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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46.공집행방해죄

신작수필

46. 공무집행방해죄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1960년대 시골 생활에서는 참 단조로웠다. 고향 앞산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 올망졸망 집들이 자기 멋대로 지어져 있어 무질서 속에 질서를 유지하면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시골에서 논·밭에 농사를 짓고 살려면 힘이 든다. 봄이 되면 논갈이를 해서 물도 잡아두어야 한다. 못자리도 만들고 풋 나무를 하여 논에다 깔아서 땅 힘도 돋우어야 한다.

 밭에는 봄풀들이 파릇파릇 돋아나서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새파란 잎에서 줄기가 나오고, 꽃대가 돋아서 샛노란 장다리꽃에 흰나비들이 이 꽃 저 꽃으로 날아다니면서 춤추고 있다. 요즘에야 노란 장다리꽃을 유채라고 법석을 떤다.

일은 철따라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새참으로 동동주를 준비하여야 한다. 일일이 돈을 들여 술을 사다가 먹지 못하고, 집에서 밀주를 담가 두고 체로 글러서 들판에다 낸다.

 집집마다 농사일들이 철에 맞춰 잘도 해 낸다. 모두가 밥 힘이 있기 때문에 일도 하고, 술 힘으로 계속하게 된다. 논물 잡아 둔 곳에 개구리의 알이 부화하면서 물속에 검은색 타원형 고리로 무리지어 있다. 일찍 부화된 올챙이는 벌써 긴 꼬리를 흔들어 헤엄치고 있다. 강남 갔던 제비도 돌아와 초가 처마에 집을 짓고 나는 박씨를 물고 오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동네 집집마다 설치한 스피커에서 연속극과 뉴스도 들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공지사항도 알려준다. 시골도 조금 정보를 알게 되어 가고 있다. 비료가 배정되면 농협창고에서 배부 받아오고, 농자금이 지원되어도 반장 집으로 모이게 안내한다. 오늘은 방송이 흐르다가 느닷없이 공지방송이 쏟아져 나오고 만다.

“에∼! 반에서 알립니다. 오늘 세무서에서 밀주 추러 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밀주가 있는 가정에서는 잘 숨기기 바랍니다.”

“아이고, 일하면서 술 좀 담가 먹으려고 하는데도 안 된다 카이. 이걸 우짜노? 어디 갔나? 응이. 그 술 추러 온다고 안하나? 빨리 숨겨 레이!”

 문제는 시골집에서 술독을 어디다 숨긴단 말인가? 술독을 숨긴다 해도 뻔하다. 헛간, 부엌, 뒷간, 외양간, 거름무더기 등이 전부다. 세무서에서 반장 집에 먼저 들러서 정보를 알려 주고, 직원은 마을 앞산 높은 곳에 올라가 앉아서 약도를 그려 두고 집집마다 방송 듣고 술 숨기는 장소를 체크하여 기록하고 있었다.

 어느 집에서 술독을 어디에다가 들고 가서 숨겼다는 정보를 모두 알고서 귀신같이 숨긴 술독을 찾아내었다. 시골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숨겨 둔 술독을 어떻게 그렇게 잘 찾는가를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우리 집에도 세무서 직원 둘이 선 그라스를 끼고 사립문에 당도하였다.

 어머니는 술 추러 왔다고 하니까 그만 마음이 급해서 숨길 곳이 없어 술독을 들고 부엌으로 나왔다가, 들어갔다 하다가 그만 답삭 붙들리고 말았다.

“어무이! 보이소. 그 술독 마아 이리 가지고 오이소.”

“흐흐흐∼흑, 후∼이∼”

 쓸데없이 안내 방송을 하여서 무거운 술독을 들고 다니다가 숨기지도 못하면서 힘만 빼고서는 그대로 세무서 직원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가뜩이나 살기도 어려운데 세무서 직원이 이를 증거물로 들고 가면 당장 벌금이 나오겠지. 벌금도 술값으로 치면 여러 수십 배가 되겠지. 이를 어째.

 이때다. 아버지, 큰방 툇마루에 앉아 있다가 어머니를 뭐라고도 하지 못하였다. 술독을 증거물로 세무서 직원이 기록하고 있는 차에 (일하면서 새참에 먹을 것도)못 먹게 하는데 대한 호가 치민 나머지 그만 그 술독을 하늘 높이 쳐들고서 마당에다가 태질을 쳐 버렸다.

“퍼∼억∼퍽! 쨍∼그∼렁!”

 정말 순식간에 그 동동주를 담가 둔 술독이 박살나고 말았다. 박살난 자리에 잘 익은 술이 흩어지고, 단지조각으로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아니! 당신은 공무집행방해죄요!”

“나는 촌사람이라. 잘 모른데∼이.”

“공무집행방해도 몰라요!”

“몰라! 그래, 법대로 하면 된다 아이가! 법대로 해라.”

 참 난감한 것은 세무서 직원이었다. 술독에 술을 증거물로 가져가야 하는데, 증거물이 있어야 벌금을 부과할 것이다. 산산조각이 난 단지 조각으로 어찌 증거물이 되겠는가? 담가 둔 술은 마당에 흙 속으로 스며들어 버렸는데 증거물이 어디 있는가? 증거물이 모두 사라졌다.

하하하∼. 세무서 직원 둘은 그만 씩씩 거리면서 나가고 말았다. 나는 이 장면을 고스란히 보았다. 법적으로도 증거물이 사라졌으니, 저네들도 별 수가 없어서 엄포만 놓고 가버렸다.

 어떻게 보면 가장 무식할 때가 용감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말 증거로 술 단지를 가져갔더라면 분명 벌금이 나왔을 것이다. 아버지의 대단한 용기가 무식함에서 나왔지만 그 결과는 벌금이 부과되지 못함에 있다.

 당시 농민을 상대로 벌금도 벌금이지만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하려면 분명 증거물을 제출하여야 함에 잘 처리 못한 일이 되고 마니까 무마되고 말았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법적으로는 공무를 집행 하려는 공무원에게 폭행이나 협박하는 행위가 있어야만 죄가 되겠지만 오로지 증거물로 가져가려고 놓아 둔 단지를 들고 박살 낸 것이다. 󰃁

(푸른 숲/20100-201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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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집행방해죄(公務執行妨害罪, Obstruction of Justice) : 공무집행방해죄는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하는 죄이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136조 1항)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도 존재한다. 형량은 같다.(137조) 미국에서는 사법방해죄라고 부른다.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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