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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48. 시래천 도랑에 사는 부들 엽서수필 5 : 또 천 년의 달빛 흐르는 형산강 48. 시래천 도랑에 사는 부들 이영백 셋째형 주막에서 일보다가 손님도 없고, 심심하여 길 따라 거랑 따라 시래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도랑가 습지에 앉았다. 그때는 이름조차 몰랐던 “부들”이 보였다. 마치 핫도그를 버드나무 막대에다 꽂아 배고픈 나를 유혹하듯 하늘 향해 직립하여 있다. “부들”은 한자로 “감포(甘蒲)”라고도 한다. 영어로는 고양이 꼬리처럼 보이는지 “Cattail”이라 하네. 이름은 잎이 부드럽기 때문에 부들부들하다는 뜻에서 “부들”로 부르는 모양이다. 꼬투리 꺾어 손으로 후벼 파 퍼뜨리면 종이휴지처럼 솜이 된다. 부들도 처음부터 그런 핫도그처럼 생긴 게 아니다. 줄기가 올라오면서 밋밋하게 자라다가 잎줄기 끝으로부터 원기둥 모양의 꽃이삭이 차..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47. 시래천 둑의 하얀 민들레 엽서수필 5 : 또 천 년의 달빛 흐르는 형산강 47. 시래천 둑의 하얀 민들레 이영백 하얀 민들레가 피는 둑이 그립다. 들판에는 어찌 노란색으로만 피는 민들레뿐인가? 하얀 민들레는 우리나라 토종이라 약이 된다고 모두 캐 갔으니 잘 보이지 않는다. 민들레는 민꽃이 아니라 씨앗으로 번식하는 식물이다. 유행가 때문에 홀씨로 번식하는 줄 착각한다. 민들레는 씨앗이 있다. 시래천 둑에 핀 하얀 민들레가 그립다. 잎은 뾰족하고 잎 몸은 깊게 갈라진다. 갈래는 6~8쌍이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꽃은 4~5월에 피는데, 흰색 꽃이 지름 3~7㎝ 정도로 잎과 같은 길이의 꽃줄기 위에 달린다. 열매는 6~7월경 검은색 종자로 은색 “갓털”이 붙어 있다. 이 갓털은 아마도 하느님이 만들어주신 것은 아닐까? 민들레 홀씨..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46. 가로수 그늘에 서면 엽서수필 5 : 또 천 년의 달빛 흐르는 형산강 46. 가로수 그늘에 서면 이영백 고향에 들리면 미루나무 가로수가 많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어렸을 때는 천편일률적으로 버드나무뿐이었다. 21세기에는 시대 적응이 빨라 가로수로 영동, 상주에는 감나무를, 예산과 충주에서는 사과나무를 심었다. 지방 자치제로 지역마다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 이팝나무, 종려나무, 은행나무, 백일홍도 심는다. 예전에는 걸어 다녔기에 더운 여름날 신작로 밑으로 걸으면 가로수 버드나무 그늘로 인하여 시원하였다. 가로수는 왜 심는가? 도로에 풍치를 주거나 눈이 많이 오던 시절에는 방향구분을 위해 심었다. 근세조선시대에는 10리마다 심은 나무를 “후수(堠樹)”라 하였다. 도성에는 10리마다 소후, 30리마다 대후를 세웠다. 나중에는 아예..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45. 소정역을 아시나요 엽서수필 5 : 또 천 년의 달빛 흐르는 형산강 45. 소정역을 아시나요 이영백 무너진 공굴 다리는 협궤 철도교다. 그곳을 “구철둑”이라 불렀다. 광궤철도가 생기고부터 철로를 새로 옮겨 설치하였기 때문이다. 새로 옮긴 역 이름은 “불국사역”이라 불리었다. 구역(舊驛)은 현재 삼각로터리 방형분묘 앞에 있었으니 최초 역명은 “소정역(蘇亭驛)”이었다. 동 이름 중에 구정(九政)동에는 자연지명이 있다. 소정각단, 윗마을, 다릿거리, 탑거리, 새시장마을, 구시장마을 등이다. 소정각단은 줄여서 “소정”이라 불렀다. 소정에는 100여 년 전부터 이곳에 살던 경주이씨가 (구)장터마을에 행인들이 쉬어가도록 큰 소나무 정자를 세우고, 상량문에 “소정(蘇亭)”이라 써서 걸었다고 하여 소정이라 한다. “소정각단”에서 어미 -..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44. 무너진 공굴다리 엽서수필 5 : 또 천 년의 달빛 흐르는 형산강 44. 