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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4.대학생과 술

신작수필

4. 대학생과 술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시골 촌아(村兒)가 대학을 가려고 출사표(出師表)를 하였다. 경주 시외주차장에서 시퍼런 색깔의 영천경유 완행버스를 타고 3시간 반 동안이나 걸려서 대구 신암(新岩)주차장에 내려야 했다. 붉은 색을 한 직행버스(170원, 고속버스 240원)는 더 비쌌기에 완행을 탈 수밖에 없었다.

 촌에서 왔는데 학자금은 없고, 길도 모르고 어디가 어인인지 모르는 촌아가 대학 다닌다고 RNTC 제4기로 입단하여서 검은 교복과 베레모를 쓰고 다녔다. 돈이 부족하여 대학을 못갈 뻔하였다. 여러 과정을 거치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런저런 곡절을 거쳐 대학의 문을 들어서고 말았다.

 나는 당시에 절박하였다. 초교를 졸업하고 2년 서당에 다녔던 관계로 고교 2학년에 군 입대 신체검사를 받아서 고3에 이미 영장이 나와 대학을 가지 않으면 익년도 3월 12일자로 안동 36사단에 행정병으로 훈련을 들어가야 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아르바이트 찾기에 고심하였다. 물론 처음에는 종형수 큰언니 댁에 중학생 아르바이트를 구했지만 두 달로 끝을 내었다. 다시 물색하던 중 대학 클래스메이트가 알선 해주어서 삼덕로터리 부근에 계성초교 3학년짜리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게 되었다. 사실상 가르칠 게 없었다. 초교 3학년짜리인데 공부를 무척 잘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술을 거의 먹지 않았다. 아니 돈이 없어서 먹지 못했다. 대학에 입학을 할 때는 예비고사 2기생으로 예비고사도 거쳐야 했고, 대학 본 고사도 치러야 했다. 대학 1학년을 마칠 때인 2월에 내가 치른 본고사 문제지를 가지고 있어서 돈 벌 궁리를 하게 되었다.

전년도 문제지를 등사로 밀면 그것을 팔수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생각이 적중하였다. 고향 경주인쇄소에서 원지 여섯 장을 모두 등사판에 원지를 긁어주는 데 장당 1,000원을 주고 긁었다.

 셋째 매형이 언양에 초등학교 고용원으로 근무할 때이었다. 매형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원지를 밀어달라고 하였다. 등사한 후 여섯 장씩 편철해서 호치키스로 일일이 쳐댔다. 약 700부(전년도 1.4:1이므로 모집 정원 480명 기준)를 등사하여 동양화물로 대구로 송부하였다.

대구에 도착하여 전년도 대학 본고사문제지를 찾아다 자취방에 갖다 두었다. 혼자서 판매를 일시에 하지 못하니까 일을 도와 줄 사람을 구했다. 같은 반에서 어렵게 아르바이트로 대학을 다니던 한방 친구에게 부탁하고, 당일 남자 둘은 이종사촌과 그 친구를 섭외하여 두었다. 바로 수험표를 교부하는 날이 되었다.

 미리 전지에다가 큰 글씨로 “전년도 본고사 문제지 판매 1부당 1천원!”이라고 써서 대학 교문 옆에다 높이 붙여 두었고, 네 사람이 교문 입구에 좌판을 벌여 두었다. 수험표 교부시간이 가까워 오자 상상 밖으로 모여 들기 시작하였다.

 대학에 붙을 것인가 떨어질 것인가는 전년도 시험 문제지를 구해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은 차이가 나지 않겠는가. 넷이 700부를 각각 175매씩 나누어서 한 묶음씩 주고 천원 받고, 한 묶음 주고 천원 받아서 돈을 모았다. 얼른 거개를 팔고서 자취방으로 가 버렸다. 오래 교문에 있으면 혹시 학교 당국에서 뭐라 할까 보아서 빨리 철수하여 버렸다.

 전년도 시험지를 못 구한 사람들이 늦게까지 자취방으로 찾아 와서 기어이 700부를 모두 팔았다. 기본금 16,000원을 투자하고, 1972년 당시로 현금70만원을 벌었으니 이것이 대박이 아니던가?

 자취생 이종사촌과 한 사람 등 그러니까 두 사람에게 일당3만원을 주었다. 당시 그 3만원이 감지덕지한 것이다. 당시 5급 을직(요즘 9급)공무원 초임봉급이 5,500원 할 때다. 같이 자취하던 친구에게 25만원을 주었고, 나는 35만원을 따로 넣어 두었고, 나머지 24,000원을 들고 시내 술집으로 향하였다.

 당시는 이조주촌(李朝酒村) 등 대학생이 가는 술집이 있었고, 우리는 그 옆집인 영남식당에 들어갔다. 막걸리 30원 하던 술값으로 24,000원을 다 쓰려면 얼마나 먹어야 다 쓸까? 부어라, 마셔라! 부어라, 마셔라하여 안주 먹고 술 마시고, 안주 먹고 술 마시고 마침내 술떡이 되고 말았다. 네 사람이 같이 술을 먹었는데 아무리 기운이 좋고 청년이었지만 그 많은 돈으로 술을 모두 마시기에는 항우장사라도 감당이 되지 아니하였다. 그래도 아직 돈이 남았다.

 우리는 그저 술에 취해서 택시를 타고 각자 집으로 가고 말았다. 둘은 자취방으로 들어가서 사흘이나 술에 찌들어 죽어 있었던 것이다. 주인아주머니의 목소리에 놀라 깼다.

“학생들! 있나? 사흘 동안 문·닫고 여는 것이 없어? 어찌 됐어요?”

“예.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사흘이나 잤습니까?”

“그래요. 아이고 나는 (연탄)까스 먹고 죽은 줄 알았네. 학생들! 술 먹었구나!”

“오랜만에 돈이 좀 생겨서 많이 먹었습니다.”

 나의 깜짝 아이디어로 그렇게 돈을 벌어도 보았다. 그리고 술도 먹어 보았다. 하하하. 󰃁

(푸른 숲/20100-20130405.)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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