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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

[스크랩] (푸른 숲 제7 수필집)술은 술술 잘 넘어가고-3.췌객과 술

신작수필

3. 췌객과 술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췌객(贅客)은 누구를 이름인가? 췌객은 “어떤 집안에 장가 든 사람을 그 집에 대한 관계로 일컫는 말”이다. 우리 고향에서는 “췌”라는 글자의 복모음 발음에 힘이 드니까 그냥〔치 객〕이라고 발음하고 만다.

 한 때 췌객들은 여가가 나면 처가에 많이 놀러 오게 된다. 우리 집안에 바로 큰 누이, 둘째 누이, 셋째 누이, 넷째 누이가 있어 매형들이 많다. 물론 이 췌객들이 한꺼번에 처가에 다 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가까이 살고 있거나, 농사철이 지나고 시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곧잘 처가에 찾아오게 된다.

 큰집에도 사촌 누이가 여럿 있었고, 작은집에도 사촌 누이가 여럿 있었다. 큰 집, 작은 집, 우리 집 등 췌객들이 모두 열이나 되었다. 그래서 아무런 약속도 없이 그저 모여 드는 취객들이 수시로 서넛에서 너 댓 씩 줄을 잇고 있었다. 오는 췌객들을 오지 말라고 못하니 백년손님들이 아닌가.

 췌객 성씨들로 보면 순흥(順興)안씨 안 서방, 경주(慶州)최씨 최 서방, 달성(達成)서씨 서 서방, 함창(咸昌)김씨 김 서방 등이라 하는 성씨들이 있었고. 큰집에 수원(水原)황씨 황 서방, 경주(慶州)김씨 김 서방, 해주(海州)오씨 오 서방, 작은 집에 청안(淸安)이씨 이 서방, 해주(海州)오씨 오 서방, 경주(慶州)박씨 박 서방이라는 성씨들로 모두 총 열 분이다.

 본 손 우리 집 오형제와 큰집 종백씨 한 명, 작은집 종형 한 명 등 일곱 명이나 되니, 죄다 모이면 남자 꼭지가 열일곱 명이나 되고 만다. 어쩌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할아버지 제삿날에 모이게 되면 제관들로 마당을 넘치고 만다. 자손이 번성하여 본 손과 췌객이 버글버글하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아버지는 이런 광경을 사랑채에서 내다보면서 ‘백년손님을 위하여 닭을 잡아라!’라는 엄명이 제일듣기 좋은 소리이었다.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셋째 매형은 닭장에 바로 들어 가 제일 잘 키워 둔 장 닭을 잡아서 바로 목을 비틀어 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혹시 키워 둔 닭이 아깝다고 아무도 안 잡을까 보아 장인의 떨어진 말씀에 바로 실행을 하여 버리는 것이었다. 정말 잽싸다.

 잡혀온 닭은 물을 끓이고, 털이 뽑히면 바로 해체하여 제일 먼저 닭똥집, 모래주머니를 씻어서 그 뜨끈뜨끈한 안주삼아 소주가 나오고, 막걸리 주전자가 함께 나와 술 마시기 시작한다. 술잔이 돌고 멍석이 펴지면서 날이 어둑해 지면 처마에 남폿불이 걸리고 본 손과 췌객들이 편을 갈라 본격적으로 술내기 윷놀이가 시작된다.

 그래 체면이 있지. 본 손들은 그래도 체면을 보이려고, 아니 차성이문(車城李門)의 긍지를 보이려고 엔간히 윷을 잘 던진다. 각 성(姓)받이 췌객들은 이에 질세라 합세를 하여 응원을 하고, 집안 전체가 시끌벅적하다.

 윷놀이에는 말판을 잘 사용하여야 이길 확률이 높다. 그런데 췌객들은 마음이 서로 달라서 말을 잘못 사용하여 자꾸 잡히고, 잡혀서 기어코 지고 만다. 이럴라치면 췌객들도 지고서는 못살아 하면서 재경기를 하자고 하고 다시 한 판을 더하게 한다. 이번에는 본 손이 져서 1:1이 되고 말았다. 내기경기는 누구라도 이겨야 끝이 날 것이다. 오기로 마지막 한 판을 다시 붙게 된다. 우리 본손 들은 술을 못하기 때문에 그래도 내기 경기를 잘하고 있다.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미 췌객들은 막걸리, 소주를 섞어 벌써 많이들 마셔 버렸다. 말을 쓰는 것에 판단이 흐려지고 자꾸 게임 운영이 어려워진다. 넉 동을 본 손이 먼저 나 버렸다. 탁주 한 말 내기는 췌객들이 지고 말았다.

 이제 날도 어둡고, 바람이 불어 모두 큰 방으로 들어갔다. 기어이 화투판이 벌어졌다. 속칭 “나이롱 뻥”이었다. 본 손 셋, 췌객 셋 여섯 명이 방안의 경기인 화투가 시작되었다.

 벌써 닭죽이 다 끓여지고 췌객 술꾼들의 술안주가 되고, 요기가 될 닭죽이 잘 끓여져 나왔다. 그렇게 소란하던 방안이 모두 주어진 닭죽 한 그릇 먹기에 천지가 조용하여 졌다.

 시골 당시 1960년대는 시골의 정취를 느끼며, 췌객이라는 분들이 처가에 들려 노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는지 모른다. 정말 시골로는 췌객들이 드나들 때가 집안에 윤기가 있었고, 외손들이 외가에 들리고 척간의 따뜻한 배려와 서로 보듬어 주던 것이 얼마나 좋았으랴. 그 때 그 삶의 정겨움이 진정 묻어나는 췌객과 술이 바로 매개체이었던 것이다.

 많은 자식들이 있어서 아버지는 즐거웠을 것이다. 아버지는 매형들이 오면,

“출아! 백년손님 왔다. 오늘 저녁에 허무쪼가리 지져라!”

“예. 아버지.”

 밥 반주로 술이 나오면 장인(丈人)으로서 아버지는 사위들의 술잔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바로 어른 대접을 톡톡히 받으시는 것이다.

 이런 대화가 오가고, 그런 풍정(風情)을 느낄 수 있어 정말 정겨웠던 시골 냄새가 나는 그 때 그런 것이 그립다. 󰃁

(푸른 숲/20100-20130404.)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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