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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늚이의 노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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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80. 달빛으로 피는 박꽃 80. 달빛으로 피는 박꽃 이영백 시골 초가에서 마지막으로 산 집은 네 번째(1956년)로 이사한 집이다. 초교 입학 전에 서당 다니면서 나의 유년기는 그곳에서 살았다. 들판 속 외딴 집에 달빛 훤히 밝은 날 사랑채 지붕 위에 박꽃이 피었다. 박이 긴 줄기를 만들어 지붕까지 올라 자라서 뒤덮으면 보란 듯 박꽃을 피워내었다. 박은 봄이 오면 서쪽 울타리 밑에다 미리 거름 넣어 두었다. 그곳에 호박구덩이처럼 만들어 호미로 세 곳 파서 박 씨 두 알씩 집어넣어 심었다. 박이 떡잎 나고 속잎 나서 밤낮으로 무럭무럭 줄지 벋으면서 잘 자란다. 박은 달빛 받으면서 긴 줄기마다 새로 아프게 사이 가지 치면서 새하얀 작은 꽃, 박꽃을 피운다. 그것도 박꽃은 달빛 받아 밤에 피고, 아침에 진다. 밤새 달빛 머금어 내가 ..
(엽서수필) 79. 객귀야 물러가라 79. 객귀야 물러가라 이영백 셋째 형이 상문 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정신없이 아파하였다. 이를 보던 엄마는 영문을 몰라 하다가 그제야 알아차렸다. 난 사람이 왜 아무렇지 않다가 갑자기 아플까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다. 엄마는 바로 상가에서 따라 온 객귀(客鬼)가 붙었을 것으로 판단하였던 것이다. 객귀란 무엇인가?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던 귀신을 잡귀라 하였다. 이승과 저승사이에 오도 가도 못하고 남루한 형편의 ‘뜬귀’가 되었다. 객귀가 사람의 몸에 침입하면 탈이 나서 갑자기 병을 앓게 된다. 이를 고치려면 발병의 원인인 객귀를 물려야 할 것이다. ‘얼른 다녀오너라. 신(神)할머니 기장댁께 객귀 물려달라고 전해라’그래서 바로 모셔왔다. 할머니는 바로 객귀물리기를 실행하였다. 벌써 해거름이 되었다. 할머니..
(엽서수필) 78. 눈썹차양과 엄마 78. 눈썹차양과 엄마 이영백 1949 기축년 사월 해 길고 긴 날인 열이틀에 엄마와 처음 만났다. 엄마는 마흔넷에 날 낳으려던 날 천연두 마마를 앓으셨다. 엄마는 곰보가 되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를 낳아서 길러 주신 고마움을 늦은 나이가 들어서야 이제 그것을 알았다. 엄마는 열 자식을 낳아 기르며 논ㆍ밭농사와 길쌈으로 평생 고생만 하셨다. 특히 손과 다리는 관절염이 왔다. 늘 신경통 하얀 알약을 잡수시었다. 수시로 베틀에 올라앉아 허리춤을 묶어야만 하였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와도 종일 베틀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매일 두석 자씩 짜댔다. 날줄 그 작고 가는 한 올을 바디로 치면서 아팠음에도 씨줄 늘려 베를 짜는 것이다. 나는 초교졸업 후 서당공부만 하였다. 아버지 개똥교육철학이 참 싫었지만 표현도 ..
(엽서수필) 77. 윷놀이로 즐거움을 맛보다 77. 윷놀이로 즐거움 맛보다 이영백 윷놀이는 민속놀이 중의 하나다. 널뛰기, 연날리기, 제기차기 등이 있지만 단연 윷놀이는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간단한 규칙만 알면 재미나는 놀이임에 틀림없다. 특히 명절 전후가 되면 집안 대소가나 취객들이 모여서 윷놀이에 흠뻑 빠져서 즐겁게 즐기고 놀 수 있는 게임이다. 우선 윷말 이름부터 익혀야 한다. 처음으로 도(돼지)-개(개)-걸(양)-윷(소)-모(말) 등으로 재미나다. 도가 나오면 ‘도’ 자리에 말을 놓는다. 윷이나 모가 나면 한 사리가 되어 다시 놀 수 있다. 모가 나오면 ‘앞여’라 하고 지름길로 들어간다. 모에서 걸 자리가 ‘방여’가 되어 다시 걸이 나오면 ‘먹여’가 되어 한 동이 날 수 있다. 이렇게 말을 잘 쓸 수 있다. ‘뒤여’나 ‘네째’등은 둘러 가야하..
