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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7.포도주 대취

신작수필

7. 포도주 대취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사람들은 왼쪽 길, 차나 짐은 오른쪽 길, 이쪽저쪽 잘 보고 길을 건너갑시다.∼”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은 불렀을 법한 동요 네거리 놀이다.

 왜 이러한 이야기를 하게 되나하면 지금으로부터 한참 오래된 시골 M초등학교 초임교사시절(1973년)에‘좌측통행의 증거’때문에 일어 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은 우측통행으로 바뀌고 있지만 당시는 학교로서 좌측통행을 철저히 가르치던 시대이었다.

 그날따라 일찍 밥을 먹고 학교에 출근을 하였다. 학교규모가 작기 때문에 우리 교실에서도 교문의 부산한 소리가 들리는 그런 곳이다. 혹시나 싶어 급히 교문 앞으로 나가니까, 택시에서 우리 반 O군이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내렸다.

“O군 아니냐? 도대체 왜 이러냐?”

“아, 예에. 담임선생인교?”

택시기사가 거꾸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학생이 왜 이렇습니까?”

“예. 차에 들이받혔어요?”

“뭐라고요? 얼마나 다쳤습니까? 어쩌다가 이래 됐습니까?”

“마아, 약도 바르고 했는데 괜찮을 낀데요…….”

“안되겠습니다. 이래서는 모르겠고, 포항 큰 병원에 가 보입시다.”

 그때서야 택시기사가 풀이 죽었다. 교장선생님께 보고하고 그 택시로 포항으로 나갔다. 아무렇게 묶은 붕대를 풀고 상처도 확인하고 소독과 약을 바르고 의사확인도 받았다. 다시 그 택시로 나오려는데, 택시기사가 ‘미안 합니다. 학생 저고리도 한 벌 사서 갑시다.’고 해서 그렇게 하고 학생 집으로 돌아 왔다. 학부모는 당시 시골사람으로 아이 옷까지 사고, 포항까지 치료를 하고 왔다니까 오히려 고맙다고 택시기사를 그만 돌려보내 버렸다. 나는 아침부터 부산스런 처리로 기운이 싹 빠져버렸다.

 사건의 경위는 이랬다. O군의 집이 학계리 재필이라 학교로 등교하려면 금오에서 오는 즉 서쪽에서 동쪽으로 걸어 와야 한다. O군이 좌측통행을 하면서 걸어오는데, 택시(=경주에서 손님을 태우고 M1리로 오던 중이었다.)가 우측으로 가야 하는데, 마침 사고지점인 약포 앞에서 물웅덩이가 깊이 파여 물을 피해 O군이 걸어오고 있는 좌측으로 택시가 붙여서 운행하다가 O군의 오른쪽 귀밑을 백미러가 치고 나가 버렸다. 간단히 요약하면 좌측통행을 했는데 물 피하려고 학생 곁으로 와서 사고를 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O군의 사고를 처리하고, 기운이 빠져 학교로 돌아 왔는데 오후 수업이 파하고서 직원종회가 그날따라 있었다. 바깥에서는 가는 비가 굵은 비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교감선생으로 한마디 하겠습니다. 오늘 4학년 1반 아이가 다쳐서 포항까지 다녀오는 불상사가 있었습니다. 좌측통행을 철저히 교육시키고 주의를 잘 주어야 하겠습니다. 아이가 어디 얼마나 다쳤는지 모르니까 종회 후에 학부형 댁에 남자 선생님들은 모두 오늘 꼭 방문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종회를 마쳤다. 담임선생의 경위나 보고도 받지 않고 임의 처리로 결정하고선 그것도 남자선생 모두가 방문하여야 한다고 선언하고 마치니 나는 어이가 없었다. 함께 걸어갔다.

 비가 억수라고 내렸다. 우산은 썼지만, 바지는 모두 젖었다. 1.5km 비포장인데다가 비가 많이 와 진흙탕이 되어 있는데 교감선생님은 계속 ‘이것은 담임이 지도를 잘못하여 생긴 것’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투덜거리시며 앞장서 걸으셨다. 다른 선생님들도 투덜거리면서 ‘하필 오늘 아니면 안 되나?’를 되 뇌이면서도 교감선생님 뒤를 따를 뿐이었다. 게다가 바람이 불어서 온통 옷이란 옷은 모두가 물에 적시었다. 모두가 불만이 가득 찼다.

