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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이군훈의 단풍하사

[스크랩] (푸른 숲 제8수필집)이군훈의 단풍하사-50.RNTC 제대자의 비극

신작수필

50. RNTC제대자의 비극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가장”이 의미하는 덕목을 보면,

① 가장 현명한 사람은 늘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② 가장 겸손한 사람은 개구리가 되어서도 올챙이 적 시절을 잊지 않는 사람이다.

③ 가장 넉넉한 사람은 자기한테 주어진 몫에 대하여 불평불만이 없는 사람이다.

④ 가장 강한 사람은 타오르는 욕망을 스스로 자제 할 수 있는 사람이며,

⑤ 가장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하여 감사하는 사람이고,

⑥ 가장 존경 받는 부자는 적시적소에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이다.

⑦ 가장 건강한 사람은 늘 웃는 사람이며,

⑧ 가장 인간성이 좋은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⑨ 가장 현명한 사람은 놀 때는 세상 모든 것을 잊고 놀며, 일 할 때는 오로지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이다.

⑩ 가장 좋은 스승은 제자에게 자신이 가진 지식을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고,

⑪ 가장 훌륭한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사람이다.

⑫ 가장 좋은 인격은 자기 자신을 알고 겸손하게 처신하는 사람이고, ⑬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늘 일하는 사람이며,

⑭ 가장 훌륭한 삶을 산 사람은 살아 있을 때보다 죽었을 때 이름이 빛나는 사람이다.

 나는 이런 덕목에서 어디, 어디에 속할까? ①②⑤⑧⑩⑫로 겨우 42.9%로 낙제점이다.

 RNTC병역수첩으로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돌아본다면 새로운 그림도 나올 법도 하다.

 내가 초교를 졸업(1963년)하고 서당에 다니지 아니하였다면, 내 인생도 달라졌을까? 제 때 공부를 하여 성공한 초교 동기생이 더러 있었다. 우리들이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남·여학생들로서 중학교 진학을 겨우 23%(38/168명) 전후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공부한 동기들은 거개가 개명한 집안의 자녀들이었다. 농촌에서 농사만 짓던 집안에서는 돈이 좀 있어도 자녀를 공부시키지 아니하였다.

 나는 서당 다니면서 강의록 공부도 하고 부모님 몰래 돈 벌어 숨어 공부했던 그 열악한 장소에서 오로지 공부하던 것과는 비교도 아니 되었다. 늦게라도 지방고등학교를 다니고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가정교사도 하고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내 좋아하던 공부 다 팽개치고 우선적으로 먹고 살기 위해 교육대학敎育大學에 간 나, 아니 RNTC로 군대도 해결하고 돈도 벌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금상첨화의 황금벌이 기회가 아니던가?

 내가 선택했던 교육대학 RNTC무관후보생을 입교하고 나서 1인 5역(대학생, 아르바이트, 군인, 자취, 오르간연습) 천신만고로 피골이 상접하고 뼈만 남았는데 여름방학에는 그것도 3주간씩 아주 몸살을 앓게 하였던 군대 입영훈련이 그 아니었더냐?

 토요일 오후에 그래도 아버지 뵈러 3시간 반이나 직행버스 타고 경주에 도착하였다. 또 12km 시내버스 타고 가서 삼각로터리 구정동에 내려서 또 약 2,000m 걸어서 부모님 뵈러 간다고 박하사탕 사들고 찾았으니 이 어찌 사람이라 하겠는가? 아버지는 늦자식으로 돈 한 푼 안 들이고 제 벌어 공부한다니 미안해서 그런지 자꾸 공부 그만 두라고 타이르셨다.

“얘야! 막내야 네 몰골이 그 무엇이냐? 밥이나 먹고 공부하느냐? 아니 군대는 국가 밥 먹고 옷 받고 훈련 받는데, 어찌 네 밥 먹고 군대 살이 하느냐? 네 고집이 그리도 독하더냐? 내 늙어서 돈이 없어 일전 한 푼도 못 보태주니 미안하구나.”

“아버지, 괜찮습니다. 그래도 백형은 제가 대학 다닌다고 아랫동네에서는 백형 칭찬이 대단합디다. 그러니 오히려 고마운 일입니다.”

 나는 어려움을 이기려고 이를 악물었다. 비극의 RNTC무관후보생의 길을 그래도 선택했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로 한 것을 나중에서야 후회하였다. 세상을 살면서 RNTC제대 후 현장에 취업이 되고 보니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 그리도 초등학교 교장선생님들이 마치 초등학생 수준의 덕행을 저지르고도 행복(?)해 하였을까? 나는 그것을 이미 앞에서 네 군데 근무한 학교생활을 글로 써 두었다. 비극의 RNTC무관후보생에서 제대를 하였고, 학교마다 복무연한(1973년 졸업 당시는 8년간)을 가지고 교장선생님이 졸라대고 무시하고 횡포를 일삼았다. 7년 11개월 25일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면서 학교 다섯 군데에 교장선생님 여섯 분을 모셨는데 세 번째 학교를 제외하고 그렇게 모질게, 악랄(?)하게 나를 이용했었다.

 이 비극의 RNTC를 이수하고서 말이다. 나중에 5년으로 단축되었던 시기로 1978년 5년 1일 되던 날 사표 용지를 들고 나가다가 내자에게 붙들려서 그만 두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 후 딱 3년을 더하고 교사직을 접었다. 󰃁

(푸른 숲/20100-20130715.)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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