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수필 |
8. 말 통술 빨아 먹기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초등학교 교사를 1973년 5월 1일자로 초임교사 사령장을 영일군교육청으로 부터 받고, 당시 M초등학교를 찾아 가게 되었다. 계속 3년간 근무를 하였다.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현장에서 아동을 지도·교육하고 학부형과도 어울려서 상담도 하고 현장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또 협동하여야 했다. 자연히 할 줄 모르는 술을 배우게 되었고, 매일 먹게 되었다.
내륙지방에서만 살다가 동해 바다가 탁 트인 바닷가에서 4학년 1반 나의 교실에서, 푸른 바다가 보이는 교정에서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였다. 주당 두 시간이 든 체육시간은 반드시 지켰다. 무엇보다도 교육과정 운영에 최선을 다 하였고, 물론 비가 오면 교실에서 이론 수업도 철저히 하였다.
학년 마다 한 학급뿐인 소규모 전체 6학급 학교로서 조직은 아주 간단하였다. 교장선생님이 계셨고, 교감 선생님도 2학년 담임을 맡으셔야 했다. 1학년 담임이고 경리를 맡았으며, 3학년 담임은 사범학교를 나오셔서 교무주임을 맡았다. 그리고 5학년은 연세가 꾀 많으신 할아버지 선생님으로 예능 중에 음악시간에는 풍금 쳐야 하는 것 때문에 내가 대치하여 드렸다. 6학년 담임은 대학 선배이시고 당시 나이는 나보다 많으셔도 총각선생님이었다. 고용원아저씨 한 분이 있었다. 문제는 교사 구성에서 여자 선생님이 없었다. 내가 여선생 TO인데 남자교사가 발령을 받았기에 없었다. 자연히 내 업무가 서무, 양호, 자료, 과학, 도서, 교과서 등 업무를 맡게 되었다.
학교 일이 항상 많아서 넘쳐 났다. 내가 제일 잉크도 마르지 않았기에 열심히 일했다. 특히 교무주임선생님이 고맙게도(?) 공문서가 오면 교무의 업무 중에 연구, 기획, 교무분야 공문서 기안(起案)을 나에게 모두 맡겼었다. 당연히 서무업무로 공문서 접수, 배분을 내가 맡았기에 분류하여 해당 되는 공문 기안을 모두 처리하여 드렸다. 덕택에 나는 초임자로서 공문기안에 상당한 기회를 얻어 연습하게 된 것이다.
학교 업무가 폭주하고, 가장 중요한 것이 학생들의 실력을 올려야 하는 것이 교사의 중요한 업무이었다. 학생들 기초가 없어서 학부형동의서를 받고 정규 수업시간이외에 하루 두 시간씩 아예 도구교과인 국어, 산수과목을 새로 가르쳤다. 이것은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오늘도 무슨 공문이 오나 하고 공문서를 펼치니 색다른 공문이 왔다. 바로 관내 초·중등 교사연합친목회에서 돌아오는 10월 중순에 농번기(기간을 면내 통일로 함)를 맞아 강원도 설악산으로 산업시찰이라는 명목으로 떠난다는 것이었다.
산업시찰을 떠나는 날이었다. 당시 강원도를 가려면 우선 면소재지로 나가야 했다. 새벽 다섯 시에 2km를 걸어서 금오에서 버스를 받아 타고, 장기(長鬐)로 나가서 7시 반에 함께 출발하는 것이었다. 포장된 곳이 도시를 제외하고서는 거의 없었다. 모두가 비포장, 먼지 나는 신작로(新作路)일 뿐이었다. 그러나 훤히 뚫린 먼지 날리는 신작로다.
면내 교사친목회로 초·중등이라야 전체 인원이 50여 명이 고작이었다. 버스가 도착하고, 싣는 것이 가관이었다. 통나무 술통과 파이프뿐이었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악산을 향하여 출발하고 말았다. 장기를 지나면서 정천(井川)을 통과하고, 일월동(日月洞), 세계동(世界洞)을 경유하고 포항종합제철소를 지나 형산강다리 검문소를 지난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버스를 타면 나이 드신 분이 앞쪽 좌석에 앉고, 젊을수록 뒷자리로 오게 된다. 당시 지행면 친목회장님이 일장 연설을 하신다.
“에∼, 오늘 우리 관내 연합친목회에서 산업시찰 가는 날 덩달아 날씨도 좋고, 남·여 선생님들이 많이 참석하여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삼아 친교를 하시기 바라며, 당부의 말씀은 제발 무사고 하고, 산업시찰에 좋은 결실 맺기를 기원합니다. 제 말씀은 여기까지 입니다.”
포항 시내를 벗어나니 이제부터 비포장이 시작이다. 당시 비포장도로에서는 음료까지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돌아가면서 마셔야 하는 탁주 말 통술을 어떻게 마실 수가 있다 말인가? 다 방법이 있었다. 엑셀 파이프를 말 통 아가리에 집어넣고 늘어뜨려서 끝에 파이프를 입에다 물고 빨아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흘리지 아니하고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최고의 비법이 아니던가? 안주는 오징어 한 마리씩 던져 주고 앞에서 부터 차례대로 파이프를 물고 빨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느 누구 불평 한 마디 아니하고 여선생님들까지 들고 빨아먹기 시작하니 가관 중에 가관이었다. 하하하. 어찌 아니 장관일 수가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비포장 신작로로 가는데 덜컹거리고, 흔들리고 버스도 낡아서 불안하기 그지없는 데 감히 장거리 여행을 떠났으니 이 어찌 난관이 없을 소냐? 큰일이었다. 버스에서 차례대로 얼마나 술을 빨아 먹어 댔던지 겨우 영덕에 도착해서 벌써 화장실 간다고 뒤편에서는 난리이었다.
그해 관내 연합친목회 산업시찰은 파이프로 말 통술 빨아먹기가 단연 최고의 빅 이슈가 되고 말았다. 허허허, 선생님들도 참.
(푸른 숲/20100-201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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