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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28.춤추는 회관

신작수필

28. 춤추는 회관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술꾼들은 시대적 조화로운 변화를 잘도 맞추어 돈을 쓰게 된다. 술집은 술집대로 물론 좀 근대적인 사회 환경이라도 술꾼들의 호주머니를 퍼 가는 수법이 날로 발전하여 간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 시대는 1980년대를 기점으로 변화를 더욱 잘 느끼게 해 준다.

 시골에서 샌님교사를 하면서도 술만 먹었는데 도시로 오면서 이 술꾼들의 호주머니는 어렵게 돈 벌어서 참 쉽게도 열리고 있었다. 우선 힘든 일들이 많으니까 자꾸 사람들이 무언가 색다른 것을 찾아서 머리를 쉬려고 하게 된다. 술을 먹는다는 것이 그냥 가만히 앉아서 술만 마시면 그 양은 많이 마시겠지만, 사람들이 재미 있어들 하지 않는다.

몇 년의 도회지생활이 몸에 베이게 되니까, 인사이동으로는 주임만 바뀌고 그에 따른 주임들의 취향도 모두 다르다. 이번에 새로 바뀐 주임은 키가 컸다. 그러면서 춤추는 것을 매우 좋아 하였다.

 토요일 오후가 되어서 술자리를 같이 가자고 엄명(?)이 내렸다. 토요일 오후 두 시다. 교문을 벗어나자말자 교문 입구에 선술집이 있다. 기본 안주 하나 시켜 놓고, 낮부터 소주를 냅다 마셔댄다. 하나같이 마음속에 업무가 많아서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말도 못하고, 주임 앞에서 차디찬 그라스 소주잔만 기울일 뿐이다.

 받은 소주를 탁자 위에도 놓지 못하고, 주임이 이야기 하는 동안 더 들고 있지도 못하고 그만 홀라당 마셔 버렸다. 소주잔이 작은지 내가 술통인지 모르겠지만 주임 이야기하는 동안도 못 참고 그만 홀짝 마셔 버린다. 흔히 “고디 잔(작다는 뜻)”이라고 해서 먹을 것도 없다. 차라리 술을 마실 바에야 사이다 컵에 한 컵 가득 부어 벌떡벌떡 마셨으면 하는 속바람이었다. 그 많고 많은 시간을 일에만 파 묻혀서 지지고 복고 있는데 주임은 한산한 가게 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다.

 한 잔 두 잔, 술잔으로 술이 오르기 시작한다. 일행은 1차로 토요일 오후 두 시부터 1차로 소주 먹는 선술집에서 얼굴이 벌겋게 염색을 하여 두었다. 이집 염색은 어찌 만날 붉은 색만 있는지 공장치고는 고약하다. 서민으로서 그저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 안주가 제일 좋을 뿐이다. 세상이 모두 알고 있는 350mm 녹색 병 액체를 무슨 원수가 들어 뚜껑을 따고, 액체를 비우고 속 아파하는 군상들이란 말인가?

 본래 술자리에서는 성질 급한 사람이 먼저 마셔서 빨리 취한다. 그런 후에 시간을 죽이기 연습을 한다. 소주 병뚜껑을 따고 나면, 대다수 사람들이 병뚜껑을 그냥 아무렇게나 따서 병뚜껑과 중간 연결부가 퍼드러지게 그냥 던져둔다.

 나는 시간을 죽이려고 버린 뚜껑에 소총부리의 조우 선처럼 밸∼밸 도라진 연결부분을 꼭 손으로 잡고 돌려서 분리하고 만다. 병뚜껑 끝 부분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중간 연결부분 꼬투리만 모아서 연결 고리를 만든다.

 고리에 연결된 병뚜껑 중간부분만 헤아려도 먹은 술병이 몇 병인지를 금방 알 수가 있다. 이런 장난을 해도 여태껏 끝없는 주임의 이야기 소리만 들린다. 급하게 술잔을 입속으로 털어 넣고, 술 받기 위해 자세를 고쳐 돌려서 두 손으로 술잔을 붙든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것처럼 술잔을 부여잡는다.

 어느 정도 낮술을 먹으니 주임이 이제 취향을 말하며 함께 춤추는 회관에 가자고 한다. 취기가 오르면 생각나는 것이 여자라는 듯하다. 값싼 입장료만 내고 술은 형식적으로 나오고, 춤 파트너를 만날 수 있다고 말았다.

 나는 본래 몸이 무뎌서 춤이 잘 안 되었고, 게다가 키도 작아서 파트너들이 싫어할 것이라고 아예 빠지려고 하였다. 한사코 나를 데리고 가려 하였다. 술기운에 나도 스스럼없이 춤꾼들과 함께 따라 나서고 말았다.

 토요일 오후 서너 시가 되었는데, 회관 입구에 들어서니까 아주 캄캄하였다. 1인당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정말 나는 태어나고 처음으로 도회지에 와서 춤꾼들과 속칭 회관이라는 곳을 들어가고 말았다. 겁도 없이 따라 들어간 나도 참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하였다.

 지하 문이 열리고 회관입구로 들어섰다. 여럿의 웨이터들의 한꺼번에 외치는“어랍∼쇼!”하는 소리가 나의 귀를 울린다.

 브루스추기에 알맞은 음악 소리가 지하 공간을 울리어 귓전으로 들려왔다. 생면부지라 선배 뒤를 따랐다. 제일 구석진 곳에 맥주 한 병 마른안주 하나 탁자에 갖다 주었다.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밖과 안의 조명 차이가 너무 나서 눈이 얼얼하다. 아니 캄캄하다.

조금 지나니 저 앞에 무대가 보이고 그 아래는 인위적으로 아주 컴컴하게 만들어 둔 곳에서 처음 만난 남자, 여자들이 부둥켜안고 쌍쌍이 돌리고 있다. 정말 요상하였다. 이런 세상이 요지경이었다. 과연 약간 술기운 오른 남자들이 즐겨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

 나는 그래도 체면이 있지. 생면부지 여자를 안고 춤을 추다니. 아니 이런 데가 왜 있지. 같이 입장한 동료들이 모두 나가 버리고 나만 혼자 겨우 안구가 조절된 희미한 탁자 앞에 놓인 맥주를 부어 마시고 있었다. 나에게는 이런 자리가 안 어울렸다.

 나 혼자 동그마니 앉아서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나도 저 곳에 나가 파트너와 함께 안고 춤을 출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였다. 나에게는 아직까지 그런 비위가 없었다. 안 생겼다. 마음속으로 갈등에 갈등을 일으켰다. 나는 안 되겠다. 도저히 안 되겠다. 밖으로 나가자. 얼른 그 괴물의 집단 같은 회관을 그만 빠져나와 버렸다.

 세상천지 대낮에 술 먹고 얼근히 취한 상태에서 지하에 그것도 인위적으로 만든 컴컴한 그곳에서 새우깡을 흩어 뿌린 듯 매끄러운 바닥이 있는 회관(會館)은 나에게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

(푸른 숲/20100-20130429.)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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