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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95. 2급으로 연구주임교사 되다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95. 2급으로 연구주임교사 되다

이영백

 

 초등학교 교사의 직업적 매력은 앵무새 강의가 아니다. 초등학교 교사는 어린 학생들과 같이 삶을 사는 즐거움이다. 여유 있고 삶을 즐기려는 생각이었다면 초교 교사야말로 무명교사로서 가장 봉사하는 거룩한 직업이다.

 대한민국 초등교육에 봉사할 기회를 받은 사람이니 매일 즐거웠다. 최초 4학년 50명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100개마다 배우려는 학생들로 인하여 즐거웠다. 교문에서 바다가 10여 미터 거리로 두고 풍금소리내면서 파도소리를 반주삼아 바다보이는 교실이다. 오로지 내가 맡은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 하여 가르치는 일이다. 4,5,6학년 3년간 데리고 제9회로 졸업시켰다.

 두 번째 학교에서 현장연구 논문연구제출로 푸른 기장증을 받고부터 본격적으로 연구에 빠졌다. P대통령의 국민정신교육을 강화하던 시기에 도덕과목의 “예화자료를 통한 효의 실천연구”이란 주제로 연구하였다. 경상북도 교육연구원에서 “현직연구원 연구보고서(1977년)”에 내 이름이 인쇄되어 세 번째 전출한 감포초등학교로 배달되어 도착하였다.

 6편이 실려 있었다. 내 이름이 활자로 인쇄되었을 뿐만 아니라 비록 초보연구지만 논문이 모두 인쇄되어 있었다. 작은 소책자지만 그 때는 원지로 등사하던 시절에 활자로 인쇄되어 나온 결과물로서 너무 들뜨게 만들었다. 실험군 감포초교와 비교군 영일군 내북초교로 다시 연구에 들어갔다.

 경주시교육청에서 “1979 화랑교육”이라는 430여 면의 두터운 볼륨의 기관지에 “현장연구 및 실천사례”에 두 번째로 내 논문이 실렸다. 활자 인쇄는 경비가 많기 때문에 타자로 쳐 책을 복사로 만든 것이다. 내 주제는 계속 연구인 “예화자료 개발과 활용을 통한 아동의 효행 실천 연구”였다. 당당 최고상인 “특상”을 받았다.

 그렇게 연구 분야에 집중하였다. 졸업식 날 장학사가 찾았다. 2월 중에 인사내신서를 내 달라고 하였다 “문교부지정 농촌형 시범급식학교”의 연구주임교사 자리로 이동하여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2급 정교사라고 말씀드렸다. 내신서만 내면 된다고 하였다. 슬라이드 700여 장을 촬영하여 70매만 엄선하여 보고(최초 초교 새마을분야 학교)준비를 완료하였다.

 그렇게 문교부 지정 연구학교 2급 정교사로 연구주임교사가 되었다.

(20210803.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