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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45.할아버지와 술

신작수필

45. 할아버지와 술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할아버지는 술을 좋아 하였다. 매일 술을 들고 들어왔다. 가장으로 살면서 하루의 생활에서 좋아도 한 잔이요, 싫어도 한 잔이다. 술과 하루의 일과는 연결되었다. 일을 하면서 새참으로 술을 들기 마련이고, 일을 하지 않은 날도 그날의 생체 바이오리듬에 따라서 들지 않고서는 하루의 일과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술로서 연결되는 하루의 삶이었다.

 글 읽기를 좋아하던 할아버지(車城李公 曼瑚學行 諱膺祚, 1861∼1917)는 집에 담근 술을 좋아하여서 이런 저런 사연으로 술을 무척 좋아 하였다고 한다.

 옛날에는 집에서 술을 담가 먹었다. 집에서 술을 담그려면 보관하여 둔 누룩을 절구통에 넣고서 빻아야 한다. 술밥을 짓고, 바람을 쏘여 식힌 후에 물을 적당히 섞어 단지에 비벼 넣는다. 방에서 제일 따뜻한 구들 목에 놓고 천으로 덮은 후에 끈으로 묶어 이불까지 덮어 둔다. 그래야 술이 잘 익는다.

 할아버지는 자녀를 4남매로 두셨다. 아들 셋에 딸 하나로 여섯 명이 한 방을 사용하였다. 당시에는 그렇게 좁은 방인데도 한 방에 살았다고 한다. 이렇게 좁은 방에서라도 술은 익혀야하기 때문에 안방 구들 목에 술 단지가 차지하고 있었다.

 한편 노비奴婢는 옥석玉石이라는 이름으로 머릿방에 살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말로는 옥돌이라 했겠다. 이런 자료가 호적단자戶籍單子에 적혀 있었다.

 겨울 기나긴 밤에도 사람인지라 생리로 소피를 보아야 한다. 옛날에는 요강尿綱, 夜壺을 방에다 두었다. 추워서 바깥에 나가지 못하니 그렇게 했다고 한다. 하기는 내가 어려서도 방에는 사기요강이 내내 있었다.

 요강은 시집가는 새색시 가마에도 넣어 갔고, 이사 갈 때는 요강에 쌀을 담아가야 잘 산다는 속설도 있었다.

 그날도 추워서 모두가 큰 방에 옹기종기 모여 잠을 자는데, 아버지 귀에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고모가 잠자다가 일어나서 요강에 앉아 오줌을 누고 있었다. 고모는 비몽사몽간에 요강 뚜껑을 내리고 올라 앉아 소피를 보고 있었다.

이때 아버지가 할머니께 이른다.

“엄마! 누이가 아버지 술독에 오줌 눈데∼이.”

“뭐라고! 아이고 이런 가시나가? 세상에 일이 있나? 제발 그 자리에 가만 앉아 있어라.”

“아이고! 몰라! 몰라! 아인데, 아인데.”

할머니께서 정말 불을 켜고 보니 어린 고모가 술독에 앉아 있었던 것이었단다.

“아이고! 이 노무 가시나 야!”

“고만 두어라. 그것도 약이다. 술이나 오줌이나 섞이면 매 한가지 아니가? 가만 놓아두고 모두 잠이나 자거라.”

주무시던 할아버지는 고만 두어라고 한다. 아버지는 어떻게 요강과 술독에 소피보는 소리를 구분하였을까?

“아버지, 고모가 술독에 소피 본 것을 어찌 알았습니까?”

“그거야 바로 구분되지, 요강에 소피보면 소리가 요상하게 강하게 들리지만, 술독에 오줌 누면 담가 놓은 술에 오줌이 받히기 때문에 지르르 처∼얼∼척∼ 으로 들리지.”

 하하하. 당시 어린 아버지 귀에 들린 고모 소피소리에 온 방안에 잠자던 사람이 다 깨서 모두 알아 버렸다.

 낮에 할아버지는 그 술독을 들고 나가 체에 글러 하루 종일 잘 잡수었다고 하는 전설 아닌 전설이 있다. 할아버지는 의사도 아닌데 그 효과를 어떻게 알았을까?

 

 현대에 와서도 오줌은 토혈, 내출혈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특히 오줌은 폐를 강화하고, 담을 없애 준다. 또 목의 통증을 없애 주는 강장 작용을 한다. 오줌을 사용하려면 건강한 어린이의 동요(童尿)가 좋다.

 할아버지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오줌의 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면역항체증강작용(오줌에는 자신의 모든 질병을 퇴치하는 정보가 들어있는 가장 유효한 항체가 있음)이 있다.

둘째, 혈류촉진작용(오줌 성분 중에 칼리그레인이 혈압강하 작용을 하는 물질)이 있다.

셋째, 혈관확장작용(오줌 성분 중에 신비한 프로스타글래딘은 혈관확장, 혈압강하작용을 하는 물질)이 있다.

넷째, 혈전용해작용(신장에서 생산되어 오줌과 함께 배출 되는 유로키나제는 혈전을 용해하는 물질로 심근경색과 협심증에 효과) 등이 있다.

 만호학행 할아버지는 의사도 아니었는데 이런 좋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는 몰랐겠지만, 공부를 하면서 중국에서 나온 요료법(尿療法)을 아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 나는 할아버지를 그렇게 믿고 싶다. 󰃁

(푸른 숲/20100-20130516.)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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