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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32.고급술집

신작수필

32. 고급술집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남정네는 살아가면서 술을 배우고 술을 마신다. 그것도 시골에서 배운 술이 점점 발전하여 도시로 왔다. 도시는 낮보다 밤이 더 휘황찬란하다. 밤이 더욱 그 도시를 빛나게 한다. 도시의 밤은 남자·여자들을 희한하게 짝짝이를 잘도 맞춰준다. 어찌하여 아무런 인연이나 전파도 쏘지 않았는데, 우연히 그렇게도 만나게 만들어 주는 시스템이 있는가.

 선술집에서, 포장마차로, 구이 집으로, 맥주 집으로 한 급 높은 룸 사롱하며 다 돌아 다녀 보았는데 최상급 고급술집에는 함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돈을 뿌려야 한다는 것이 맞다. 고급양주집이다. 남자로 태어나서 최소한 이런 술집을 한 번은 가 보아야 술집을 다녔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어디 한 번 가보자. 혼자 어떻게 그런 비싼 술집에 간단 말인가 또, 무슨 흥이 나고 무슨 재미로 간단 말인가?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경주에 사는 고교동기가 대구에 무슨 운전학원경영 때문에 2박 3일간 들리게 된다고, 오늘 첫날 시간이 나서 만나고 싶으니 다른 곳에 선약을 하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이것이 몇 년 만인가? 내가 시골 교사를 할 때 경주에서는 만났지만, 타향인 대구에서 만나려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대구에 입성할 때 그 친구도 대구에 잠깐 살았었는데 직장 이동으로 다시 경주로 가 버렸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서로 위치를 맞바꾸어 근무하게 만든 결과이리라.

 사전 약속이 되었는데 몇 시에 오는 지는 정확한 시간약속은 없었다. 그냥 내 업무나 하고 막연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연락이 왔다. 바로 내가 근무 하는 곳 앞 건물에 찾아 왔는데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른단다. 위치를 확인하고 바로 나갔다. 친구는 외제차를 몰고 왔다. 모두가 다 자기 형편에 맞춰 사는 것이다. 나는 차도 없는데 말이다. 사실 차는 있는데 내가 운전을 못했다. 술을 좋아해서 운전석에는 아예 앉지를 못하게 운전면허증이 없다. 아예 면허증이 없어야 운전을 안 하기 때문이다.

 고교동기를 만났으니 뽐도 내는 것이 남자다. 그래 결정했다. 오늘 고급술집에 한 번 가보는 것이다. 사나이 한 번 돈도 써 보아야지. 돈을 어디 내 혼자만 쓰면 무슨 재미가 있겠나! 얼씨구나! 오늘 한 번 가보자는 데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속으로 결정한 후 동기를 오랜만에 만나 악수를 하였다.

“아니, 이게 몇 년 만인가?”

“그래. 정말 오래 되었네.”

 사무실에 올라와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상당한 기간 만나지 못했음이 처음에는 서먹하였지만 지 내 알고, 내 지를 알고 있는데 뭐가 어렵겠나? 대구 수성구 먹 거리 골목으로 향했다. 동기가 운전을 하니 나는 그냥 얹혀 가고 있었다. 지레 짐작으로 오늘 이 차를 타는 순간부터 돈을 낫게 써야 될 것 같다.

 동기에게 차를 세우고 들어가자고 하였다. 둘은 고급술집으로 들어갔다. 이름도 거창한 미국의 백악관(白堊館)이다. 아예 카드를 챙기고 작심을 한 바에야 동기도 함께 있고, 술을 마시면 될 것이다.

 고급술집은 들어서는 입구부터가 달랐다. 전무가 명함을 건네고, 여자 분이 상무로 안내를 한다. 물론 들어 올 때부터 어리어리하다고 생각하였는데 웬걸 들어가서 보니까 정말 거대한 백악관이었다. 룸을 안내하여 들어가는 복도가 한참 따라 들어가야만 했다.

 출입문을 열어 주는 대로 들어갔다. 세상천지에나 둘이 앉아 술 먹는 룸이 이렇게나 넓으니 기가 찼다. 자리에 앉기 전에 오늘의 귀빈을 원 자리에 앉히고, 나는 곁자리에 앉았다. 조금 있으려니까, 웨이터가 기본 음료수와 기타 섞어 마시는 음료수 등과 생수가 함께 들어 있는 끌기 선반에 얹히어 따로 오고 있었다.

