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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이군훈의 단풍하사

[스크랩] (푸른 숲 제8수필집)이군훈의 단풍하사-47.RNTC단풍하사 제대신고

신작수필

47. RNTC단풍하사 제대신고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대한민국에 태어난 남자로서 국민의 4대 의무 중에 국방의 의무는 반드시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通過儀禮이다.

 나도 제 때에 진학을 하였더라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지나간 과거이지만, 내가 좋아하던 독어공부를 잘 해서 독어독문학자나, 아니면 생활의 여유를 즐기며 넉넉해서 미술공부를 하여서 유명한 화가가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아니면 지리공부를 열심히 하고 지리교사가 되거나 혹은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해서 ROTC를 복무하지 않았겠느냐 생각한다. 아마도 당시는 돈이 없어서 육군사관학교를 선택하지 않았겠는가도 생각해 본다. 아니면 평범하게 육군에 일반병으로 입대해서 행정병으로 근무하다가 고생만 하다가 제대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경우를 열거해 볼 뿐이다.

 또 지나고 보니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RNTC학군단 훈련을 받아서 비록 단풍하사지만 제대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시대적인 요구와 개인적은 상황에 따라서 RNTC지원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제쳐두고라도 나의 병역수첩을 받고 보니 본적지에 가서 징병종결 처분을 신고하여야 했다. 1973년 3월 6일에 경주시청에 들러 신상신고를 하니 신상신고 제14호로 사실을 증명하여 주었다. 그저 제대를 하였다고 생각하니 마냥 기분이 좋았다.

 거의 1년 반이나 같이 자취를 하였던 급우가 겪은 이야기로는 나중에 알았다. 키는 육척 장신에 나처럼 RNTC 병역수첩을 받고 본적지 당시 울주군 방어진 면사무소에 징병종결 처분을 신고하러 갔다고 한다. 문제는 병역수첩으로 신상신고를 하여야 제대증이 활용될 수 있는데, 기가 막힐 노릇은 징병 종결처분을 행정적으로 받아 주지를 아니하였다고 한다.

 그 급우는 호적이 많이 늦어서 이제 겨우 군대 신체검사를 받을 나인데 느닷없이 군 제대증을 들고 와서 그것도 예비역 하사로 징병종결 처분을 해 달라니 시골 면사무소 직원이 당황한 것은 사실이었다. 특히 ROTC도 아니고, 보도 듣지도 못한 RNTC라니 정보가 없던 당시로서는 그럴 만도 한 것이었다. 1973년 면사무소 행정시스템으로 이를 경상남도 병무청에 조회를 하여 회신이 오기까지 무려 6시간이 걸려서 겨우 제대가 확실하며 면사무소에서 징병종결 처분 신고를 받아 주어야 하는 것이 맞는다고 결론 내려졌다. 본적지 행정기관장은 징병종결 처분을 신고 받아야 된다는 것을 그제야 알고 처리하여 주었다고 한다. 그 급우는 호적이 많이 늦어 연령이 미달이라서 징병 종결처분 신고를 받는데도 홍역을 치렀다고 들려주었다.

 물론 나도 나의 병역수첩을 하나하나 확인한 후이기는 하였다. 제일 먼저 발령근거가 어디 있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바로 “5관사(병)제18호”가 그 근거이었다. 나의 예비역하사 군번 85400526×이었다. 학생군사 교육현황으로 제208학군단 RNTC로 1971년 3월 8일부터 1973년 2월 15일까지로 명기되어 있었다.

 RNTC하사관후보생으로 제대하여서 병역수첩을 얻기까지가 꼭 2년이 걸리었다. 나의 대학생활과 함께 땀 덩어리요, 눈물 덩어리로 얼룩진 병역수첩 하나를 겨우 획득하여 남자 개인 병역의무를 표시해 주는 것이었다.

 교육대학에서는 남학생 지원자 수가 줄어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러한 제도를 실시하게 된 것으로 우리들은 참 다행이었다. 시골 사람들은 돈도 궁했고, 더욱 대학이라는 곳을 진학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현금이었다. 사회적으로 우리도 덕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당시로서는 그냥 시골에서 필부필녀匹夫匹女나 장삼이사張三李四로 살아가야만 했을 것이다.

 이러한 RNTC제도로 인하여 대학을 마치고 초등학교 교사자격증을 취득 할 수가 있었고, 아울러 우리 때부터 취직자리가 어려웠지만 나는 용케도 2개월 쉬고 초교 교사를 할 수가 있었으니 바로 다달이 급료를 받는 것 말이다. 얼마나 다행 중에 다행이었든가? 그렇지 아니하면 당시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 국가공무원인 교사가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RNTC 군제대로 병역이 해제되었고, 취직이 되었으며, 돈을 벌수가 있었으니 결혼도 할 수가 있었다.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얻고 생활이 넉넉하지는 아니 하였지만 국가에서 지급되는 급료로 인하여 생활은 걱정이 없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RNTC제대도 다행이었고, 당시로서 군대가 해결되지 아니하였다면 초등학교 교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

(푸른 숲/20100-20130712.)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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