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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22.도시의 주당(酒黨)

신작수필

22. 도시의 주당(酒黨)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1981년 5월 1일자로 시골 교사로 근무하다가 D도시 전문대학 행정으로 합격 하고, 교무과 교무업무를 시작하였다. 도시생활이 시작되었다. 집은 경상북도 대구시 동구 신암동 73시영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하루아침에 새로운 나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교사의 아동들에게 풍금을 타고 음악을 가르치다가 주번교사로 교문에서 지도하다가 지도안을 써서 결재 받고 수업하던 교사가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버리고 낮에는 업무를 파악하고 일을 찾고, 퇴근시간이 되면 그렇게 하고 싶었던 야간공부(晝勤夜讀)를 위하여 가방 들고 대학생이 되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지 어니하고 이상하였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었다. 아침조회도 없었고 과장을 교수가 맡고, 행정에서는 그저 주임이 있을 뿐이다. 주임은 출근하자말자 근무는 하지 않고, 다른 사무실로 개인 볼일 보러 다니고 내가 해 둔 업무만 오후에 늦게 퇴근 전 네 시 반쯤에 나타나서 확인만 하였다. 참 이상하였다. 그런대도 학교 에 중노동하다시피 가르치던 교사의 봉급보다 많이 주니 이것 또한 이상하였다.

 내가 퇴직할 때 교사 월봉이 20만4천원이었고, 연간 상여금은 본봉에 교사는 본봉이 적다. 본봉에 400%, 이곳에 오니 직원 월봉이 7급 11호봉으로 27만원에 상여금이 700%이니 이것을 연봉으로 비교하니 놀랄 일이었다.

 아하! 사람 사는 것이 다 따로 있었네. 어찌 그런 교육공무원 8년에 물론 교사로서 보람은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말이 아니었다. 내 초임 월봉 1973년 5월 첫 월봉이 2만7천원이고 한 해 한 호봉으로 봉급이 300원∼500원씩 올랐다.

 물론 대학에도 숙직을 하였다. 숙직비가 무려 1만5천원이었다. 교사 때 숙직비는 초임지에서 600원, 그것도 교사에게 돌아오는 것은 4:6(6할은 기능직원)제로 240원이었다. 퇴직 때 숙직비는 700원이었는데, 교사에게는 280원이 돌아 왔다. 어디 비교가 되겠는가 말이다.

 야간에 사범대학으로 편입하여 퇴근 시간이면 가방을 들어야 했다. 근무지 곁이라 버스타고 네 정거장만 가면 되었다. 대학교 교문 곁에 시장이라서 저녁 사 먹기가 아주 편리했다. 문제는 배가 고파 저녁을 먹고 들어가 자리에 앉으면 잠이 쏟아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해결책으로 자판기 커피를 얼마나 뽑아 먹었는지 모른다. 집 나이로 서른셋에 무슨 대학교 공부를 한답시고, 저녁 사 먹고 10시 반까지 공부하고 집에 들어가서 리포트 작성하고 나면 보통 새벽 두세 시가 매일 넘었다.

 이를 어쩌랴! 공부는 하고 싶고 낮에 일은 하여야 하고, 잠은 오고 리포트는 쌓이고, 일은 갈수록 나에게 넘어 오는 것이 폭주하였다. 그나마 매월 15일이면 봉급 받는 재미로 그저 열심히 일할 뿐이었다. 그럭저럭 이제까지는 좋았다.

 책가방을 들고 야간에 공부하러 간다고 늦어서 택시를 잡으려면 어느 샌가 우리 동료 직원 셋이 주임을 포함하여 술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이것이 도시에서 술 먹기 시작이다. 도시에서 술이 사람 먹기 시작이었다.

 가방을 뺏어 먼저 저네들이 택시타고 앉아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저네들은 공부가 싫다고 공부하지 않으면서 내가 공부를 하니 심술보가 터진 것이었다. 나를 보고 이제는 술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희망을 바라보고 대학교 편입을 하였는데 고맙기도 하여라. 내가 술을 사야지. 명색이 교사를 하다가 온 사람인데 어찌 남의 술만 얻어먹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날부터 야간에 공부하러 가는 것보다 술집에 가방 들고 술 먹으러 가는 일이 자꾸 많아졌다. 술값을 내가 내고 마는 것이 비일비재하였다.

 아들 둘과 내자가 있으며, 생활비, 저축, 나의 등록금이며 드는 돈이 많았다. 각종 수당이 생기면 나의 비자금 만들기 바빴다.

 술은 내가 사고, 돈을 내가 내면 내가 임자다. 부어라! 마셔라! 이제 고만 먹자는 것은 내 마음뿐이었다. 술이 취하도록 자꾸 마시게 되고 말았다. 도시생활에서 술만 늘어간다. 술은 술술 잘 넘어 가고, 돈은 술술 잘 사라졌고.

 대구 시내 술집이란 술집, 골목 이란 골목을 모두 찾아 나선 혈기 방장한 도시의 주당(酒黨)*이 되어 가고 있었다. 󰃁

(푸른 숲/20100-2013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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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당(酒黨) : 주도(酒徒). 술군, 술패.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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