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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24.도시와 술 먹기

신작수필

24. 도시와 술 먹기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교사직을 사표내고 대학, 전문대학의 행정직으로 옮기고 보니 또 행정은 행정대로 근무 시간이 자꾸 연장 되고, 2차적으로 대학교 공부에 수업차질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주 바쁜 공무를 제외하고서는 야간수업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수업에 부득불 빠졌을 때는 광주(光州)에서 사표를 내고 공부만 하는 41세 만학도 O동료의 노트를 빌려 복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수업이 없는 토·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어찌 그리도 술을 먹자고 하는 지 조금의 틈만 나도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직장의 동료들과 술을 마시면 자연히 1차 술값은 체면치례 한다고 내가 돈 내게 되고 만다. 아무리 바빠도 수업 받으러 나가게 된다고 도덕적으로 고맙다는 표시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려는 데 대학교 정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직장동료와 어울려 술을 먹으러 가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 남의 형편을 그렇게 무시하는지 공부 한 번 해보겠다는 데도 의지를 자꾸 꺾게 만들었다.

 또, 토요일도 교무업무는 늦게까지 일을 하고, 저녁도 굶으면서 오후 7시나 되어야 퇴근하면서 묵묵히 직장 선배 동료와 걸어 나오면 그냥 집으로 가면 좋을 텐데, 갑자기 불쑥 누구라도 먼저 입을 떼기만 하면 벌떼같이 그냥 술 먹으러 가게 되고 만다.

 초교 교사 때는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먹었지만, 직장은 어디를 오가나 똑같은 처지인 모양이다. 그렇게 술을 자꾸 마시자니 그냥 빠지게 되고 마는 것이다. 누가 그런 스트레스를 좋아할 리가 있겠는가마는 정말 상사의 스트레스는 견디기 어려울 뿐이다.

 도시에서 술 권하는 사회로 살아가고 만다. 본래 술은 기분이 나빠서 도 한 잔이요, 기분이 너무 좋아서도 한 잔이다. 그때는 젊어서 술이 빨리 채지 않는다고 먼저 소주 일병씩을 마시고, 맥주 집에 들러 권하거니 잔하거니 그렇게 시간을 죽이고, 업무상 어려움도 토로하고, 자기 체면의 스트레스를 술로서 풀고 있을 뿐이었다.

 도시에 휘영청 달뜨는 것도 아파트에 길게 자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도, 푸른 달도 떠 있는 것을 모르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맥주 집에서 사이다 컵 유리컵에다가 쥐가 오줌 싸고 간 노란색 액체를 자꾸 쏟아 부으면서 사람의 간에게 기별을 주고 있다. 자기가 죽는 줄 도 모르고서 말이다.

 어디 술을 시작하면 조명 좋은 장소에서 아가씨까지 곁에 두면 일어 설 줄 모르는 게 남자들이 아닌가? 만약에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부어라 마셔라 하는 데 일어설 남자직장인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도 스트레스 해소 하려면 일단 마시고, 취하고 잊으려 하는 술 근성 때문에 도저히 그냥 먼저 일어서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에서 서로 눈치 보고 주임과 어울려 처음에는 한 잔만 하다가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석 잔 되면 잔 수도 잊어버리고, 이제부터는 붉은 색 맥주 병 수만 헤아리게 된다.

 맥주병 한 병에서 둘, 셋 자꾸 늘어 가면 이제는 상표가 보이도록 가지런히 일치 시키는 작업도 한다. 그냥 술만 마시면 재미도 없어서 간혹 곁에 앉은 아가씨를 집적거리고 혹시라도 자기를 좋아 하는 줄 알고 눈치도 없는 술 먹은 남자들이 아닌가? 그리고 기분나면 알게 모르게 그만 시퍼런 배춧잎이 팁으로 나오고 만다.

 팁으로 말하면 자라는 아이들 돈 달라면 한 푼도 안 주면서 맥주 집 아가씨들에게는 배춧잎이 쉽게 풀리고 만다. 그것도 아가씨 한 명에게만 주면 뭐 모자라는 남정네라고 욕먹을까 봐서 그런지 겁도 없이 집에 갈 택시비만 남기고 툭툭 털어 팁으로 날리고 만다. 문제는 한 남자만 그러는 게 아니라 팁이 나오기 시작하면 곁에 앉은 남정네들도 차례로 경쟁이 벌어지니 무서운 팁 현장으로 바뀌고 만다. 오늘날 같았으면 아마도 싯누런 사임당이 나왔을 것이다.

 술집, 맥주 집 조명이 밝지 않으면서 붉은 색으로 띄는 것은 그만치 조명발을 받아서 남자들이 빛에 휘말려 술을 더 마시게 된다나, 어쩐다나. 모두가 도시인들이 돈 뜯어내는 방법을 연구하고 남정네들은 그저 그것을 알면서도 속아 주는 아량 있는 도시인(?)이 아니던가?

 남자들이 도시와 술 먹기를 하면 바깥의 푸른 달이 무엇이라 할 것인가? 술집 안방에 도시 달이 떠서 더 휘황찬란하니 바깥의 회색 달은 쳐다 볼 겨를이 없고 만다. 안방 도시 달과 술 먹기를 하루도 빠지지 않으니 그 돈은 누가 대어 주던가? 󰃁

(푸른 숲/20100-201304025.)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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