ‘떠날 필요가 없었다.’ 세 가지 직업군에서 8년 가르친 제자들이 해마다 스승의 날에 화분을 보내어 준다. 그 화분 앞에 섰다. 일흔셋 삶의 변명에서 미늘에 걸린 나를 화분 하나 앞에 세운 것이다. 초등학교 제자들이 해마다 ‘스승의 날’을 잊지 아니하고 화분을 보내..
(엽서수필 3) 미늘 12. 반김 없는 앞에서 엽서수필 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12. 반김 없는 앞에서 이영백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반김 없는 아이가 되고 말았다. 마흔넷에 마마(麻麻)하는 엄마를 통해 열 번째 막내로 태어났다. 엄마의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얼굴을 세상 사람들은 “곰보”라고 하였다. 엄마를 곰보로 만들면서까지 태어난 나를 반겨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찍 유년기에 한글을 해득하였다. 홀소리, 닿소리 조합으로 글자를 발음하였다. 참 세종대왕 후손다웠다. 자음 14자에 모음 10자로 조합하니 한글은 쉬웠다. 한글 깨치고 서당에 두 달포 다니면서 천자문 1/4(지킬 守)을 배우고 초교 입학하여 꽤나 공부에 재미나하였다. 공부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초교학력이 전부가 되고 말았다. 그것이 아버지의 교육철학이었다. 학동기 시작부..
(엽서수필 3) 미늘 11. 삶의 앞에서 엽서수필 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11. 삶의 앞에서 이영백 사람은 누구나 삶의 앞에서 서성거린다. 어렸을 때 죽도 못해 살아가야 하는 삶에서는 누구나 극한적 선택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인력으로 할 수 없음에 그 힘이 아주 작음을 스스로 알고 탄할 뿐이다. 누구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그런 삶을 이끌고 살아가는 어려운 사람들이 지난 세월에서는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모두들 그렇게만 살아갈 뿐이다. 자식 셋을 낳고 남편을 여읜 여인이 살아가는 방도에는 무엇이 있을까? 죽다 못해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고, 자식을 돌보아야만 하는 여인네로서는 다른 말이 필요 없다. 누군가의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어린 자식 셋을 키워 내어야만 하는 모진 운명에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뿐일 것이다. 한 마디로 ..
(엽서수필 3) 미늘 10. 죽음 앞에서 엽서수필 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10. 죽음 앞에서 이영백 사람은 왜 사는가? 극단적으로 “사람은 죽기위해 산다.”고 할 것이다. 참 그 이상의 적확한 표현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은 결코 영원히 살지 못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모두 죽음에 이를 것이다. 키에르 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을 썼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죽음에 이른다. 문학에서는 사랑을 러브(love)라 하지 않고 “에로스(eros)”라 하며, 죽음을 데스(death)라 하지 않고 “타나톱시스(thanatopsis)”라고 한다. 분명 문학적 표현에서 죽음을 의미심장하게 표현한 것일 게다. 우리들 삶에서 “죽음”이란 무엇인가? “심장 및 호흡기능과 뇌 반사의 영구적인 소실”을 죽음이라고 표현한다. 그것도 제한적 시간은 24..
(엽서수필 3) 미늘 9. 이야기 앞에서 엽서수필 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9. 이야기 앞에서 이영백 이야기는 또 부풀러지고 그것에 함께 휩쓸리어 커다란 용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 용기는 점점 더 활성화되면서 앞으로 해내고자 하는 그것을 이루고 마는 전설(傳說)로 만들고 말 것이다. 결코 이야기는 당신의 전설이 되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 앞에서는 진솔하여야 한다고 한다. 뒤돌아보지 말라. 그리고 이곳에서 안 이야기를 단순하게 이야기로 끝내지 말라! 이야기는 스스로의 용기에서 재창조될 수 있으며 그렇게 이루어내어야 한다. 이야기는 현실을 만족하고 미래를 내다볼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태어나면서 벌써부터 낚시 바늘의 미늘에 걸렸다. 이야기는 앞으로 일어날 장대하고 계획이고, 도약할 도움닫기 역할을 할 것이다. 잘 정제..
(엽서수필 3) 미늘 8. 대기만성 앞에서 엽서수필 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8. 대기만성 앞에서 이영백 늘 푸짐하게 담길 그릇을 그렸다. 그래야만이 큰 섬에 많은 곡식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늘 현실은 작은 그릇에 담긴 보잘 것 없는 음식뿐이었다. 내가 가질 큰 그릇은 언제 만나 볼 수 있을 것인가? 내 생애 73년은 사회적으로, 환경적으로 삶이 어려웠다. 비록 학동기를 끝내고 고생하면서 청년기를 얻어 삶을 살아 보았다. 학동(學童)을 가르치면 행복하고 만족할 줄 알았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였다. 뭔가 미늘에 걸려서 내 뜻을 펼치기에 너무 작은 초등학교라는 마당뿐이었다. 외국영화에서 보면 젊은이가 대기업을 창업하고, 생활의 기기들을 제작하고 자동차를 만들었다. 또 우주를 나는 비행체를 만들었다. 이러한 것을 할 수 있다..
(엽서수필 3) 미늘 7. 소망 앞에서 엽서수필 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7. 소망 앞에서 이영백 소망이라는 말은 “바라고 원함”인데 왜 자꾸 종교에 갖다 붙여 말하는지 모르겠다. 종교를 떠나 한 개인의 자신이 바라는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기대나 예측을 의미하여야 할 것이다. 곧 소망은 희망이기도 하다. 사람 삶에서 “바람”을 말한다. 소망도 노력 없이 바라만보면 안 보일 것이다. 노력하고 노력하여 피땀까지 흘려야 겨우 보일 것이다. 나의 삶에서 소망을 낚시 바늘로 낚아채어 보인다. 세상에 강태공은 낚시 바늘에 미늘 없이 곧은 낚시로 고기를 낚았다. 과연 고기가 낚일 것인가? 낚시 바늘에 작은 미늘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 미끼로 숨은 바늘의 미늘 있는 것을 물면 그때야 고기가 잡힐 것이다. 소망의 성취일 것이다.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