 세팅이 거의 되는대로 아가씨 둘이 들어 왔다. 누가 그랬던가? 이미 돈 주고 마시는 술 한 번이라도 퉁겨서 파트너 급수를 높여 바꾸어 들어오도록 하였다. 정말 그랬다. 방금 들어 온 아가씨 둘이 나가고, 새로 들어오는 두 명의 아가씨들이 확실히 급수가 틀린다. 정말 잘 생기고 미끈한 미녀이었다. 이왕지사 돈 주고 서빙 받을 바에야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좌 하면서 윗옷을 벗자 조르르 달려 와서 옷걸이를 준비하고 걸어 둔다. 얼른 벽 쪽으로 보니 실내 화장실 표시가 있고, 서 있는 옷걸이와, 슬리퍼, 가운 등이 있었다. 아울러 맞은편에는 노래방기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가 앉은 소파는 푹신하다 못해 허리가 노곤해 온다.

 이제 시작이다. 먼저 아가씨 둘이 차례로 수인사가 있었고, 수인사도 유별나게 짧은 미니를 입고 너무 야하게 인사를 한다. 시작이 바로 폭탄주(爆彈酒)를 제조하는 것이다. 길쭉한 작은 유리잔 네 개를 2층으로 어긋 지게 얹어서 양주를 붓는다. 탁 치니 위에 얹힌 양주잔의 비틀리는 괴상한 소리와 함께 퐁당! 퐁당! 빠져서 들어가고 만다. 아니 이것이 폭탄주가 되고 만다. 한 잔씩 들리어 주는 데 첫잔은 “원샷!”이라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돌아가는 잔의 수가 자꾸 늘어 간다. 아니 그런데 이상하다. 동기가 술을 마시지 아니한다. 그래, 그래 들은 적이 있지. 이 친구는 술을 아예 못하지. 차라리 잘 되었다. 술은 내가 마시고 음료수나 마시게 하여야지 속으로 생각하였다.

“(알면서도)술을 못 마시나?”

“그래, 알잖아, 내 술 못 먹지, 아까 연락이 와서 경주로 내려가야 돼. 나 음료수 마실게. 신경 쓰지 말고 많이 마셔라!”

“이런 신경 쓰지 말라니. 그것이 신경 안 쓰여!”

“하하하. 그냥 마셔! 안마시고 보는 것이 더 재미있네. 친구 덕택에 대구 미녀도 만나고 말이지.”

“어 그 참! 알았어. 술 적게 마시고, 그러면 됐네. 자 우리는 한 잔! 브라보!”

 폭탄주 서너 잔이 들어가서 흥분하게 만들었다. 아니나 세상에! 내가 그걸 깜빡했네. 술꾼과 술을 먹어야 하는데, 술 먹지 않은 사람과 맨송맨송하게 쳐다만 보는 사람과 어떻게 술을 먹지? 그것 참. 에이라 모르겠다. 이미 쏟아진 우유인데 어쩔 수가 있나! 마셔라, 부어라! 기분이 아주 좋았다. 미녀들의 서비스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도 몰랐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몰랐다. 시간은 자꾸 흘러, 흘러 새벽으로 가고 있다.

 벌써 실내 화장실을 두 번이나 갔다 왔다. 아니 술은 나 혼자 먹는데 양주병이 벌써 세 병째이다. 기분이 오를 대로 올라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노래방 기기를 켜고 최고조의 기분에서 애창가 “갈대의 순정”을 부르고, 또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등으로 연속 부르고 나니 친구도 옛날 노래 한 곡조를 불렀다. 예쁘장하고 미끈한 아가씨들도 노래를 불러올리겠다는구나. 그래 ‘풍악을 울려라!’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엎어진 물인데 이런 곳에서는 돈을 쓰는 만큼 제왕 노릇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오랜만에 흥 커니 잔 커니 시간을 죽였다. 시간을 보니 새벽 두 시가 흘러가고 있었다. 나도 근무하여야 하고, 친구도 경주를 가야 한다니 그만 물리고 나왔다. 백악관. 그날 술값과 아가씨 팁으로 돈만 낫게 쓰고 말았다. 돈은 쓰려고 버는 것이다. 돈은 돌고 도는 것이 돈이다. 고향 경주에 가면 내 소문도 나 있을 것으로 믿고 돈의 효용을 알게 되었다. 󰃁

(푸른 숲/20100-20130503.)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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