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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53."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를 마치며

신작수필

53. 『술은 술술 잘 넘어 가고』를 마치며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주사酒邪로는 이태백이 장진주將進酒에서 예찬한 술은 호박 빛깔의 액체였으며, 소동파는 술중에서 진 일주眞一酒를 사랑했다. 호박 빛깔의 술을 마신 이태백의 취흥은 하늘을 나는 기쁨이었고, 진 일주에 취한 소동파는 “눈 녹이고 구름을 헤쳐 유즙乳汁을 얻어서 빚어진 진 일주……. 그릇도 맑고 우물도 맑고 안팎이 맑구나.”라고 노래했다.

 이태백은 색깔이 있고 정열적인 술을, 소동파는 거울처럼 맑은 술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술을 즐기는 것은 시인·묵객이 아니더라도 동서東西가 한결 같다. 다만 동양은 조용히 마시는 미덕을, 서양은 떠들고 춤추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로마인들은 첫 잔은 갈증해소로, 둘째 잔은 영양을, 셋째 잔은 유쾌함을, 넷째 잔은 발광하기 위해 마신다. 유교사회에서는 비록 말술을 마셔도 말이 없어야 군자醉中不言眞君子라며 주사酒邪를 꺼렸다. 키케로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부터는 사려분별을 기대하지 말라고 하였다.. 동서고금을 통해 덕이 있는 치자治者는 애주가들이 많았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 술은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

 옛날 어떤 왕이 광대와 바보에게 각각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나쁜 것을 찾아오게 했다. 두 사람이 가져온 상자를 열어보니 다 같이 사람의 혀가 들어 있었다. 말은 가장 좋은 것도 가장 나쁜 것도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은 장진주사將進酒辭라는 최초의 사설시조를 남겼다.

『한 잔盞 먹새그녀. 또 한 잔 먹새그녀.

   곶 것거 산算 노코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새그녀.

   이 몸 주근 후면 지게 우희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의 만인萬人이 우러 네나.

   어욱 새, 속새, 덥가 나무, 백양白楊 수페 가기 곳 가면,

   누론 해, 힌 달, 가는 비, 굴근 눈, 쇼쇼리 바람 불 제 뉘 한잔 먹자 할고.

   하믈며 무덤 우희 잔나비 파람 불제야 뉘우친달 엇디리.』

라고 하였다. 정철이 지은 권주가다. 술을 먹기 시작하면서, 나름의 술에 대한 정체성을 찾고자 할 때 만났던 인물이 정철과 이태백이다. 이태백은 지금도 좋아한다. 전생이 이태백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정철의 장진주사는 예전과 같은 맑은 느낌이 유지되지 않는다. 읽고 음미하다 보면, 긍정보다는 부정으로, 희망보다는 체념으로, 현실성의 결여로, 자기 과시로, 속내가 아닌 표면으로, 느껴지는 건 술에 대해 나름의 해답을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조금은 건방진 변명을 해보고 싶다.

 물론, 술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술의 알싸함이 좋다. 과음은 싫다. 물론 가끔은 취하기도 한다. 기분 나쁠 때는 술을 피한다. 독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마시기도 하지만 적게 마신다. 몸이 허락하는 선까지만 마신다. 물론, 몸이 튼튼해서 어디까지인지는 모르지만, 술이 나를 구속해서는 안 된다. 술 때문에 아픈 경우도 있다.

 이제 술만 마시는 것은 별로다. 여흥을 느끼고자 한다. 그러하기를 바라고, 방향성을 그리 잡는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진행형이다. 후에 여유를 얻게 되면, 찻집 비슷한 걸 하나 차리고 싶은데, 술은 판매하지 않는다. 술은 뒤 구석에서 지인들과만 향유하고 싶다. 희망이지만 현실이고 술이 좋지만 술만큼 사람을 실망시키는 것도 없는 게 없다.

 

 솔뿌리 베고 누워 풋잠에 얼핏 드니

 꿈에 한 사람이 날더러 하는 말이

 그대를 내 모르랴 하늘의 신선이라

 황정경黃庭經 한 글자를 어찌하여 잘못 읽고

 인간 세상 내려와 우리를 따르는가?

 잠깐만 가지 마오. 이 술 한잔 먹어보오.【정철 『관동별곡』에서】

 

 앞 개(강)에 안개 걷고 뒤 뫼에 해 비친다.

 배 떠라(띄워라) 배 떠라

 밤물은 거의 지고 낮 물이 밀려온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강촌 온갖 꽃이 먼빛이 더욱 좋다.【윤선도어부사시사』 중 -봄】

 

 백만 왜적이 하루아침에 덮쳐드니

 이 나라 백성들 칼을 뽑아 달려갈 제

 백골은 무참하게 벌판에 널려 있고

 서울이며 고을들이 승냥이 굴 되었더라.【박인로 『태평사』에서】

 

 송강 정철鄭澈(1536∼1593)과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1561∼164),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임진왜란 전후의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문인이며 한국 문학사에서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이다.

 나는 무엇을 남겨야 하나. 겨우 하나 건진 것이 푸른 숲 제7수필집으로 『술은 술술 잘 넘어 가고』를 여기 남길 뿐이다. 󰃁

(푸른 숲/20100-20130524.)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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