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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늚이의 노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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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64. 빈 들녘 64. 빈 들녘 이영백 철따라 곡식들이 자라다가 그 영글었다는 소식에 주인들이 모두 수거하고 남은 것은 빈 들녘뿐이다. 채소밭에는 배추를 심어 키우다가 쓸모 있는 배추는 모두 뽑히어 갔고 숭숭한 구멍만 남기고, 쓸모없던 배추는 버려서 그마져 시들어 말라져서 하얗게 하늘거렸다. 논벌에서는 더 이상 쓸모 있는 것이라고는 없다. 그래도 겨울동안 물 잡아 둔 논에서는 작은 생물들이 살아 있다. 살얼음 밑으로만 살아 있고, 위는 하얗게 덮여 있는 들녘뿐이다. 그나마 채소밭에는 저들의 겨울 생명을 맡고 있던 채소들이 자리를 지켜주어서 덜 삭막하게 초록빛 들녘을 겨우 지키고 있다. 밤새 내린 서리들로 흔히 사람들은 싱싱한 보약 같은 채소를 길러 맛나게 먹을 생각하고 있다. 논벌에서는 긴 겨울을 지나는 동안 말없이 그..
(엽서수필) 63. 못에서 63. 못에서 이영백 못은 어린 날 나의 추억이 퐁당 빠져 있는 곳이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해에 지은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우리 집 우물곁으로 새보의 도랑물이 흘러 마지막 닿는 곳에 못이 있었다. 그 못은 나의 온갖 추억을 만들어 둔 곳이다. 못은 너른 공간에다 다음 쓸 물을 채워둔 마음의 고향이다. 못은 자연적으로나 인위적으로 넓고 깊게 판 땅에 늘 물이 괴어 있는 곳을 가리킨다. 못을 지(池)·소(沼)·당(塘)·방축(防築) 등으로도 표현한다. 지는 못 자체를 가리키는 글이고, 소는 자연의 힘에 의하여 땅이 우묵하게 팬 자리에 늘 물이 괴어 있는 곳을 뜻하는 글이다. 아울러 당은 원래 물을 막기 위하여 쌓은 둑을 가리키는 글자로서 못을 만들기 위하여 쌓은 둑을 지당(池塘)이라 한다. 방축은 저수시설..
(엽서수필) 62. 낮달 62. 낮달 이영백 달달 무슨 달 남산 위에 떴지~ 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낮달은 서녘 하늘 낮에도 떠 있기 때문이다. 달은 시간에 따라 떠 있는 곳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달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계속 변화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면 달은 언제 그렇게 뜨는가? 우선 낮달은 오후 세 시쯤 보인다. 그것도 관심 있게 찾아보아야 보인다. 낮에는 태양 빛이 너무 밝기 때문에 그렇다. 잘 보이지 않는 그런 낮달도 사랑해 주어야 보인다. 달의 궤도가 태양을 도는 지구의 궤도보다 짧기 때문에 낮에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달은 지구를 약 27과 1/3일 주기로 공전한다. 하루에 약 13도 정도 동쪽으로 움직인다. 만약에 달이 자정에 남중했다면 다음날 자정에는 남중의 위치에서 13도가 모자라는 동쪽 하늘에 떠 있게 된..
(염서수필) 61. 논바닥 61. 논바닥 이영백 사람 일평생을 살면서 제가 밥 먹는 쌀이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수 없이 많다. 알아도 막연히 그렇게 쌀이 되어 나오겠지 뭐 하고 살아간다. 어떤 설문조사에 심지어 쌀이 나무에서 생산된다고 알고 있는 수가 많이 나왔다. 하물며 그러할 진대 쌀이 생산되는 논바닥을 관찰해 보지 않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시간이 나거든 농촌 논바닥을 관찰해 보라. 농촌의 논바닥 형태를 알아야 사람 사는 노하우를 얻을 것이다. 봄 논바닥을 가보라. 봄 논에는 거의 말라있다. 모내기를 하기 전까지는 습도가 아주 낮은 흙만이 모여 있을 뿐이다. 지난해 벼농사를 이용하고 남은 낮은 벼 그루터기가 한 철을 지나면서 삭아서 자연거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냥 곡식만 자라서 훑어가고 황량한 빈 공간만 ..