(엽서수필) 76. 가설극장의 추억 76. 가설극장의 추억 이영백 1964년 여름을 맞이하였다. 새 시장(市場) 옮긴 2주년 홍보차원에 일주일간 가설극장이 들어왔다. 낮 시간에는 시장이지만 밤이면 말뚝을 박고 긴 대나무 활대를 세워 광목으로 가림막치고 영사기, 대형 스크린만 설치하면 가설극장이 되었다. 가림 막 둘레에 못 들어오게 띄엄띄엄 서서 지켰다. 오후에 삼발이트럭 빌려다가 확성기를 설치하여 가근방 동네마다 다니며 홍보하였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시민 여러분! 이번에 어렵게 구한 필름 ‘성난 능금’으로 불국공설시장에서 일곱 시부터 영화를 상영합니다. 입장객에게는 복권을 드립니다. 금반지, 송아지 한 마리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옵니다. 많이들 오셔서 관람하시고 상금도 타기기 바랍니다.” 나는 가설극장 영화구경을 갈 수도 없었다...
(엽서수필) 75. 손칼국수 밀다 75. 손칼국수 밀다 이영백 어떻게 해서라도 끼니 한 때를 때우는 것이 그날 하루 삶을 살았다는 증거일 때가 있었다. 예전엔 웬만하면 집집마다 점심이 없었다. 일하러 나가는 식구들에게는 도시락으로 점심을 챙겨 주어야 하는 것뿐이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집에 있으면 점심을 거개 굶었다. 사실 없어서 굶는 것이 아니라 재산 늘이기 위하여 암 먹고 굶어서 저축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른 손님이 와 있을라치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였다. 그것도 쌀로서 밥하는 것이 아니라 밀가루를 준비하여 집에서 만드는 손칼국수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한 끼니를 때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손칼국수를 만들다. 마당에 멍석을 폈다. 둘레 판* 다리를 접어서 바닥에 낮게 놓았다. 벌써 엄마는 백철양푼에다 밀가루에 물 부..
(엽서수필) 74. 은하수를 건너다 74. 은하수를 건너다 이영백 시골 여름날 노을이 지면 산그늘 내리고, 어둠 내려 깔린다. 어둑해지면서 아버지를 따라 일 나갔던 머슴 둘이 소 몰고 지게에 쟁기 얹어 힘겹게 도착한다. 우리 집 충견 라시도 사람들이 많다고 컹컹 짖어 준다. 수탉이 울 시간도 아니면서 꼬끼오 울면서 암탉들 사이에 꼭 끼어 있다고 알린다. 저녁나절에 미리 우리 집을 찾아 온 무전여행 대학생 둘이 찾아 들었다. 대학에서는 방학을 초등학교보다 빨리하나 보다. 전국적으로 다니는 중에 신라천년의 고장 경주에서 삶의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큰 포부를 밝혀 인색한 아버지의 마음을 열었다. 함께 일 도우는 조건으로 밥 먹게 해주었다. 어둠살이 내려서 외양간과 마당 너른 곳과 외양간에 소들은 끈 묶이고 사랑채 부엌에는 쇠죽 끓이는 냄새가 진동..
(엽수수필) 73. 물수제비뜨지 마라 73. 물수제비뜨지 마라 이영백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Thales)는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 하여 일원설을 주장하였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만물의 근원은 땅(地)·물(水)·공기(空氣)·불(火)로 사원설을 주장하였다. 물은 사람살이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물위에 납작한 돌을 던져 물수제비를 뜨면서 놀고 있다. 물을 희롱한다. 물이 얼마나 아플까? 심지어 영국에서는 물수제비뜨기 세계대회를 유치하였다. 사람은 물 없이는 일주일을 견디기 어려우며, 체내 수분의 12% 정도를 잃으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찍 물 사용하는 비법을 가르쳤다. 쌀 씻은 물은 함부로 쏟지 않는다. 큰 그릇에 모아 두었다가 숭늉이나 국을 끓이는데 사용하게 하였다. 그래도 남으면 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