무너진 공굴 다리 이영백 나는 곧잘 이런 이야기한다. “과거 왕조시대까지는 평지에 도로가 거의 없었다. 그것은 평지에 강이 흘러가니까 도로 만들려면 다리를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예전에는 다리라는 것이 거개가 나무다리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렸을 때는 “복아! 공굴 다리에 가서 철사 좀 끊어 오이라.”하였다. 공굴? “공굴”이 무엇인가? 국어사전에 “공굴”은 콘크리이트(concrete)라고 나온다. 도대체 누가 “공굴”이라고 말하였는가? 일본사람들이 영어가 잘 안 되어 콘크리이트를 “공굴”이라고 한 것이다. 그것도 외래어로 굳어졌으니 우리나라 국어사전에도 엄연히 올라있다. 게다가 “‘공굴 다리’는 콘크리이트에 철근을 넣어 만든 다리.”라고 ..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43. 자갈치다 엽서수필 5 : 또 천 년의 달빛 흐르는 형산강 43. 자갈치다 이영백 제목이 “자갈치다”라고 하니 부산의 횟집 “자갈치시장”이 생각난다. 그러나 아무 관계가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포장도로가 아주 발달하여 도로보수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례로 정하여 시행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전에는 도로관리를 지역민들이 하였다. 우리나라의「도로법」은 1961년(초교 5학년 때) 12월 27일 처음으로 제정되었다. 1962년 1월 1일부터 기존(1938년)에 시행하던 「조선도로령」을 24년 만에 폐지하여 그것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불행하게도 4~5학년 때에는 국도를 지방에서 보수하였다. 그러나 지역민에게 떠맡기고 있었다. 비포장도로에 화물자동차가 하도 많이 다녀 자갈이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저절로 도로에 웅덩이가..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42. 새골천에 왕잠자리 앉다 엽서수필 5 : 또 천 년의 달빛 흐르는 형산강 42. 새골천에 왕잠자리 앉다 이영백 어린 날 시골에서 헬리콥터 구경은 하늘의 별따기다. 아니 볼 수조차 없었다. 1957년 입학한 초교는 시설도 열악하여 어린 우리들이 만들어 가야 하였다. 교실 처마 밑의 자갈은 고사리 손으로 강에서 책보자기에 담아 날랐다. 자갈을 둥쳐 메고 오면 오른 팔뚝에 퍼런 잉크도장 세 번이나 받아야 그날 일이 끝났다. 자갈은 하동 새골에서 물이 흐르던 곳에서 채취하였다. 2학년 때다. 재미나는 산수공부 시간에 재미나게 공부를 한창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하늘 찢는 “투투투~ 투투투~”하는 요란한 소리가 학교운동장 위에서 소리가 났다. 그러나 그 소리를 내는 장본인은 보이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하도 투투투~ 투투투~ 하는 소리가 ..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41. 강 건너 폭발소리 엽서수필 5 : 또 천 년의 달빛 흐르는 형산강 41. 강 건너 폭발소리 이영백 촌에 사는 소년이 TNT와 다이너마이트를 어찌 구분하랴. 어릴 때 윗동네 젊은 부부가 풍전등화 같은 삶을 살아간다. 축전지의 플러스, 마이너스를 합선시켜 민물도랑의 미꾸라지를 잡아서 생활하였다. 이 기구 이름을 “밧데리”라 불렀다. 물론 그 기구를 사용하여 고기를 잡으면 불법이란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쩌랴. 동네에 소문이 돌았다. 희한한 방법으로 고기 잡는다고 구경 오라는 것이다. 그것은 중뱅이 마을에서 도랑타고 내린 물이 시래천에 둑도 옳게 없던 시절 그냥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던 곳이다. 물이 고이니 고기는 산다. 시골이라 그 소문 듣고 구경하려고 바글바글 모여들었다. 거개가 어린 조무래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