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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4. 세상의 앞에서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4. 세상의 앞에서

이영백

 

 세상을 잘 몰랐다. 더구나 세계도 잘 몰랐다. 살아왔던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를 얕잡아 보았다. 나도 세상을 얕잡아 보았다. 그러나 참 무서운 세상이었다. 죽을 때까지의 비록 짧은 기간이겠지만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너른 공간, 세상의 앞에 서면 얼마나 행복할까?

 꿈을 가진 소년으로 작은 마을에서 태동하였다. 겨우 겨자씨 같은 인생을 시작하였다. 걸음마에서부터 아장아장 걸었다. 집 앞 용마래보(洑)에서 흘러내리는 물에 들어가 놀았다. 논둑에 심어진 논둑 콩 그늘 밑에서 할딱거리는 개구리를 들여다보면서 놀았다. 동해남부선 부산가는 기차가 지나가면 오포(午砲)가 울리고 배고픈 것을 알았다. 하늘 위로 비행기가 나른 궤적인 하얀 스크래치 연기를 보며 자랐다. 그렇게 또 나도 자라났다.

 초교 입학 전 서당에 다녔다. 학령에 따라 초교 입학하고, 졸업하고 신학문은 끝났다. 아버지 교육철학대로 서당에 다녔다. 2년간 서당 다니면서 몰래 강의록으로 중학교 공부를 마쳤다. 고교 몰래 시험쳐놓고 콩닥거리다 합격증 쥐고 내 돈 벌어가면서 공부하였다. 마지막 몸부림으로 교육대를 졸업하였다. 난 미늘 걸린 세상을 헤집어 다녔다. 그래 교사가 되었다.

 초교교사 자리는 힘겨웠다. 가르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조직이 문제였다. 교장, 교감, 선배들의 위세에 8년은 불행 중 다행으로 열네 장의 상장을 얻고 사표 던졌다. 하고픈 공부 때문에 공무원 별정직 교사를 버린 것이다. 도회지로 나와 대학에 근무하였다. 공부에 미늘 걸렸다.

 더 두려움마저 버리고 큰일을 벌이려 하였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감자뿌리를 뽑으면 달리어오는 것처럼 알맹이마다 달린 미늘이 너무 많았다. 끝은 허무하지만 박사과정을 접었다. 정년이란 마감을 3년 두고 직을 나왔다. 그것을 법적 용어로는 “의원면직(依願免職)”이라 한다.

 수필가로 등단하고, 논픽션가가 되어 글을 쓴다. 황혼에 이르러 내가 하고픈 일, 글 쓰는 작업이다. 지방 문예잡지 수필분과를 맡으면서 21세기 떠오르는 수필분야에서 “엽서수필”장르를 개발하고 있다. 글 쓰면서, 지으면서 스스로 황혼인생의 작은 미늘에 걸리었다.

 세상의 앞에서, 세계도 모르면서 세상을 탓할 수만 없다. 세상에 맞서다.

(20210225.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