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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6. 꿇다에 맞서다

엽서수필 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6. 꿇다에 맞서다

이영백

 

 “꿇다”는 없다. 굽혀 바닥에 대느니 차라리 죽겠다. 무릎 꿇지 않는 인생을 살다갈 것이다. “꿇다”의 굴종보다 “맞서다”의 반항으로 살아 있는 나의 용기가 있을수록 좋다. 오로지 나의 삶을 극기할 뿐이다.

 삶은 오로지 일직선상에 오르내림의 반복 표현으로 잇는다. 굽히거나 아부하거나 비굴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으로 삶에서 용기의 표상을 삼겠다. 그러지 아니함은 곧 나의 떳떳하지 못함일 것이다. 스스로도 반듯한 삶을 표상으로 하고 지속적 이어감을 자랑으로 남길 것이다. 굽히느니 맞서 싸울 것이다. 누구에게나 단호함은 한 낱말의 애 궂은 의미로 맞선다.

 내 삶에서 “꿇다”라는 사실에 봉착한다면 서러움뿐일 것이다. 단지 올 곧은 것으로 살아오면서 무릎 꿇음의 현실은 결코 오지 말아야 할 것이고, 정녕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설령 그럴 상황이 닥쳐도 차라리 쓰러질지언정 결코 무릎 꿇지 않을 것이다. 한 번 더 용기를 줄 뿐이다.

 생애에서 “꿇다”라는 용어는 회피할 것이다. “꿇다”와의 화해는 없을 것이며, 꿇지 않음을 자신으로 가지고 살 것이다. 누구는 무릎을 꿇고 양해를 구하라할 것이지만 결코 무릎 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단호하더라도 그런 행동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현재까지 삶에서도 그렇게까지 하지 않고 살아왔다. 나머지 삶에서도 절대 나타나지 않을 말은 “꿇다”일 것이다. 임란 때 동래부사 송상현처럼 무릎 꿇지 않는다.

 다시금 말하지만 “꿇다”는 굴종이다. 굴종은 피할 것이다. 아니할 것이다. 강직한 성격과 배치되는 굴종은 모두 피할 것이다. “꿇다”라는 말은 터키어 “ğril〔꾸를〕”의 동사(=굽다, 휘이다.)에서 왔다. 그 어원에서 보이듯 “굽다. 휘다.”는 말은 나의 성격에서부터 배치되는 언어일 뿐이다. 꿇느니 맞설 일이다. 다시 임란 때 송상현 부사처럼.

 앞으로도 꿇지 않는 삶을 살겠다. 하고 많은 언어에서 “꿇다”만은 버리고 살 것이다. 나름 떳떳하게 삶을 살아온 것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장대한 감정만 끓어오른다. “함부로 꿇다”라는 말은 쓰지 말라.

 “굻다”에 맞설 일이다. 뜻이 곧 길이요, 삶의 모토이기에 맞설 것이다. 나의 사전에는 평생 “꿇다”라는 말은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20210228. 일. 2.28민주운동기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