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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116. 의자에 앉으면 좋다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116. 의자에 앉으면 좋다

이영백

 

 의자에 앉으면 글을 쓴다. 고기가 낚시 바늘 미늘에 걸린 것과 같다. 마치 미늘에 걸려 파닥이듯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쓴다. 누가 무어래도 글을 쓰고 있다.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의자에 앉으면 좋다.

 2층 창작 방의 창을 통하여 밖을 내다본다. 같은 눈높이에 이웃하는 래미안(來美安)아파트 2층이 보인다. 그 집들의 창문은 늘 닫혀있다. 단지에 심어 둔 모감주나무를 철따라 감상할 수 있어서 좋다. 모감주나무는 잎이 무성하면 연녹색으로 적색벽돌에 돋보인다. 또 꽃이 필 때면 온통 노랗게 보이고, 열매가 맺히면 붉다. 겨울이면 새 하얀 눈을 덮어 쓰고 있다.

 의자에 앉으면 글을 쓴다. 간혹 조용하면 “Itˈs a world receiver!”라고 적혀 있는 라디오의 볼륨을 올린다. 눈과 손가락으로 컴퓨터자판기에 글을 누르는 동안 라디오에서는 유행가가 울러 퍼져서 귀로 듣는다. 혼자 듣지만 볼륨을 더 높여가면서 리듬 맞추듯 그 장단에 글 만들어내고 있다. 방금도 유행가 신유가 부른 “시계바늘”이 울러 퍼진다. “사는 게 뭐 별거 있더냐? …”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삶의 별것을 만들려고 글을 쓴다.

 누가 그랬다. 하나의 목적을 이루려면 끝을 보아야 한다고. 글을 쓴다면 의자에 궁둥이 붙이고 얼마나 오래 앉아있었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한 번 의자에 앉으면 좀체 일어서지 않으니까 근운동으로 의자를 붙잡고 발뒤축 들고 구부렸다 폈다 반복하여 운동하라고 일러 준다. 내자는 앞날이 걱정되니까 운동하라고 역시 가르쳐 준 것이다. 부인, 고맙소!

 넓은 모니터를 일탈하려고 휴대폰 집어 든다. 좁은 화면이지만 손안에 세상을 불러들인다. 지인들이 보내주는 정보는 나를 기막히게 한다. 그 많은 정보를 자기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지인들에게까지 보내라고 강요한다. 아니 위협(?)도 한다. 세상 많이 허허롭다. 절대 타인에게 강요는 하지 말지라.

 의자에 앉으면 내자가 간식을 갖다 놓는다. 대개 음료수(생수ㆍ약물)와 빵, 과일 등을 내어 온다. 머리를 짜내다 보면 흐르는 시간은 빠르다. 배가 고파 오면서 연거푸 집어 들고 맛나게 먹는다. 빈 그릇으로 변한다.

 책상 앞에 앉으면 가장 편안하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로 물어오니 글은 계속 이어진다. 의자에 앉으면 참 좋다. 우수수 글이 별처럼 쏟아진다.

(20210909.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