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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6.술 최초로 배우기

신작수필

6. 술 최초로 배우기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M초등학교에 선생으로 처음 근무하면서 몇 번인가 술자리에서 다운되어 끌려오다시피 하숙방에 박히고서는 굳이 술을 배워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니 술을 이기는 법을 알아야겠다는 욕심이 났다.

 남자의 세계에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게 술과 담배다. 담배는 일찍 배웠다. 그것도 중2 때(사실 고1학년, 2년을 쉬었으니까) 선배로부터 “새마을”담배를 하루에 두 갑씩 한 달을 피었다. 그러나 아무런 재미(?)도 못 느껴 그때부터 담배는 일찍 끊어 버렸다.

 술은 배워서 배운 게 아니라 배가 고파서, 술심부름을 하면서 술 주전자에 꼭지를 통하여 빨아 먹었던 게 시작이기는 하다. 배가 고파 술을, 독(? 막걸리 5∼6도)한 술을 자꾸 빨아 먹다가 덜컥 겁이 났다. 주전자 뚜껑을 열어 보니까 제법 쑥 내려갔다. 엉겁결에 도랑물을 손으로 퍼 담아 아버지께 갖다 드렸더니 우리 아버지 왈 ‘오늘 술맛이 와 이러노?’해서 하늘이 노랜 후로는 술을 먹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하도 배가 고파서 술 찌게미를 아침부터 먹고 학교에 갔다가 술에 취해 담임선생님께 꾸중들은 적도 있다.

 나도 술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유전자가 조금은 있지 싶다. 아버지는 반농반목수하시면서 새참으로 집에서 담근 동동주를 시작하여 나중에는 밀주금지로 인하여 막걸리를 사다 드셨다. 연세가 드셔서는 소주를 잡숫게 되었는데, 하루는 아랫동네에서 한 자리에 앉으셔서 소주 한 되를 다 잡숫고 나서 목에 피를 올리시고는 술을 끊으셨다. 그때 연세가 일흔이셨다. 이러한 유전자가 있는 내가 술을 옳게 배우지 못해서 못 먹었지. 잘 배우면 넉넉히 먹을 수 있을 것으로 나도 모르게 추측하게 되었다.

 도대체 누구에게 술을 배운다 말인가? 참 난감하였다. 학교에 발령받고 나서 모처럼 일찍 하숙집에 들렀다.

“아주머니, 혹시 술을 어떻게 먹어야 잘 먹을 수 있는지 아십니까?”

“술 잘 못 드시는 것 맞지요. 술 잘 취하면 안 되는 데 우에야 되겠노. 남자선생이면 술 한 잔은 해야지요. 술 자시는 법은 쪼금 알기는 하는데. 한 번 배워 보겠닝교? 술은 먹는 게 아니고, 이기는 것이라야 한다 아잉교?”

“우야면 되는 데요?”

“그라면 돈부터 내이소. 술을 사와야 술 자시는 법을 알제.”

“그렇지요. 여기…….”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곧장 술도가에 가서 사왔다. 당시 모포 칠전에 유명한 술도가가 있었다. 칠전에 유명한 우물이 있어 막걸리도 그렇게 술맛이 좋은 줄은 나중에야 알았다. 술도가 주인집이 바로 하숙집 옆집이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아주머니께서 술을 사 왔다. 두 되짜리 주전자 가득히 막걸리가 있다. 소반에 김치 한 쪽 숟가락 한 개, 왕사발이 놓였다. 있어야 할 술잔이 안 보였다.

“술잔은 왜 없습니까?”

“오늘은 술잔이 필요 없습니다. 술 처음 배우는 분이 의문도 많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지요.”

“예? 예.”

왕 사발에 막걸리를 부어 놓고 숟가락으로 술을 한 숟갈 떴다.

“애걔, 이게 무에요. 제가 아무리 술이 약하더라도 이건 아닌데.”

“아이~고오. 마아! 하라는 대로 하면 되지요.”

왕사발의 술을 숟가락으로 퍼서 맛보라는 것이다. 술 사부님께서 아는 비법이란다. 한 숟갈을 퍼 올렸다. 그 한 숟갈이 왜 그리도 독한지. 이제 두 숟갈 째 퍼 올렸다. 술의 도수가 더해지는 듯 혀끝에 술맛이 느껴진다. 이리하여 열 숟가락을 퍼 올리니깐 나에게도 취기(?)가 올랐다.

우리 술 사부 왈,

“고만, 오늘은 됐습니다. 여기까집니다. 이제 마아~ 그만 잡수시소.”

‘예? 그만 먹으라고요?’

“예에, 이제 됐습니다.”

 차린 술상을 들고 나가버린다. 차려온 술상을 열 숟가락 퍼 먹었다고 뺏어가 버리다니. 한편 황당하였다. 그래도 그 열 숟갈의 술기운이 오래 몸에 남아서 그저 몽롱하여 왔다. 아무 소리 못하고 오늘 익힌 술 마시는 법을 오래도록 기억하려고 베개를 내어 놓고 담요를 덮고 잠깐 사이에 잠이 들고 말았다.

 아버지를 만났다. ‘얘야! 막내야! 술을 배우려거든 제대로 배워야지. 사내라면 술을 먹고 이겨야지. 그리 약하냐?’홀연히 아버지 꾸중을 들으며, 저녁 먹으라는 주인아주머니의 소리에 잠을 깼다.

 또 교사의 하루 날이 밝았고, 하숙집에 돌아오니까 다시 술 배우는 세리머니가 시작 되었다. 이제는 술상에 작은 종지기가 놓였다. 종지기 술잔으로 다섯 잔을 먹으니 또 들고 나간다.

다음 날에는 종지기에 열 잔, 또 그 다음날엔 종지기로 열다섯 잔, 그 다음날에 드디어 작은 사발이 놓이고 본격적인 술을 먹기 시작하였다. 일취월장 술 실력이 막강(?)하게 늘어났다. 술을 먹고 이기는 노하우를 터득하고야 말았다.

 팁으로 절대로 빨리 마시지 말고, 이야기를 하면서 떠들면서 신나게 손도 조금 흔들고, 천천히 그리고 취기가 오면 모른 척하고 생수를 갖다 놓고 그것도 몰래 자주 마시면 술을 이기는 비법이 된다고 일러 주었다. 정말 술 사부는 철두철미 하였다.

 한 가지 더 있다. 내가 성질이 조금 급한 편이라서 술잔을 보면 바로 마셔 버리는데 빨리 취하지 않는 법은 상대방이 소주잔을 세 번 비울 때, 나는 한잔을 먹으면 덜 취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세 잔한 후부터는 같이 먹어도 된다는 법이다. 상대편이 먼저 알코올을 채운 후에 한 템포 느리게 내가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때는 정말 고마웠다. 이후 술 마실 일이 있으면 이것을 원칙으로 삼고 멋지게(?) 술 먹고 이기는 것을 자랑(?)하게 되었던 것이다.

 본시 술은 잘 못 먹었고, 못 이겼는데 이후는 정말로 감쪽같이 술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 M초등학교 때 배운 비법 때문이었다. 󰃁

(푸른 숲/20100-20130407.)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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