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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96. 무명교사 이로소이다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96. 무명교사 이로소이다

이영백

 

 결코 스스로 칭찬받고자 교사가 되지 아니하겠다. 일찍이 외국 시인 헨리 반 다이크(Hanry Van Dyke)가 쓴 “무명교사의 예찬”을 교육대학생일 때부터 읽었다. 대단한 예찬이다. 물론 그것을 쓴 시인에게는 무어라 할 수도 없다. 진정 대한민국 교사로서 무명교사를 탓하고자 함도 아니요, 더욱 칭찬 받고자 함도 아니다. 단지 가르침이 좋아서 교사가 되고, 이 나라 기둥 되라고 독려하려는 작은 욕심으로 교사 직업으로 출발한 것이다.

 고사리 같은 앙증맞은 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써내려 가는 공책 위의 글씨는 삐뚤빼뚤하여도 그것이 과히 예술이다. 최초로 맡은 50명 학급의 담임으로서 그들에게 교과서뿐만 아니고, 현대문명을 가르치고 생활의 예절을 체득시키려고 무던히 애썼다. 아울러 고운 심성이 교육의 목표였다.

 내가 5월에 중간발령 받고 도구교과로 학습 진단을 실시하였다. 받아쓰기 20문제, 4학년 초에 걸 맞는 산수문제 풀기 등으로 각 과목 평균점수가 25점이었다. 학습 성취도가 1/4에 정체되어 있어서 큰 난관이었다.

 1학년은 여선생님이 연애한다고 통째로 교실 비웠고, 2학년은 교감선생님반이라 10시 출근 후 교무실에 가고 전하는 말씀은 “자습”이라고 하였다. 3학년은 할아버지 선생님이라 무엇을 가르치는지 조차도 몰랐다. 4학년은 총각선생으로 4월 10일자 군대영장 받고 공부는 뒷전이었다. 대한민국 초등교육을 왜 이렇게 방치하여 두었는가? 나는 설령 무명교사일지라도 맡은 학생들은 읽고, 쓰고는 원활하게 하리라 작정하였다.

 진단학습 결과를 들고 교장실로 갔다. 진단 수준을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어떻게 반을 운영하겠느냐고 물으셨다. 정규시간은 교육과정대로 가르치고, 두 시간씩 무보수로 도구교과를 1학년부터 가르치겠다고 말씀드렸다. 학부모님에게 통지하여 확인서에 날인 받은 학생만 가르치라고 하였다.

 1~3학년 국어, 산수책을 다시 나눠주고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한 달 가르치니 실력의 차이가 나고, 석 달 후에는 4학년 정도 수준으로 올라 왔다.

 교육은 A를 A’로 변화시키는 작업이다. 그 학생을 4~6학년 3년간 계속 가르치어 관내 J중학교 반 배치고사에서 1, 2, 3, 5등을 휩쓸었다. 단 4등만 면소재지 J초교에 내어 주었다. 나는 무명교사이로소이다.

(20210805.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