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멈살이
이영백
매년 음력 이월 초하루가 되면 멈살이하는 머슴들에게 대접하고 베푸는 “머슴의 날”이다. 겨울동안 긴 시간을 방에서만 활동하다가 머슴의 날이 지나면 이제 “머슴들이 밭을 보며 웃다가 쟁기, 호미잡고 운다.”고 하였다. 즉 해동이 되고 논밭에 나가 일할 채비를 하여야 한다. 농사일은 시작도 하기 전에 그렇게 힘들 것이라고 알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정월 대보름날에 볏가릿대〔禾竿〕를 내려서 그 속에 넣어 두었던 곡식으로 송편 같은 떡을 만들어 우리 집 머슴들로 하여금 나이 수대로 먹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내 놓으며 하루를 즐기도록 한 머슴의 명절을 기려 주었다.
머슴이란 고용주의 집에 주거하며 새경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근로자다. 1527년(중종 22)에 나온 『훈몽자회(訓蒙字會)』에 한자로 “고공(雇工)”이라는 낱말이 바로 우리 고유어 “머슴”이란 어원이 된다.
우리 집 머슴은 상머슴, 중머슴, 꼴담살이 등 세 종류로 고용하였다. 상머슴은 주로 논밭농자와 먼 거리의 연료채취를 하였다. 물론 중머슴은 상머슴 다음으로 많은 일을 하였다. 꼴담살이는 “꼬마둥이 머슴”으로 줄여서“꼴머슴”이라 불렀다. 내가 어렸을 때 늘 동행하였다.
머슴은 시작할 때 우선 “들새경”이라 하여 1~3석(2~6가마니)을 주었고, 11월 퇴가 할 때 “날새경”이라 하여 4~6석(8~12가마니) 주었다. 그러나 우리 집 머슴들은 11월이 되어도 퇴가 하지 않고 겨우내 겨울나무와 새끼 꼬기, 가마니치기 등 일을 같이 하고 많은 소들을 돌보아 주었다.
엄마는 이러한 머슴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머슴의 날”에는 일일이 불러서 직접 짠 천으로 봄ㆍ가을 옷과 여름옷, 겨울옷까지 지어서 안겨 주었다. 사실 “머슴”이라기보다는 우리 집 농사를 짓는데 한 가족의 구성원처럼 먹고, 자고, 생활하는 것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개 머슴들은 고아이거나 무의탁자 이었으며, 혹은 농촌경제파탄으로 급박한 생계유지의 필요성에 멈살이를 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늘 우리 집에서 우리와 같이 생활한 것인지도 모른다.
상머슴은 봄이면 먼 산 나무하러 갔다가 나무 외에 늘 꽃방망이를 만들어 얹어오고, 송기도 꺾어다 주었다. 심지어 먼 산에만 나는 고사리도 엄청 많이 채취하여 오기도 하였다.
멈살이하던 사람들은 재산을 잘 모았기에 그 후 모두 잘 살았다.
(20200529)
'(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 > 늚이의 노래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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