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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2.최초의 술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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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수필

2. 최초의 술장사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술이 무엇인가? 우리말 “술”의 어원은 최초 “수”과 “수불”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수본”이란 표현을 거쳐 조선시대 “수울” 또는 “수을”에서 “술”로 변모했다.

 한자로 “술 주(酒)”자는 “유(酉)”자라고 한다. 유자는“익을 유”, “술 담을 항아리 유”로 읽히는데, 밑이 뾰족한 항아리 상형문자에서 변천된 것으로, 술의 침전물을 모으기 위해 끝이 뾰족한 항아리에서 발효시켰던 것으로 유래되었다. 처음에는 술을 뜻하던 유자가 이후 다른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삼수변(⺡)이 붙게 된 것이다.

 오늘 날에는 술과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자가 들어 있는 글자들 중에는 애초에 술과 관련되었던 글자가 많다. 술을 뜻하는 유자가 변으로 들어간 모든 한자는 발효에 관한 광범위한 식품 이름으로 취(醉), 작(酌), 례(禮), 순(醇) 등이 그 예다.

 형님이 네 분이나 계셨다. 그 중에서도 셋째 형님은 참 부지런하였다. 아버지가 목수이었는데, 새보 보머리에서 조금 내려오면 중간막이 둑이 있었는데 그 위에 우리 땅 공한지가 있었다. 셋째 형님은 아버지께 부탁하여 오막살이집을 짓게 되었다. 명색이 오막살이지만 그래도 방이 두 개요, 오른 쪽에 부엌을 만들어서 외동면 방어리 사람들이 다니는 통행로에 주막을 지은 셈이었다.

 큰방에 장사할 물건 놓을 선반을 만들고, 소주 독도 서너 개 들이었고, 서쪽 머릿방에는 밤마다 동네 한량들이 찾아 들어 노름을 하던 방이었다. 바로 노름하면 곧 술장사가 되기 시작한다.

 큰방 상점 시렁에는 뽑기 풍선판도 있고, 큰 사탕인 오 사탕통도 있고, 샌빼이 과자, 비가·유가 등 사탕, 길게 늘여져 있는 롤빵, 오리표 건빵, 성광표 성냥, 풍년초 담배, 필터 없는 막꼬담배, 필터 있는 고급담배, 전신만신 백구소주인 안강(安康)소주, 보리술 맥주까지 진열 해 놓았으니 시골 주막집 장사치고는 제법 진열되어 있었다.

 한문 글씨를 잘 쓰시는 백형에게 가서 창호지 등(燈)에다가 술주자(酒) 외자를 큼지막하게 사방 문에다가 써 달래서 가지고 왔다. 이내 셋째 형은 길가 잘 보이는 사립문 오른쪽에다가 달아 두고, 저녁이면 호롱불을 밝혀 두기도 한다.

 이곳에 상점을 개설하였지만 그 통행인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장사가 잘 되지 않았고 매우 어려웠다. 통행자가 주로 방어리에서 기차를 타기 위한 통학생들이었고, 혹은 성인들이 통행해도 경주시내에서 물건을 사오거나 준비하여 오기 때문에 판매가 쉽지 않았다.

 단지 지나는 과객이 목이 말라 물 얻어먹으려고 잘 들어 왔다. 그래서 낮에는 셋째 형이 일 나가시게 되었고, 자연히 우리 집에서 제일 꼬맹이인 초교 3학년짜리 나에게 상점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방어리에서 시내로 볼일을 가시는 어르신들이 들러서는 물도 마시지만, 갈증이 오는지, 소주를 찾는다. 요즘처럼 소주를 한 병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당시는 돈이 귀해서인지, 없어서 인지 모르겠지만 잔술을 사 먹으러 오는 것이었다. 당시 소주 한 병이 30원이었다. 그런데 ‘잔술을 자꾸 팔아라.’고 하니 참 곤란 하였다. 그래서 셋째 형에게 물어 보았다.

“형님, 요즘 어르신들이 ‘잔술을 팔아라.’고 하는데, 한 잔에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요?”

“한 병에 소매 30원인데 어쩔 수가 있나, 한 잔에 최소 10원은 받아야지.”

“그렇게나 비싸게요?”

“아니지, 소주를 한 잔 팔고, 따 두면 나중에 김새서 못 먹지. 오히려 버리는 것 생각하면 비싼 것 아니지. 마아 10원씩 받아라!”

“예!”

 나는 어려서 잘 모르지만, 한 병에 30원짜리 35도 소주를 잔으로 한 잔에 10원 받으면 일곱 잔이 나오니 70원으로 상당한 폭리가 아닌가 말이다. 장사를 하려면 장사답게 하여야 하는데 아직 나는 장사꾼이 아닌가 보다. 우리 셋째 형의 말씀에 장사의 기초를 이해하여야 했다.

“얘야! 소주 잔술도 파나!”

“예.”

“한 잔에 얼마지?”

“예! 10원입니다.”

“아이고 너무 비싼데, 우선 먹고 싶은 데. 그래 내게 한 잔 도오!”

 나는 잽싸게 받침에다가 소주 컵으로 한 잔을 붓고, 안주로는 공짜로 왕소금 종지기를 함께 내어 놓는다. 어르신은 술잔거리로 10원을 먼저 내고, 기분 좋게 마셔 주신다.

“캬∼아! 바로 이 맛이야!”

 그리고 입을 다시다가, 드디어 발동이 걸리고 만다.

“야야! 한 잔 더 도오!”

“예. 술값을 내셔야지요!”

“여기 있다! 10원!”

 동전 소리가 들리고 건네는 안강소주 35도짜리 술잔을 받아서 빼 꼼이 잔을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들어, 입에다 확 털어 넣어버린다. 어르신은 35도 안강소주를 연거푸 두 잔을 들이켰다. 요즘으로 치면 19도짜리 소주의 배나 독한데도 말이다.

 이것이 최초의 술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어르신들은 두 잔을 마시고 오히려 술 한 잔에 감질만 느낀다. 또 한 잔을 더 시키고 만다. 한 병이 30원이 아니고, 반병에 30원이 되고 만다. 어찌 보면 그 어르신이 참 바보스럽다. 아예, 30원 내고 한 병 다 마시면 되는데, 한 잔씩 따로따로 마셔서 겨우 반병 정도 마시고도 돈은 한 병 값을 치르고 마니 말이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참 묘하다. 한 병을 30원에 주고 사면, 술이 과해 진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돈의 수전노(守錢奴)가 되었지만은 저 어르신네가 나를 갖고 놀았네. 한 병을 사서 다 마시지 아니하고, 한 병 값으로 석 잔을 마시고, 술은 반만 취하는 현명한(?) 삶의 방법을 이미 터득하셨다. 어르신네들이 정말 고단수가 아닌가? ?

(청림/20100-20130403.)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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