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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25.똑똑똑 비밀주가

신작수필

25. 똑똑똑 비밀주가(秘密酒家)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Y전대 교무행정의 일이 많이 부과되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체질에 맞아서 잘 하게 되었다. 업무가 많으면 많을수록 피로가 쌓이게 된다. 스트레스도 많이 쌓이게 된다. 내 출사표 야간수업도 자꾸 부과된다.

주임은 아침 출근 후 말도 없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다른 사무실에 가서 잡담하다가 11시 55분이 되면 찾아와서 점심 먹으러가자고 조른다. 마치 사 주시기라도 할듯하면서 말이다. 점심 사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연세가 들면 봉급도 많지만 쓰일 곳도 많겠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제일 꼴찌 직원으로서 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시에도 구내식당이 있긴 하였는데 꼭 무슨 타령을 붙여 가면서 일반 식당으로 유도한다.

나의 업무도 한가할 때는 한가하지만, 시간을 다투는 일이 있을 때는 무척 바빴다. 업무를 연구하면서 하였다. 당시로서는 컴퓨터도 없던 시대라 줄 하나 긋는 양식에도 오구(烏口)를 들고 펜촉에다가 잉크를 찍어 넣어서 자를 대고 줄긋던 시절이었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행정이었다.

예를 들어 당시 문교부에서 입학원서 양식이 하나 내려 와도 나는 그냥 사용하지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한 번 원서를 접수하면 행정직원의 손을 여러 번 거쳐야 하고 양식의 줄긋는 것도 위치에 따라 나중에 철하는 것까지 생각하여야 했다. 최종적으로 편철하여 합격생으로 추려내기까지의 불편을 모두 해소할 수 있는 그런 양식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입학원서는 옆으로 긴 양식으로 만든다. 16절 흑표지로 편철하기에 좋고, 옆으로 길면 행정상 찾아보기를 할 때 참 편리해 진다. 문교부에서 나온 양식으로는 사진을 왼편 위에다 놓는 데, 내가 재구성한 양식은 오른편 위에 둔다. 철끈으로 묶을 때 사진두께만큼 종이 수가 늘어나서 툭 불거진다. 철하지 아니하는 좌상(左上)에다 사진 란을 배치하면 훨씬 사용하기에 편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작은 것까지 신경을 쓰면서 행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아날로그방식으로 행정을 하는 것이다.

오늘도 늦게까지 일을 고심하고 있는데 웬걸 주임이 들어 오자말자 일어서서 나가자고 한다. 특별 수당이 생겨서 과내 회식을 가자고 하였다. 우리도 얼씨구나 하고서 하던 일을 멈추고 정리하여 두고 교문을 나섰다. 먼저 교문 밖 소주 집에 들러 개인당 1병식 먼저 마시고 오늘 2차는 특별한 곳으로 가자고 하였다. 당시까지도 밀주(密酒)라 해서 허가를 받지 않은 사주제조(私酒製造)는 어려웠다. 세무서에 발각되면 벌금 하던 시절이었다.

먼저 1차 장소에서 주임이 설명하여 주었다. 밀주를 파는 술집이 시내 모종에 있는 데 대문에서 신호하는 것이 맞아야 문을 열어 주어서 들어 갈 수가 있다고 하였다. 그것 참, 술도 참 어렵게 팔고 있구나 생각하였다. 도대체 그 신호라는 것이 무엇인가? 궁금해 가면서 그곳으로 갔다. 대구 시내에서도 밀집된 곳이었다. 조그만 판자 대문이 달려 있었다. 주임이 그 신호의 시범을 보였다.

“똑! 똑! 똑!∼∼∼”

그리고 기다렸다. 한 번 더 그 신호를 보냈다. 반응이 있었다. 대문에 작은 창을 만들어서 그곳으로 빠끔히 눈만 내다보는 것이었다. 혹시 누가 장난이라도 하는지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얼른 주임이 말씀을 드렸다.

“아주머니 우리가 왔습니다.”

“예.”

나무판자 큰 대문이 덜컥 열리었다. 우리 넷은 우루루∼ 재빠르게 따라 들어서자 나무판자 대문이 그만 닫혀 버렸다. 우리가 들어가고 난 그곳 골목에는 인적이라고는 없었다.

쪽문으로 한 사람씩 비집고 들어갔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바깥에 그렇게 한적하던 곳이 이곳 쪽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방안에는 술 마시는 술꾼들이 그렇게 많을 수가 있었다.

본래 법으로 금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인지라. 당시 80년대 초 대구에 영화 여배우를 하던 분이“나드리”라는 곳을 만들어 밀주를 팔았다고 신문에 크게 나던 그런 시절이었다.

동동주를 사주로 제조를 못 만들게 금하니까, 동동주 그 맛에 사람들이 잊지를 못하고 이렇게 숨어서라도 마셔야 하다니? 비밀주가(秘密酒家)는 술장사가 아주 잘 되었다. 세상에 나 원 참! 󰃁

(푸른 숲/20100-20130426.)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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