 드디어 비를 맞으면서도 O군의 집에 도착하였다. 학부형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였다. 시골집에 교감선생님을 포함하여 다섯 남자 선생님들이 어둠사리 치는 초저녁 비 오는 밤에 갑자기 들이닥치니 놀랄 수밖에. 학부형 집에서는 주전자 들고 술 사러 가고, 안주 만드느라 분주 하였다. 술(=막걸리)이 나왔다. 어지간히 드시고 나서는 이제 아이 걱정이 난 모양이었다. 다친 아이는 괜찮으냐는 둥 상처가 얼마나 큰지 등을 연속 물었다. 오히려 학부형이 몸 둘 바를 몰라 하였다. 사실 상처래야 오른 쪽 귀 밑으로 백미러가 약간 스치고 지나간 자리로 소독하고 약 바른 후 붕대를 붙여 둔 정도이다.

 이제 학교로 돌아오는데 거꾸로 담임인 나에게 적반하장의 소리를 한다. ‘왜 상처가 그렇게 적은 데 말도 하지 않았는지 등 담임이 잘 모르면 선배에게라도 물어야 된다는 등 그렇게 학급을 운영하면 안 된다는 등’내내 비가오고, 바람이 부는 1.5km를 계속 교감선생님께서 훈시 중이었다.

 마침 학교 앞에 와서는 ‘이렇게 비가 오는 날 학부형 집에까지 다녀오신 선배들을 술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또 빈둥거렸다. 그래서 더 이상 말도하기 싫고, 듣기도 싫었지만 또 양심의 호소에서라도 술을 사야 했다. 도저히 그러지 않고서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술이 오가고 벌써부터 학부형 집에서도 횡설수설하더니만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도 횡설수설 하였다. 나는 초임이라 당시 술을 못할 때였다. 나는 포도주를 달라고 해서 병째로 한꺼번에 모두 마셔 버렸다. 포도주가 취하면 얼마나 취할까 생각했는데, 정말 그렇게 독하게 취할 줄을 몰랐다. 내 자신이 그만 뻗어 버렸다. 선배님이 나를 하숙방에다 대려다 주었다.

 이튿날 아침에 술을 깨니 머리는 어지럽고, 빈속에 해장도 못하고도 벌써 직원회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교무실에 들어서니까 선배 선생님들도 교장, 교감 선생님도 모두 자리에 앉아 계셨다. 또 교감 선생님께서 어제 사고는 경미했지만 앞으로 학생들 교통지도를 잘하여야 한다고 덧붙여 강조하면서 4학년 1반처럼 하면 안 된다고 또 토를 달아 댔다.

 아니 내용도 모르면서 왜 자꾸 나를 갈구는 지 모르겠다. 그날 수업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퇴근시간에 또 모여서 술자리를 한다고 하였다. 나도 따라 갔다. 어제 먹은 술을 해장하여야 한다며 다시 술판이 벌어졌다. 못 먹는 술에 오늘도 뻗었다. 술값은 매일 나의 이름으로 그었다. 이렇게 반복하여 일주일을 연장하였다. 매일 술에 절어 있었다.

 정말 내가 학급경영을 잘못한 것인가에 회의를 품었다. 1주일이 지나 화장실에 가는데 교감선생님께서 ‘이제 됐지. 4학년 선생 그 초자 말이다. 이제 고만할까?’하는 소리가 들리었다. 정말 난감하였다. 그러면 1주일 동안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렇게 따진 것일까? 정말 억울했다. 나도 판단을 했다. 늦게야 말이다. 다시는 속지 말아야지 작심하면서 정신을 차렸다.

 1주일이 지나자 O군도 상처가 모두 나았다. ‘정말 O군은 좌측통행을 잘 했는데 택시가 물 피하려고 학생 곁으로 와서 사고를 냈다. 이것이 증명이다.’라고 나 혼자만 속으로 큰소리치면서 항변을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교사의 ‘학생지도 첫 경험’이었다. 내가 포도주 먹고 대취(大醉)한 사건이다. 󰃁

(푸른 숲/20100-20130408.)

출처 : 푸른 숲/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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