(엽서수필) 60. 맨발을 즐겨라 60. 맨발을 즐겨라 이영백 나는 어려서 농촌에서 거개 살았다. 특히 초교 입학 전까지는 맨발로 살았다. 집에 있을 때 신발다운 신발을 신어 본 적이 없다. 맨발이 편하였다. 초교 들어가기 전 서당에 다녔다. 신발은 당연히 없었다. 겨우 신발이라는 것이 나에게 놓아진 것은 짚신이었다. 앙증맞은 나의 짚신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최초로 검댕고무신을 사 주었다. 그렇게 좋았다. 그러나 집에서는 그마지 신지 못하고 짚신을 신어야 하였다. 조금 지나니 아버지께서 자기가 신는 신발(=짚신)은 자기가 만들어 신어라고 명령이 떨어졌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짚신 삼는 방법을 셋째 형으로부터 배웠다. 그래서 나도 나의 짚신을 직접 삼아서 신을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도 맨발이 몸에 익혀서 검댕고무신은 ..
(엽서수필) 59. 그해, 봄의 연명 59. 그해, 봄의 연명 이영백 인간으로 태어났다. 1949년 4월 열이틀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경상북도 경주군 내동면 시래리 330번지에서 오후 세시 반에 고고성을 지르며 찾아 나왔다. 그러나 산모인 엄마는 천연두 마마로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내가 태어난 것을 묘사할 수 없기에 나는 겨우 이렇게밖에 기록할 뿐이다. 그래 꼭이 6ㆍ25전쟁 발발 한 해 전인 1949년 그 때는 사람살이에 너무 어려운 한 해였던 것이 분명하였다. 날이 가물어 사람들이 기근을 면치 못하고 목구멍에 풀칠할 것조차 없던 시절에 열 번째로 나는 태어난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엄마는 마마로 인하여 목숨조차 연명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난 아기로 큰형수의 젖을 얻어먹고 살았단다. 큰조카는 나보다 다섯 해가 빨랐으며, 마침 둘째 ..
(엽서수필) 58. 멈살이 58. 멈살이 이영백 매년 음력 이월 초하루가 되면 멈살이하는 머슴들에게 대접하고 베푸는 “머슴의 날”이다. 겨울동안 긴 시간을 방에서만 활동하다가 머슴의 날이 지나면 이제 “머슴들이 밭을 보며 웃다가 쟁기, 호미잡고 운다.”고 하였다. 즉 해동이 되고 논밭에 나가 일할 채비를 하여야 한다. 농사일은 시작도 하기 전에 그렇게 힘들 것이라고 알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정월 대보름날에 볏가릿대〔禾竿〕를 내려서 그 속에 넣어 두었던 곡식으로 송편 같은 떡을 만들어 우리 집 머슴들로 하여금 나이 수대로 먹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내 놓으며 하루를 즐기도록 한 머슴의 명절을 기려 주었다. 머슴이란 고용주의 집에 주거하며 새경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근로자다. 1527년(중종 22)에 나온..
(엽서수필) 57. 엄마와 맷돌 57. 엄마와 맷돌 이영백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곡물을 갈아서 가루로 만드는 용구를 사용하였다. 그것이 경상도에서는 돌로 만든 것이라 아이들이 들어 옮기기에는 발등 찍힐까 겁이 났다. 한자로는 석마(石磨)라 하였다. 맷돌에 붙여진 이름이 재미나다. 짚으로 결은 것으로 맷방석, 큰 통나무를 파서 만든 매함지, 매판에 맷돌을 앉힐 때 고이는 맷돌다리 등이 있다. 특히 고향에서는 맷돌다리를 “쳇다리”라고 불렀다. 고향에서는 밭이 귀하였다. 그러나 부지런 하신 아버지는 버려진 땅을 일구어 여러 군데 밭을 만들었다. 박석골, 가느바지, 탑골, 밀개산, 소전거리 등에 위치하였다. 해마다 콩을 밭에 심어 흰콩 수확이 짭짤하였다. 메주콩으로 팔기도 하지만 우리 집 곳간에 저장하여 두고 수시로 두부를 만들어 먹거나 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