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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92. 학위 놓고 갈등하다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92. 학위 놓고 갈등하다

이영백

 

 형제들 사이에도 태어남의 순서가 매우 중요하다. 그 태어남의 사회적 환경으로 삶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고 그런 현상에 머물러 무엇이 되고자 결정함에도 매우 중요하다. 삶이나 학문의 목적은 나에게 아마도 환쟁이가 되었을 것이다. 어찌 자기 삶의 목표를 모르고 사는가?

 삶에서 한문을 2년 정도 배운 것이 덕이라면 덕이요, 손해라면 손해가 되었다. 지나고 보니 한문 배워둔 것도 결코 손해는 아니었다. 대학원 전공을 겁도 없이 국어로 선택하게 된 동기도 관련이 무척 많았다.

 그랬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국민학교 졸업하면 그것이 가장 기본이요, 그 이상의 공부는 필요치 않는가? 화두는 시대에 걸 맞는 중ㆍ고 과정은 공부 시켜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생각은 농촌에서 논 두 마지기에 서당에서 한문만 배우면 국민 될 자격이 충분한 것으로 생각하였기에 신학문을 못하도록 한 것이다. 한문을 배우고 남는 시간이 있으면 오로지 집안일 도우는 것뿐이었다. 아버지와 나의 생각에는 크나큰 괴리현상이 형산강 하류의 강폭만큼이나 벌어졌다. 그것을 거슬러 이기려고 무척 고생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교육대학 졸업 후 동기들보다 일찍 발령받을 수 있었다. 중등준교사(국어) 검정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에 아버지 돌아가셨다. 오래 사시면 공부 더하고 어떻게라도 효도하려고 하였는데 참 허망하였다. 또 어머니 마음 편히 해 드리려고 일찍 나이 스물여섯에 결혼하고 말았다.

 세상 살아가는 데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교사 8년을 던지고 편입하고 도회지로 나왔다. 학부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하여 졸업하니 기로에 놓였다. 마지막 과정을 놓고 갈등에 빠졌다. 내자는 고만하라고 하였고, 누구는 사표내고 박사과정을 가라고도 하였다. 그 사이에서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앞이 안 보였기에 포기한 것이다.

 학위를 더 받으면 무엇 하나? 보따리장사 외래강사가 전부다. 사표내고나면 그런 직장 다시는 못 얻는다. 참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갈등에서 머리가 혼란하였다. 학위를 포기하자. 그렇게 학문 시기가 너무 늦고 말았다.

 평생 공부하고 살 줄 알았는데 대학기획을 맡으면서 새로운 일과 아이디어를 최대로 발휘하여 기여한 덕으로 내 생애를 별 탈 없이 살았다.

(20210729.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