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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49.술사랑

신작수필

49. 술사랑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나는 술을 사랑하지 아니한다. 술은 술로서 거리를 두고 있을 뿐이다. 내가 보아 온 정경들은 집집마다 술을 좋아 하던 안하던지 예쁜 병이나 이름 있는 양주 한 두 병씩이나 술병을 찬장에다가 모셔 놓은 것으로 보아서 그 사람들은 술을 아주 사랑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술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서 술장사(?)를 하여 보아서 알지만, 시골 길가 집에서 잔술을 팔았던 기억으로 정말 시골 노부(老父)들이 술을 사랑하는 것으로 느낀다. 한 병에 30원 하던 술을 기어이 잔술로 세 잔을 사 먹으니 말이다. 나는 처음에 그 노부가 셈법이 어두운 줄만 알았다. 30원 주고 한 병 사면 소주의 양이 많은데 기어이 한 잔 사 먹고 10원 주고, 그 독에 든 독한 술 35도짜리를 또 한 잔에 입맛을 들이고 10원을 들이밀면서 잔술을 즐기신다. 안주도 왕소금 한 알 아니면, 왕 멸치 한 마리인데도 그렇게 맛있게, 맛나게 마시는 노부의 술맛 느끼는 것을 어려서 본 것에 감탄할 뿐이다. 마침내 기어이 나머지 10원을 내고서 ‘한 잔 더 줄래!’라고 하던 그 말씀은 정말 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행할 수 없는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노부의 대답 왈 소주 한 병을 마시면 취하고, 잔술로 10원씩 내고 술 받는 그 때의 쾌감과 왕소금 오도독 씹을 때 안주 맛은 선녀가 주는 안주보다 귀하디귀한 술안주의 묘미이기도 하다니 기가 차는 술 사랑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시골에서는 막걸리를 사다가 제 때 모두 못 마시면 술맛이 간다고 한다. 이 때 어머니들은 술맛이 간 술을 술맛을 살리는 기술이 있다. 바로 부엌에다 대병에 담아 두고서 들고 나면서 한 번씩 대병을 들고 하는 말씀이 있다.

“내 캉 살자! 내 캉 살자!”

 그러면서 술병을 흔들어 대곤 한다. 바로 식초를 만드는 것이다. 시어서 못 먹는 술을 부엌에서 술병을 흔들어 사랑을 하면 바로 식초를 만들 수가 있다.

 술을 사랑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처 중부께서 살아생전에 술을 좋아 하였다. 찾아뵈면 곧장 들고 있던 술병을 놓고, 잔술을 안주도 없이 부어 마시고는 유리컵을 병뚜껑 대신에 술병 주둥이에 덮어 씌어 둔다. 시골 노부들도 술병을 두고서 술을 사랑하기 위하여, 술 때문에 자부들이 귀찮아 할까봐서 그저 안주 없이 술 마시는 술 사랑하기를 한다.

 장인도 퇴직을 하고 장모 일찍 돌아가고 처남이 없어 우리와 합가로 살 때 일이었다. 장인은 홀수 잔으로 술을 마시고 식사를 하였다. 나중에는 술상을 자주 차리지 못하니까, 결과적으로 술을 사다가 장문에다 넣어 두고 안주 없이 몰래 잔술을 즐기게 되었다. 내자가 이를 보고 어른을 나무랐다. 아무리 나무라도 그때뿐이다. 연세 들면 하지 말란다고 안 할 분이든가? 내자더러 아예, 소주와 안주를 평소에 갖다 두어라고 권하였다. 차라리 그 모양새가 훨씬 낫지 아니한가. 이미 마실 것에서 안주라도 두고 마시는 것이 속이라도 덜 버리지 않겠는가?

 장인도 젊었을 때는 무척 술을 사랑하였다. 담그는 술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지, 대병으로 소주를 사다 들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좋은 뿌리, 예를 들면 산삼부터, 더덕, 오미자, 구기자, 헛개, 오가피, 구엽초 등 나는 그 이름도 다 모를 술을 담가 두는 것이었다. 얼마나 술을 사랑하였으면 약 50여 대병을 담가 두었다.

 술을 너무 사랑한 분은 세상에 참 많았다. 나는 술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저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야기 하는 중에 매개체로 술이 나오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결코 술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술 담그는 것도 모르고, 술을 집에 진열하는 것도 모른다. 내자가 양주병이라도 생기면 갖다 두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늦게나마 이실직고 하는 것은 이제껏 많은 술을 마셔는 보았으나, 결코 집에서 혼자 맥주라도 한 통 따먹는 적도 없고, 혼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은 술로서 좋을 뿐이다. 나는 혼자 술 마시는 것은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술은 권하는 맛으로 마시고, 대화하는 매개체로만 인정할 뿐이다. 󰃁

(푸른 숲/20100-20130520.)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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