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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늚이의 노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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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88. 굴 지나다 88. 굴 지나다 이영백 어렴풋이 사람 살아온 삶이 마치 세상의 굴을 통과한 기분이다. 인생 참 어쭙잖지만 태어나고, 유아기를 거쳐 인간의 기본을 배우는 학창기, 청춘기에 넘는 청춘의 홍역기, 결혼과 동시에 뼈 저리는 삶의 전쟁기, 소복소복 자식 늘고 재산 늘고 나이 늘고 그렇게 지나온 사람살이 행복기에서 황혼을 맞은 황혼기다. 한 사람의 인생 굴은 길고도 긴 굴임에 틀림없다. 굴은 설치되어 있다. 인생의 굴을 시작하다. 누가 만들어 주지 않아도 인생의 굴은 저마다 준비되어 있다. 그 굴속으로 아무런 증명서도 없이, 하이패스로 찍어 주지 않아도 모두가 꿀 발린 굴속처럼 찾아든다. 혹 쳐질세라 무수한 경쟁을 뚫고 사람들 모두가 무시무시한 굴속으로 파고들어간다. 이제껏 상상도 못하던 해저터널인 거가대교 속으..
(엽서수필) 87. 먹다 87. 먹다 이영백 배가 고프면 간식으로 빵과 사과 반쪽도 먹는다. 누가 먹었는가. 먹은 주체는 나다. 세상의 온갖 만물은 힘이 센 놈에게 먹히고 만다. 힘이 센 것이 약한 것을 먹는다. 아니 약하면 힘센 것에 먹히고 만다. 세상은 먹는 자가 있으니 “먹다”라는 말이 있고, 먹히는 자가 있으니 “먹히다”는 말이 있다. 어떻게 보면 서로가 그림자 같은 존재다. 우리가 모르고 살았던 것이 있다. 바로 “육식식물〔네펜시스 롭캔틀릿(Nepenthes Robcantleyt)〕이 개구리를 먹다.”, “개구리가 육식식물에게 잡아 먹혔다.”라는 것이다. “먹다”는 말의 쓰임은 마치 요즘 코로나19로 인하여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세상을 먹다와 같다. 결과로 보면 지구를 정화한다네. “먹히다”는 말의 쓰임은 마치..
(엽서수필) 86. 시장국밥집을 찾아라 86. 시장국밥집을 찾아라 이영백 직장생활을 하면서 등산 다녔을 때 자주 어울려 가던 집들이 생각난다. 어느 집이라고 할 것도 없이 값싸고 먹기 좋은 “돼지국밥”집을 자주 이용하여 왔다. 게다가 씹은 소주 한 병으로 떠들썩하게 술판까지 이어지는 국밥집이 즐거웠던 것이었다. 그래서 등산을 안 다녀와도 곧잘 고교 동기생들과 자리를 만들었다. 그러한 서민들의 국밥집이 아련하다. 국밥은 밥 따로, 국 따로 가 아닌 아예 부엌에서 섞어 요리가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그래서 국밥은 이미 밥을 따로 해 두었고, 국이 따로 끓여져 있었지만 2차 가공으로 걸쭉하게 국에다 식은 밥을 들이부어 새로 요리가 탄생한 것이다. 그것이 더 맛을 내기 때문에 선호하게 되었을 뿐이다. 대구에서는 다른 도시에 없는 음식이름으로 “따로국..
(엽서수필) 85. 거지 빵을 찾아라 85. 거지 빵을 찾아라 이영백 나의 학창기에 먹지 못한 국화빵으로 나는 어쩜 빵에 대한 징크스가 있었다. 고2학년 입주가정교사 하면서 집에 다녀오는데 큰형님 집으로 나의 상장, 표창장, 앨범, 책, 공책, 사진 등 애장품(?) 전체를 싣고 가버렸다. 억울해서 가정교사 입주 집으로 돌아왔는데 저녁 굶어 배가 고파도 돈이 모자라 못 사먹었다. 초겨울 유리창 너머로 김이 모락모락 나던 못 먹은 “국화빵”이 지금도 아려온다. 빵이라는 말은 알고 보니 포르투갈어다. 원래는 ‘팡(pao)’이었는데 포르투갈어와 일본어가 교류하면서 ‘팡’을 일식발음으로 ‘빵’이 되었다. 우리 동양인은 밥이 주식인데 빵은 마치 간식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빵에다 다른 것을 곁들여 먹음으로써 주식이 되었다. 나는 빵을 즐기는..
