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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30.구이 집

신작수필

30. 구이 집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도회지 직장생활을 하면서 선·후배 모시기가 참 어려웠다. 당시 구닥다리 선술집은 장사가 덜 되었다. 술 몇 잔 부어 놓고 주거니 받거니 떠들기만 한다. 자연히 매상이 오르지 아니한다.

 도시 도로변을 따라 고방(庫房)들이 줄을 서 있고, 낮이면 후져도 오후 여섯 시가 넘어서고 나면 하나 둘 조명이 밝게 비치고, 어떤 집에는 아예 반짝이는 불을 달고 미끈한 아가씨들이 손님을 기다리는 요즘 그 뭔가 하는 술집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었다.

 술집 이름이 하필 “○○구이 집”인가? 구이집이라는 것은 무슨 굽는 전문집인가? 아니었다. 1980년 대 초반부터 생기기 시작한 것으로 요즘처럼 그런 전문점이 아니었다.

요즘은 이름만 들어도 휘황찬란하다. 예를 들어 보면, 야자수 숯 탄 초벌구이 집, 복이 있는 조개 구이 집, 조개 장어구이 집, 산 머 남촌방 구이, 제주도 오겹살 왕돌 구이 집, 광주조개 리필 구이 집, 교대 활화산 조개구이 집, 어이없는 조개 구이 집, 외할머니 청국장, 목숨 살린 장어구이 집, 황금알 생오리 숯불구이 집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정말 이런 집들은 이런 음식을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1980년대 초에 막 생기기 시작한 구이 집에 들어가 보면 그런 전문 구이집이 아니었다. 탁자 몇 개를 놓아두거나 푹신한 소파 몇 개를 두었고 짧은 미니치마 입고 화장 짙게 한 젊은 아가씨, 흔히 말해서 아르바이트 대학생들로 대여섯 명씩 대기하면서 우리 술꾼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가서는 이런 술집도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늙수레한 주인아주머니만 혼자 앉아 동네 아저씨를 기다려 주는 술집으로 다시 변하고 말았다.

 맥주 몇 병 시켜 두면 삽시간에 한 잔씩 부어버리고 정작 술을 산 술꾼 입에 들어 올 술은 없고 만다. 붉은색 띠는 맥주병 수만을 헤아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면 안 되지. 무슨 우리가 팔부자라고, 술이 좋아서 술 먹으러 왔지. 술 퍼 먹이러 온 것은 아니었다.

 왜 구이집이라는 간판이 있는 술집에 자꾸 가게 되는 것인가? 어떻게 보면 업무가 많아서 술을 먹고 쉬러 가는 것이 아니라, 구이 집 아가씨 만나고 싶은 남정네의 욕심(?) 때문일 것이 맞을 것이다. 흔히 서넛이 몰려가서 옆자리에 아가씨 앉혀 술을 붓다가 점점 농이 짙어 가면서 아가씨를 유혹한다함이 맞을 것이다. 물론 네 남 없이 남자로서의 욕구일 것이다.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남여가 만나면 딴 생각과 딴 짓이 하고 싶은 것이 음양의 도리인 것을 어찌 유혹의 매개체인 술을 마시면서 그것도 칸막이를 해 두고서 남여가 짝짝이 앉아 그냥 술 마시는 것만 좋아하고 말 것인가?

 은근히 구이집 주인아주머니는 예쁜 아가씨 데려다가 비싼 월급 주면서 괜히 술파는 장사를 하겠는가? 술은 매개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처음에는 모두가 남자들이 맨송맨송하다가 술이 조금 들어가고부터는 아무리 숙맥인 남자라도 흐트러지게 마련이었다. 그것 참 묘한 매개체로다. 고놈의 매개체 때문에 매일 구이 집을 드나들게 마련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서 매일 가는 것이다. 정말 이상하다. 곁에 둔 아가씨와 만나서 아무 쓸모도 없는 시시껄렁한 음담패설을 좋아 웃어 주는 헛웃음에 그저 시간을 죽이고, 곁들여 맥주를 죽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재미난 술 습관이 있는 선배 한 분이 계셨다. 건축 관련 일을 하시던 분으로 공사를 확인하러 차를 타고 가시다가 사고를 당하셔서 세월은 흘렀지만 그 후유증이 남아서 술을 먹자고 자주 제의가 들어온다.

 어쩌다가 그 선배와 함께 술을 마시러 가게 되었다. 물론 나의 정보에 의하면 이 선배는 구이 집에 들러 맥주를 딱 한 병만 시켜 두고, 안주도 없이 땅콩만 달라고 하며, 서빙 하던 아가씨가 곁에 오면 앉지 말라고 거절하고, 먹던 술이 모자라도 딱 한 병 이상 시키지 않는다. 이런 방법으로 구이 집을 1차, 2차, 3차는 기본이고, 술값은 치르는 것도 아니고, 안 치르는 것도 아니며 술 먹다가, 화장실 들렀다가 그냥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술을 제법 마셔보았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뒤를 따라 다니면서 술값 계산하여야 했다. 그것도 주인아주머니에게 (적게 먹어서)미안하다며 인사하는 것도 여사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술을 먹으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욕먹으러 다니는 것이다. 이 선배는 구이 집이 맞지 않다. 그저 그날 여러 집을 거쳤다는 증명서를 떼러 다니는 것 같다.

 참 술꾼도 많고, 술 먹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구이 집이 새로 생긴 이름으로 당시는 정말 이상한 이름이었다. 구이 집에 굽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미니스커트 입은 아가씨들만 많아서 팁을 바라고, 술꾼 술을 빼앗아 먹는 블랙홀일 뿐이었다. 󰃁

(푸른 숲/20100-20130501.)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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