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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제2부 글 씀의 변명 14. 메모지

엽서수필 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제2부 글 씀의 변명

14. 메모지

이영백

 

 작가는 메모지를 늘 곁에 두고 산다. 잠들기 전에 갑자기 생각이 돋아나면 즉석 메모하는 습관은 필수적이다. 곧 잊어버리기 전에 작은 아이디어 어휘라도 꼭 적는 습관은 바로 작가적 능력을 보완하는 데 요긴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제때 메모하지 못하면 이튿날 잠 자고나도 기억에서 모두 사라진다. 이 때문에 꼭 메모하여 마치 소중한 밤새 자리끼처럼 머리맡에 남겨두고 잠을 청한다.

 작가는 어찌 보면 일생 메모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메모습관은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생각한다. 늘 곁에 메모지가 준비되어 있고, 게다가 연필 혹은 볼펜이 함께 있어야 하였다. “메모(memo)”는 구어체 용어며, 본래 영어에서는 “memorandum”이라고 한다.

 메모하는 습관은 글 쓰려는 사람에게는 생명이다. 바로 메모하는 습관이 배이지 않으면 그것을 생활화하는 것으로 배워야할 것이다. 영어를 처음 독학으로 배웠을 때는 거의 광적이었다. 어떻게 하면 많은 단어(word)와 어휘(vocabulary)를 외울 수 있을까? 가위로 종이 쪽지를 끊어 수북하게 책상 한편에 쌓아 두고 종이 한 장에 워드 하나 적고, 발음기호와 품사, 뜻을 적었다. 처음에는 벽에 차례로 붙이다가 자리가 모자라면 방 천정에까지 붙여두고 들며나며, 누워서도 보면서 외었던 기억이 새롭다. 시골 화장실에도 영어 단어를 적어 두었다가 몰래했던 공부의 들통 나서 혼이 나고는 없앴다. 아버지는 영어를 “꼬부랑글자”라고 배우지 말랬다.

 지금 나의 컴퓨터 앞, 뒤, 옆 골고루 메모지에 그때그때 적어다 놓았다. 글을 쓰면서 메모지를 사용하고 치우지 않아서 내자에게 치울 줄 모르는 사람으로 찍히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 내 책상 위의 메모지는 건들지 말라고 엄명(?)을 해 놓았기에 간혹 청소하면서도 그 메모지는 내가 치우지 않은 한 그대로 그 자리를 늘 지키고 있을 뿐이다. 나쁜 습관일까?

 메모하려는 습관이 나의 작품 제목이나 아이디어로 즉석 결정하고, 활용된다. 메모는 어쩌면 작품쓰기 발로에 훌륭한 기준이 된다. 그것이 모이면 막 쓰고 싶어진다. 메모, 그것으로 작품을 살찌운다.

 메모는 나의 인생이요, 삶에 활력을 주는 영양소다. 메모는 늘 지속한다.

(20210314.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