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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29.술꾼과 아가씨

신작수필

29. 술꾼과 아가씨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할아버지, 왜 혼자 술 드셔요?”

“아무도 없으니 혼자 먹지.”

 술은 혼자 먹어도 되는데 왜 굳이 이런 질문들을 하느냐? 시골에서는 물론 그 형편상 돈도 돈이고, 술꾼들이 적어서 그렇겠다.

 술꾼으로는 근세조선시대 정수동을 알아주어야 하는 모양이다. 정수동이 하루는 한양에서 대감 집마다 빌붙어 살면서도 어찌나 언변과 술책이 좋은지 그날따라 대감이 매우 흡족하여 술을 많이 내었다. 오랜 만에 사람대접 받으면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얻어먹었다.

 그 옛날에도 한밤 오시가 넘으면 통금이 있었다. 순라(巡邏)꾼들이 짝짝이를 딱딱 치면서 순라를 다닌다. 아차! 하는 순간에 정수동이 술을 너무 많이 얻어먹어서 딱 통금에 걸렸다. 너무나 급한 나머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었다. 정수동이 고주망태가 되었어도 순라 꾼에 붙들려서 구류살기는 싫어서 반짝 머리를 펼치었다. 순간 담벼락에 팔 벌리고 딱 붙어 서 있었다. 순라 꾼이 한 사람을 붙잡았다고 생각하고 물었다.

“뭐요!”

“빨래요!”

“빨래가 왜 말을 해요?”

“하도 급해서 입고서 빨았습니다.”

“그러면 밤새도록 벽에 붙어 있나요?”

“예.”

 물론 우스갯소리겠지만 그만큼 재치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누구를 술꾼이라 하는가? 매일 술집으로 찾아들어 술 마시는 남정네를 이름인가? 술꾼은 어찌 그리도 출석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남자들인가? 도시 소시민으로 살면서 그렇게 불만과 요구가 많은 사람들인가? 나도 도시에 살기 시작하면서 이래도 불만이고 저래도 불만이고, 이래도 할일이 많고 저래도 할일이 많으니 인간으로서 단순히 그런 힘든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매일 술을 먹게 되는 것이다. 물론 변명 같은 소리지만 그저 그런 변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늦은 시간 업무를 마치고 나오는데 누군가의 입에서 술 한 잔 하고 가자는 듯 한 소리가 들린다. 어찌 그 반가운 소리를 듣고 어느 누가 하나라도 싫다고 하지 않으니 동료애인지, 삶의 동반자인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매일 찾아가는 선술집에 들어갔다.

모두가 지금 시간이 제일 배고픈 시간이다. 국물이 있는 안주를 주문하고 먼저 기본 안주로 김치며 나물이며, 콩 불린 것 등 여러 가지가 나온다. 갖다 둔 소주병 뚜껑을 따고 잔에 부으면 골∼골∼골∼ 봄눈 녹아 산 속 골짜기 물 내려가는 소리로 들린다.

다른 날과 달리 그날 선술집 분위기가 달랐다.

“오늘, 새로 온 2번 아가씨 화자(花子)입니다.”

“응이? 이 집에서도 돈 벌었네. 아가씨도 다 두고 말이다.”

“아이고! 선상님도, 언제 돈이 됩디까? 지가 이 장사 배운다고 자청해서 아가씨노릇 하고 싶다니 그러라고 그랬지. 앞으로는 이 아가씨 보러 자주 오이소.”

 전주(全州)댁 주인아주머니가 속내도 없이 너스레를 떨고 있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 보면 술집 아주머니가 세상을 빨리 알아보는 것이다. 요즘 경기도 어렵다는 데 새로 생긴 뭐 “구이 집”이라고 해서 미녀 아가씨들을 많이 데려다 두고 술장사를 하니 이런 선술집에서도 아가씨 없이 장사를 못하는 구나를 느꼈다.

 어찌 그리도 남정네들은 어렵게 돈 벌어서 술집에서 그렇게 쉽게 쓰게 되는지 모른다. 돌아서서 내일이 되어 후회하면서도 술집에서는 술값을 먼저 내려고 야단이었다. 골목 선술집에서도 이런 방법까지 쓰면서 장사를 하는데, 하물며 요즘 젊은 CEO술장사를 하는 사람들이야 오죽 그렇지 않겠는가?

 다달이 받는 월급에 매이어 돈 쓰고, 몸 축나게 술을 마시는가? 오늘 처음 온 아가씨를 옆에 두고 술잔을 비우기 바쁘게 잔 쳐주니 오늘 매상이 톡톡히 오르겠구나. 아가씨가 없던 시절 그 바쁜 전주 댁만 불러 대는 것 보다야 그래도 젊은 아가씨가 술잔을 쳐 주니 술맛이야 오죽 차이가 나지 않을라고. 그날 평소보다 술을 배나 먹었다. 정말 선술집 전주 댁이 머리 한 번 잘 썼다. 󰃁

(푸른 숲/20100-20130430.)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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