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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23.만학도 회식

신작수필

23. 만학도 회식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1981년 그때 늦은 나이로 대학교에 편입을 하게 되니 동기생들도 자연히 현직교사들이었다. 당시 사범대학의 학과 개설이 된지 얼마 안 되어서 졸업하면 겨우 2회가 되는 그런 학과이었다. 정원 25명에 군대 가고,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 자퇴하고, 학업을 포기하는 등 자연히 정원을 채우지 못하여 편입생을 받아야 했던 모양이었다.

 만 서른둘 대학교 3학년 편입을 하였는데 이미 2학년에 편입한 12명이 있었고, 1학년 정식 학번을 받은 여학생 1명이 입학부터는 오직 그 한 여학생뿐이었다. 이 1명과 2학년에 편입으로 들어 온 12명으로 이미 13명이 있었고, 그래도 정원이 12명이나 부족하니 3학년 때 동기로 편입한 사람이 역시 12명이었다. 2·3학년 편입으로 정원 25명을 겨우 채웠다.

 우리 3학년 편입 12명 동기들은 현직 초등학교 교사가 10명이었고, 나는 대학 행정직이었다. 또 한 사람은 당시 최고령 41세로 광주가 고향인 교사(부인도 교사이기 때문에 가능하였음.)가 감히 그 나이에 사표를 내고 편입하여 왔다. 물론 2학년에 편입한 사람들도 현직 초등학교 교사가 12명이었다. 25명에 원적 여학생 1명과 교직원인 나, 사표내고 온 최고령 교사 출신 1명을 제외한 22명이 모두 현직 교사들이었다. 당시 경남 출신으로 마산, 창원, 울산 등 멀리 있는 사람이 12명이나 되었으니, 학교 현장에서 행사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출석이 안 되어 수업이 잘 하지 못함이 허다하였다.

 학회장(경남 마산 출신 교사)이 잔머리를 쓰는 것이다. 수업 받으려는 현원이 덜 차면 수업이 잘 되지 못하는 날에 그것도 야간에 수업을 받는 우리들로서는 전임교수들에게 회식을 권장하여 학점을 잘 달라는 뜻이 포함되는 것으로 곧잘 회식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전임교수님들이 주간에 수업을 하고 야간으로 연장하여 수업을 하니 짜증스럽기도 하고, 출석미달로 학점 취득이 안 되는 것이 정상이지만 학교 경영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희한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저절로 공부는 뒷전이고, 회식을 자주하게 되는 것이었다. 강의도 하지 않으면서 ‘이 과목은 오늘 어디서 몇 페이지부터 어디 몇 페이지까지 읽고 리포트를 제출하라.’는 식이었다.

교수님 모시고 저녁에 회식한다는 것이 간단한 저녁으로 때우고, 술집으로 가는 것이다. 술집에서는 얼굴 도장 찍고 대구에 집이 있는 사람만 자연히 남게 되고, 멀리 있는 사람들은 내일 아침 출근으로 미리미리 빠져나가 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저절로 정산도 하여야 하고 술집 회식 운영이 나에게 자꾸 떨어지게 되었다.

 어느 날 야간수업 시간이었다. 저녁에 비가 오고, 경남출신 학생들이 거개가 오지 않았다. 마침 시간도 학과장 전임교수 시간이었다.

“어이, (나를 보고)이 선생! 오늘 이래가 수업 되겠나? 마아.”

“예? 그러면 회식하러 갈까요?”

“그래요. 오늘 그랬으면 좋겠어요. 비도 오고 학생도 얼마 없네. 나도 덩달아 춥고, 어찌 나도 감기가 오려 나 어실 하네.”

“예. 의논해서 연구실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수업에 나온 몇 명과 어울려 의논을 하였다. 대구에 근무하는 교사가 말을 끄집어내었다.

“오늘 막걸리 집으로 가서 교수님 특강을 들읍시다.”

“그것이 좋겠다.”

“그러면 합의 했습니다. 지난 번 회식하고 남은 경비 얼마가 있고, 오늘 조금씩 보태면 되겠습니다.”

 봉산동에 교수님 좋아하시는 주인이 예쁘장한 과부 막걸리 집이 있었다. 학과장님에게 장소와 시간을 알려 드리고 나이든 대학생들이 책가방을 들고, 삼삼오오 막걸리 집으로 직행하였다. 교수님까지 열한 명이었다. 그저 술 먹고 잡담하고 명칭만 특강이 되고 말았다.

나이 든 대학생들이 교수님이나 별 차이 없는 대학생들로 구성된 회식 자리는 어색하지 않았다. 세상을 살면서 제때 대학교를 가지 못하고 그래도 만학에 공부를 하여 형설지공(螢雪之功)하겠다는 데 누가 말릴 것인가?

 나중에 안 일이지만, 초교교사로 교대(敎育大學, 당시는 2년제)만 다닌 사람은 자연히 승진이 늦었고, 그래도 사범대학에 편입한 사람들은 빨리 승진하여 교장(校長, 獎學士, 敎育長 등 관리직)이 다 되었다. 집에서 TV를 보는데, 같이 공부하였던 울산 출신 급우이었던 J선생이 퀴즈쇼에 나왔다. 그때 벌써 교장선생이 되어 있었다. 또, 한 사람! L 선생, 합천에서 다녔던 사람으로 학부를 졸업하였다고 우연히 서울로 가는 길에 만났다. 서울로 전출되어 간다고 했다. 한 참 뒤 지나 교대 동기생 모임에서 만났는데 서울 교장이 되었다고 거드름을 피웠다. 이렇듯 같은 출발점에서는 편입을 한 사람이 출세도 빨랐다. 당시 현장에서는 호봉도 가감이 되었고, 승진도 빨랐으니 편입한 사람들은 이래저래 모두가 잘한 것이었다고들 하였다.

 그때 1981년 만학하신 D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 열두 분들 모두들 잘들 하고 계시겠지요? 어째 오늘 만학도(晩學徒)들이 모여 그 때 그 상황을 만들어 회식이라도 한번 해 볼까요? 󰃁

(푸른 숲/20100-20130424.)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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