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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늚이의 노래 1

(엽서수필) 81. 광석라디오에 안테나 달다

81. 광석라디오에 안테나 달다

 

이영백

 

 어린 날 우리 집에서는 라디오가 없었다. 서당 다니면서 강의록을 몰래 사 보는데 넷째 형이 물었다. “, 강의록 보네. 난 어디 라디오기술 가르쳐 주는 뭐 그런 것 없을까?” “. 서점에 가보니 광고지가 붙었어요. RTV강의록이 나왔어요. 사 올까요.” “그래. 사 와봐라. 그것 재미있겠다.”그렇게 난 중학교 강의록, 형은 RTV강의록에 푹 빠졌다.

형은 RTV강의록에 진도가 제법 나갔다. 실습용 광석라디오 만들기 키트를 구입하였다. 역전 현대소리사에서 전기인두도 빌려 왔다. 집에서 라디오를 직접 만들려는 심산이었다.

가장 중요한 네 가지 준비물이 있었다. 동조바리콘, 광석검파기, 리시버, 안테나 코일 등을 차례로 모두 직렬로 연결하였다. 라디오 회로구조를 십습하니 간편하게 알게 되었다. 물론 라디오 케이스가 없어서 나무상자 위에다 고정하였다. 방송국 선국도 되었다. 처음엔 잡음이 많이 들렸는데 조정을 잘하면 잡음은 사라지고 방송국에서 발사한 전파가 소리로 변하여 제법 잘 들리었다. 광석라디오로는 겨우 빼 하는 소리로 귀에 리시버를 꽂고서 혼자 듣는 정도이었다.

이 광석라디오도 그냥 듣기는 뭐하였다. 가는 철사를 구하여 잠자리채처럼 뱅뱅 돌려서 안테나를 만들었다. 만든 철사안테나를 들고 집 앞 버드나무에 올라가서 방향을 돌려가며 잘 들리는 방향을 맞추어 소리를 잡아 고정하여 달았다. 물론 안테나는 버드나무 꼭대기에서부터 밭을 지나 울타리 마당을 건너 처마를 거쳐 큰방 광석라디오에 부착하였다. 갑자기 광석라디오에서 국악 한마당을 개최하는 수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아버지는 가만히 지켜보고 계셨다. 한 마디로 참 신기해하였다. 평소 창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로서는 날아다니던 공중의 전파를 잡아서 희한한 상자조립으로 소리가 들렸으니 1899(고종 광무3)생으로서는 정말로 신기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작은 소리가 나는 광석라디오의 애청자가 되었다.

넷째 형은 그 해 농사가 끝나고 아버지 몰래 벼 열두 가마니를 돌려서 현금으로 바꾸고 부산 RTV학원으로 잠적하고 말았다. 나도 그 다음해 다시 중학교 공부하러 출사표 던지고 집에서 사라졌다. 바야흐로 공부시대였다.

광석에서 트랜지스터로 바뀌고, 흑백 TV에서 컬러텔레비전 그것도 HD에서 굽은 화면까지 발전하여 왔으니 당연히 라디오시절을 잊고 사네.

(2020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