(엽서수필) 84. 뽕따러 가세 84. 뽕따러 가세 이영백 뽕잎 따는 처녀는 늘 화려한 도회지 밤이 그립다. 도회지에서는 고된 일을 하지 않아도 화려함 속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는데 시골에서는 늘 고된 일만 기다렸다. 머리에 수건 질끈 동여 맨 처녀농군들의 그 씩씩함은 유별나다. 우리 집에서도 작은 아버지 밭 경계선에 우리 집 뽕나무가 심겨져 있어서 해마다 춘잠을 먹이는 데 뽕잎이 많이 달린다. 뽕나무는 우선 잎으로 하여 누에의 밥이 된다. 뽕나무를 시골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누에치기를 위하여 그렇게 심은 것이다. 뽕나무는 고목이 된 나무에서는 잎이 덜 열리고 대신에 오디가 많이 열린다. 그러기에 아버지는 묘목시장에서 신품종나무를 사와서 심었다. 이듬해 줄기가 잘 자라 주면서 덩달아 잎도 넓고 싱싱하여 누에 밥으로 좋았다. 누..
(엽서수필) 83. 돌담 만나다 83. 돌담 만나다 이영백 어려서 살았던 초가집에서는 돌담이 없었고, 살아있는 나무울타리였다. 늘 돌담이 있는 민속촌이나 하다못해 경주 양동민속촌이라도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살면서 조금의 여유와 돌아보는 즐거움으로 낙안(樂安)읍성을 방문하기로 정하였다. 물론 돌은 제주도가 단연 유명하겠지만 요즘 코로나19로 인하여 그나마 순천으로 가게 된 것도 다행이었다. 광대고속도를 경유하여 곡성으로 빠져나가 곧장 순천 승주로 갈 수 있었다. 입구 찾으니 입장권을 끊고, 가장 먼저 동문인 낙풍루에 올랐다. 낙안 읍성 성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성 위 길을 따라 걸으니 “별감집”이 나오고 “낙안객사”와 “동헌” 뒷부분이 보여 성 아래로 내려갔다. TV에 자주 나왔던 동헌(사무당) 마당에 매 치는 형틀이 기다리고 있었다..
(엽서수필) 82. 등꽃 아래서 82. 등꽃 아래서 이영백 나이가 들어가면 귀소본능이 저절로 생기는가 보다. 간밤에 꿈도 어린 날 살았던 고향의 금모래 밭에 뒹굴고 있었지 아니한가. 불현 듯 내 고향이 보고파서 공휴일 아침이 부산하였다. 느닷없이 일행(흔히, 둘째 아들 기사, 난 조수, 내자와 큰 처제는 귀빈) 넷은 의기투합하여 고향을 찾는다. 그날도 무턱대고 생수, 끓인 물, 모자, 장갑, 동전지갑만 챙기고 출발하였다. 비록 짧은 여행일지라도 집을 나선다는 것에는 아이나 어른이나 들뜨고 신나하는 것이 보통사람일지라도 다 똑같은 것이다. 단숨에 고속도로를 내달리다 영천 산업도로로 빠져들어 첫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단골로 가는 로드카페 이름이 “아화(阿火)휴게소”다. 차가 멈춰 서기 바쁘게 동전주머니를 들고 내가 가장 먼저 차에서 내린다..
(엽서수필) 81. 광석라디오에 안테나 달다 81. 광석라디오에 안테나 달다 이영백 어린 날 우리 집에서는 라디오가 없었다. 서당 다니면서 강의록을 몰래 사 보는데 넷째 형이 물었다. “야, 강의록 보네. 난 어디 라디오기술 가르쳐 주는 뭐 그런 것 없을까?” “예. 서점에 가보니 광고지가 붙었어요. RㆍTV강의록이 나왔어요. 사 올까요.” “그래. 사 와봐라. 그것 재미있겠다.”그렇게 난 중학교 강의록, 형은 RㆍTV강의록에 푹 빠졌다. 형은 RㆍTV강의록에 진도가 제법 나갔다. 실습용 “광석라디오 만들기” 키트를 구입하였다. 역전 “현대소리사”에서 전기인두도 빌려 왔다. 집에서 라디오를 직접 만들려는 심산이었다. 가장 중요한 네 가지 준비물이 있었다. 동조바리콘, 광석검파기, 리시버, 안테나 코일 등을 차례로 모두 직렬로 연결하였다. 라디오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