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수필 |
9. 여수, 술집 찾아 삼만 리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그해 관내 남·여선생님들이 산업시찰을 가면서 말 통술을 파이프로 차례로 빨아 먹은 것은 장관 중에 장관이었다.
다음해(1974년) 가을 농번기에도 관내 교사 연합친목회에서 대장정 산업시찰로 계획이 되어 통지가 왔다. 바로 부여(夫餘)를 거쳐 1박하고, 논산(論山) 은진미륵을 거쳐, 호남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여수(麗水)로 가서 오동도(梧桐島)를 보며 1박하고, 이어서 진주(晋州) 촉석루(矗石樓)를 거쳐 저녁 늦게 학교로 돌아오는 코스이었다. 물론 요즘 같았으면 길도 좋을 것이고, 덜 피로하겠지마는 이런 대장정을 간다는데 모두 머리를 흔들었다.
단체로 또 산업시찰을 간다고 하니 아주 특별한 사유가 없는 사람을 제외하고서는 신기하게도 모두 참석하였다. 특히 고학년을 맡을 교사는 이렇게라도 산업시찰을 하고 우리나라 여러 군데의 발전과 변화를 감지하여야 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기도 하였다.
당시만 하여도 길이 그렇게 원활하지 못해서 부여를 찾아 가는데도 동해 쪽에서 한나절이 걸려 겨우 부여를 오후 세시에 도착하였다. 물론 전에도 와 보았지만, 부여는 먼저 낙화암(落花巖)을 보고 고란사(皐蘭寺)를 찾는 것이며, 백마강(白馬江)을 내려다보는 백화정(百花亭)이 있어서 좋았다. 빨리 온 사람들은 곡창 터를 찾아보는 것이 그 때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코스이었다. 저녁이 되어 부여 시가지에서 방을 정하고 저녁을 먹으려 나갔다. 아니 웬걸 부여가 관광지이지만 그날따라 우리학교에서는 한우를 시켰는데 어찌 그리도 여물든지 도대체 먹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간이 맞지 않아서 먹지 못하고 그냥 버리고 나와 버렸다. 아무리 뜨내기손님이고, 관광지라지만 너무 했다. 어쩔 수 없이 저녁을 국수로 때우고 말았다. 모두 기분을 잡치고 2차 술자리도 못하고 여관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튿날 간밤에 술을 먹지 않아서 속은 편해 좋았다. 만약에 어제 먹으려던 한우가 안주로 좋았으면 산업시찰 첫날 저녁부터 곯아 떨어졌을 텐데, 어떻게 보면 고기 맛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논산에 들러 은진 미륵을 바라다보면서 연례행사이지만 이 미륵을 보고 갈 수 있는 것이 행운이었다.
1974년 호남 고속도로를 타고 광주를 경유하여 순천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사실 당시 호남고속도로는 말이 고속도로이지 문제가 많았다. 아니 고속도로를 만들었으면 크로스가 되는 곳이 없어야 하는데 고속으로 달리고 있는 버스가 곧잘 멈춰 서고 만다. 바로 일반 국도에서 가로질러 건너는 차들이 과속을 하여 고속도로로 운행하는 버스가 서야 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당시는 그랬다.
우여곡절 끝에 순천을 접어들면서 기찻길과 함께 따라 들어서고 있었다. 밤이 되면서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이 안 되면서 겨우 여수 항구에 도착하여 여수 들어가는 입구에서 각 학교별로 원하는 식당에 들어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관광지인데도 여기는 항구라서 그런지 비교적 반찬에 맛이 있었다. 생선까지 곁들여지고, 조개, 회까지 나오면서 진수성찬이 되었다. 모두들 밥 반주까지 곁들여서 자꾸 소주, 맥주를 섞어 마셔서 모두들 취기까지 오르고 말았다. 교장선생님과 여선생님은 먼저 정해 둔 여관으로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은 교감선생님이 남아라고 지시하여 객고나 풀자고 해서 남자선생 넷은 남았다. 남자선생들은 교감 선생님의 지시를 따라야만 했다.
식당 주인에게 물어 아가씨 좋은 술집이 어디 있느냐고 하니까 콜택시까지를 불러 주어서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까지 했다. 우리는 식당 주인의 고마운 배려에 감사도 하고, 다섯이 비좁은 택시에 올랐다. 여수 택시 기사는 밤이 짙어 지면서 우리를 태우고 다니면서 나중에 알고 보니까 세병관 앞을 돌아 다시 내려와서 저녁 먹은 그 식당을 돌아 다시 오동도 입구를 돌아, 다시 세병관을 돌고 저녁 먹은 식당 앞에 택시를 이제는 세웠다.
“아니, 택시 기사님! 보세요! 우리가 아까 탔던 데가 아니요?”
“그래, 뭐 이런 놈들이 있노?”
“우리가 촌사람인가?”
“이것 고발해야 된다!”
“너무 했다. 이게 뭐∼꼬? 택시비 못 준다.”
우리 일행 다섯 명은 모두가 한 마디씩 하였다. 기가 차고, 매가 찼다. 전국에 관광지마다 모두가 이런 것인가? 기어이 택시기사가 한 말씀을 때려 주었다.
“여수는 여기 말고 아가씨 집이 없어요.”
“그럼, 바로 알려 주시지.”
“그러면 우리는 택시 값 어디서 받아요?”
“그래. 알았어요. 택시 잘 탔어요. 정말 대기 고맙습니다. 이것 받고 잘 먹고, 잘 사이소! 이 양반아!”
그리고 저녁 먹었던 식당 이층 아가씨 집으로 향하고 말았다.
하하하. 여수에서 술집 찾아 삼만 리, 당시 그 좁은 여수시를 세 바퀴나 돌고 돌아 제자리에 내려 준 여수택시는 정말 고마웠다. 덕택에 예쁜 여수 아가씨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푸른 숲/20100-201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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