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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99. 아제의 변명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99. 아제의 변명

이영백

 

 곧잘 변명을 확인하듯 흔히 사용하는 말로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고 한다. 요즘은 “테스 형”이 유행가로 뜬다. 분명 나도 직장을 두 번이나 떠나버린 변명을 하지 않았다. 아제의 변명으로 스스로 밝히고자 한다.

 턱 빠지게 웃지도 못할 일들로 최초의 직장을 얻었다. 1960년대 말이라도 집안 형편이 좋은 사람들은 학비 받아가면서 공부하고 안 되면 입시학원에 다녀서라도 보완하여 S대학교로 입학하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의 이상한 교육철학으로 신학문을 기웃거리지도 못하게 하였다. 그렇게 대학까지 고학(苦學)하면서 학창시절을 스스로 돈 벌어 벼랑길 위 걷듯 고생하면서 배워야 하였다. 군대라는 굴레로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2개월 대기하였다가 발령 받았다. 알바라도 해서 억세게 운 좋은 놈이다.

 교육대학 때 “송충이는 솔잎 먹어야 한다.”라고 귀가 아프도록 듣고 배웠는데 의무 복무연한 5년을 넘기고 사표를 내었다. 초등학교 교사 직업이 하기 싫어서 사표 낸 것은 더욱 아니다. 날개 없이 날고 싶어 사표를 낸 것이다. 사표는 시원섭섭하였다. 모은 점수가 아깝게 모두 날아가 버렸다.

 전문대학 행정 7급(부주사)에서 3급(부참여)까지 26년 4개월은 꿈같이 지나갔다. 본래 범이 무서워 피하면 여우를 만난다 했든가? 사립대학 행정을 맡아 하면서 많은 것에 부대끼며 근무하였다. 전문대학 심화과정을 제안하고, 대학 교명을 두 번이나 바꾸었다. 아날로그 증명시대를 인터넷으로 전환 시켜 사용하였다. 대학홍보를 현대화하였다. 터널을 지나 온듯하다.

 한 번 의원면직을 낸 경험으로 정년 3년 남겨두고 또 내었다. 흔히 말해서 “명예퇴직”을 하였다. 대신에 하릴없어 5년간 글쓰기로 제2의 인생준비를 하였다. 수필가로 등단하였다. 또 논픽션가로 등단하였다.

 21세기는 평생직장이 없어진다. 급변하는 시대에 빨리 끝내고 필요시 새롭게 옮겨가야 하는 것이다. 아제의 변명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 사실은 싫어하기 전에 먼저 떠나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게 인생에서 직업을 두 번이나 스스로 “의원면직”하였다. 그렇게 시원섭섭하였다.

 직장을 얻어서 스스로 물러나고, 또 직장을 얻어 생활하였다. 아제의 변명으로 대신 답하고자 한다. 차마 그것이 인생의 혜안일 줄이야.

(20210810. 화. 말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