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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111. 독도문예대전에서 특별상 받다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111. 독도문예대전에서 특별상 받다

이영백

 

 의자에 앉으면 글을 쓴다. 늘 그렇게 글을 쓴다. 누가 알려 준다. “대한민국 독도문예대전”이 있다고 말이다. 그 얘기를 듣자말자 글 쓰고 싶어 좀이 쑤신다. 제목은 “1966년 울릉도 안녕”으로 정한다.

 취지는 독도와 울릉도를 포함하여 주제를 정하면 되었다. 울릉도하면 또 소년기에 천지분간도 못하던 시절 막연히 여름방학을 통하여 무전여행 하듯 다녀오다가 죽을 번한 경우가 생각났다.

 중2때 27명을 데리고 겁도 없이 생물선생님 말만 듣고 고향에서 1966년 8월 15일에 포항 항구로 갔다가 태풍 만나 이틀간 시내에서 기다렸다. 가져간 돈 모두 쓰고 17일 저녁에 태풍이 덜 해제 되어도 “청룡호”에 올랐다. 급기야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자말자 후회하여도 늦고 말았다. 쌀 한 됫박과 돈 일천 원 준비한 것이 전부였다. 포항에서 대기 이틀 동안에 모두 돈 써버렸다. 청룡호 선비 265원인데 학생은 205원으로 선승하였다.

 내 배는 살같이 동해를 지난다. 포항 등대가 안 보이고 몰아치는 태풍으로 뱃멀미를 시작하였다. 용케 멀미를 안 하였으나 25명 뒤치다꺼리하다 지쳐버렸다. 10시간이면 되는데 열두 시간이나 지나서 겨우 도착하였다. 배는 45도씩 기울어지면서 겨우 도착하였다. 하복은 3등 선실바닥을 얼마나 잘 닦았으면 흰 옷이 아니라 검은 색으로 염색되어 있다.

 도착하고 보니 마중도 없었고, 찾았더니 토사곽란 맞아 알아서 구경하고 가라하였다. 그때부터 개고생은 모두하고 울릉도 한 바퀴를 걸어서 돌고 도동으로 왔다. 배고프고, 집 그리운 짐승이 되었다. 나올 배 값도 없다.

 고향 지인 어른이 울릉교육장을 하고 있었다. 다짜고짜로 찾아가서 배를 탈 수 있도록 지원하여 달라고 하였다. 코대답도 없다. 아이디어를 내었다. 돈 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 고향후배 까마귀들 집으로 돌아갈 방법만 제안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배를 탔다. 또 배를 태워 주었다.

 교육장 직인 하나 찍은 공문서로 27명이 배를 타고 포항에 도착하였다. “1966년 울릉도 안녕?”이라고 손 흔들어 주었다. 구사일생이었다.

 이런류 글을 써 보내었더니 문학부문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최우수상 1명, 우수상 1명, 특별상 2명이었다. 그래도 참 감사하였다.

(20210831.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