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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100. 나를 수필가라고?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100. 나를 수필가라고?

이영백

 

 지나고 보니 그렇게 수필가(隨筆家)가 되었다. 수필가? 처음에 친구가 원고 뭉치를 들고 와서 교정하여 달라고 하였다. 퇴근시간에 찾아와서 당일치기 250여 면의 글을 모두 교정하여 달라니 약간 힘이 들고 약이 올랐다. 나도 이 정도 글이라면 수필가가 되어 보리라 작심하고 5년간 글을 썼다. 300여 편, 6권의 수필집 초고 원고를 썼다. 그렇게 해서 등단한 것이다.

 첫 번째 책에는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더듬어 글을 썼다. 첫 권 제목이 “내 고향이 그리운 것은”이라 정하였다. 어렸을 때 기억 더듬어 무턱대고 기억들이란 것을 모두 소환하여 줄글로 남겼다.

 두 번째 책에는 고향 집둘레 나무, 풀을 찾아 1부 꾀양, 감, 아도, 뽕 등 2부 물방개, 거머리, 새비, 댕댕이 덩굴, 고디 등 3부에 고향 먹거리 4부에 살던 집 5부 고향에서 애절한 것 6부에 술 익는 마을 7부 고향 찾는 이유 등으로 “내 고향 뒷동산”이라 정하였다.

 세 번째 책에는 초임 근무지 초등학교에서의 애환을 그린 “파도 소리에 묻혀”, 네 번째 책에는 두 번째 학교의 애환으로 “산골짝의 다람쥐”, 다섯 번째 책에는 세 번째 학교 근무이야기 “파도치는 등대 아래”, 여섯 번째 책에는 네 번째 학교 근무이야기 “왕릉 숲속으로”정하였다.

 6권 300여 편에서 7편을 골라 지방 문예잡지에 보내어 신인문학상을 받아 수필가로 등단하였다. 모지(母誌)인 「월간 한비문학」에 글을 발표하였다. 겨우 운전면허증을 받았을 뿐이다. 결코 한 번도 연수받지 않았으니 원활하게 글 쓸 수 있는 운전이 아니었다. 우물의 안의 개구리일 뿐이다.

 무슨 일에나 깊이 빠져 보아야할 것이다. 스스로 수필이론을 공부하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수필이론을 3년간 줄기차게 반복 공부하였다. 많은 글제를 만났다. 일 주일간의 고민으로 한 편씩 글을 발표하고, 합평하고, 좌절과 용기를 함께하면서 이론공부와 작품 쓰기에 아주 골몰하여 모았다.

 그렇게 수필가가 되었다. 자신의 필력과 이론을 접합하고, 잘 쓴 글이 무엇이며, 고쳐야 하는 글은 무엇인가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다. 한 편의 글이 곧 나의 얼굴이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엽서수필 장르도 개발한다.

 수필가라고 하면 평생 방심 말고, 일생동안 노력하므로 지킬 일이다.

(20210812.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