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62)차성이씨 세계도

신작수필

62. 차성(車城)이씨 세계도(世系圖)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세상에 남자로 태어나 살면서 얼굴 붉히는 일을 당해 보았는가? 특히 자기 조상을 잘 몰라서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무엇을 내가 그렇게 잘못하였기로 이런 상황을 당하고 산단 말인가? 그런 연후에 앞으로 조상의 계보를 찾는 것으로 나는 평생 지상목표로 할 것이라고 굳게 맹세하였다.

 내가 대한제국 오대적신도 아닐 진데 세상 참 살기 어렵다. 유명한 역사학자 이병도의 큰아버지가 이완용이라 역사를 전공하면서 통탄하였다한다. 그런데 나는 무엇인가? 나는 한미한 집안에 태어난 죄(?)로 부족한 조상의 문헌으로 인하여 내가 왜 얼굴을 붉혀야 하나. 그러나 나도 사람인지라 한미한 집안에 태어난 것으로 스스로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교사발령을 받고, 결혼하고 아들 둘 낳고 서른세 살에 8년 교사직을 버리고 대구로 왔다. 물론 사전에 대학 행정직으로 시험 치고 합격하고 나 개인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대학교 편입도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1981년 대학 도서관에 들러 조상 계보자료를 찾고 복사하고 또, 대종회와 파종회까지 창립하고 운영하였다.

 계기는 최초로 1973년 우연히 학교에서 내 손에 쥐게 된 한권의 책 “신증동국여지승람 3권”때문이었다. 기장현(機張縣) 389페이지에『군명:갑화양곡(甲火良谷)·차성(車城)』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부터이었다.

 내 초교 3학년 때 일자무식한 아버지께 여쭈어 보아도 그 대답을 못 받았던 답을 직접 찾아 나섰다. 대종회 운영 중에 시조 시향대제를 집행하면서 숙항께서 당시 양산군 기장읍 동부보건소장을 하셨다. 귀한 『기장읍지(機張邑誌)』를 나에게 보내 주었다. 아울러 서울에 있는 본종 사무국에도 출장 다녔다. 본종 "표암" 종중지에도 기고하였다. 그러자 천군만마 같은 자료들이 그때부터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중앙일보사에서 획기적인 자료 발간이 있었다. 바로 『성씨의 고향』이라는 거대한 자료가 또 집대성되었다. 여기도 기고하였다.

 대학에 근무하면서 도서관 출입으로 여러 자료들이 하나씩 모이기 시작하였고, 최초로 『차성종보』를 발간하여 전국 대학도서관에 발송하였다. 이를 보고 자료 요청과 함께 관련 자료들이 모였다. 한국사 대사전,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에도 기고하였다. 아울러 컴퓨터 세상이 되면서 인터넷이 발달하고 인터넷에 우리 본관 자료가 속속 나오기 시작하였다. 서울소재 출판사에서 『신라천년사』라는 책을 발간하여 또 배달하여 주셨다. 궁달(窮達)이다. 궁하면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면 통하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에 태어난 남자의 가장 중요한 일을 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특히 조상을 알고 싶어서 “보학통론 1·2권”을 출판하여 근무하던 대학평생교육원에서 강의도 하고 보학에 대한 이론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대한민국 이씨(李氏)의 본관은 『증보문헌비고』에는 451본,『조선씨족통보』에는 546본,『전고대방』에는 109본, 『국조방목』 에는 103본 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 중에 시조가 뚜렷하게 밝혀지고 현존하는 본관은 100여 본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이씨의 연원은 계통별로는 신라의 육촌 중 알천 양산촌의 촌장 알평(謁平)이 신라 유리왕 9년(서기32년)에 다른 다섯 촌장들과 함께 사성 받을 때 이씨를 하사받아 경주이씨로 계통을 이어 오다가 차성(車城)·합천(陜川)·우계(牛溪)·아산(牙山)·재령(載寧)·장수(長洙)·진주(晋州)·원주(原州)이씨 등으로 분적한 계통이 있다.

 전주이씨의 시조인 이한의 계통과 당나라 장군으로 소정방이 신라와 동맹하여 백제를 침공할 때 함께 따라와 신라로 귀화한 이무(연안이씨의 시조)의 계통이 있으며, 중국 한문제 때 사람인 이반의 24대손 이황(고성이씨의 시조)과 김수로왕의 둘째 아들 후예로 전하는 이허겸(인천이씨 시조), 원나라 출신으로 조선개국에 공을 세운 청해군에 봉해진 이지란(본명은 퉁두란, 청해이씨 시조), 중국 농서출신으로 낙랑태수를 지낸 이진(안악이씨의 시조) 등으로 대별된다.

 차성(車城)이씨 시조 이 위(李渭)는 호가 조은(釣隱)이며, 시호는 충숙공(忠肅公)이다. 아버지 중서사인(中書舍人) 이사언(李嗣彦)과 더불어 김명소(金明所)장군이 위해함으로써 고통을 겪다가 신라 경문(景文)왕조에 토평하여 국난평정공신으로 차성군(車城君)에 봉해졌다. 신라에서 벼슬은 성주장군(城主將軍)을 지냈으며, 녹상서사(錄尙書事)하였다. 이어서 고려 공조전서후벽상공신(工曹典書後壁上功臣)으로 보국상대장군(輔國上大將軍)에 추증되었다. 차성군으로 봉해진 것을 연유로 후손들이 차성에 잉거(仍居)하면서 관향 역시 차성(車城)으로 하며, 이 위(李渭)를 시조로 하여 기계(起系)하고 있다.

 때마침 내가 근무하던 대학을 퇴직하고, 자료를 집대성하여 우리 선조들의 세계도가 확립되었다. 선조 세계도(世系圖)를 완성하게 되었다.

시조1세 李渭->2세 桓->3세 䫨然->4세 塍->5세 鏞->6세 願浚->7세 柱顥->8세 顜煐->9세 鎭->10세 時發-時逢->11세 守敬-仲氣(無后)->12세 晙棋->13세 敎退->14세 晶彦-株福(無后)->15세 在荵->16세 大根->17세 玟允->18세 熙泰-熙大(無后)->19세 眞->20세 從俌->21세 廷億->22세 元周(부사공파조)-亨周(정랑공파조)->23세 孟宗-孟之->24세 一東-仲東(出 孟之)-季東(교리공파조)->25세 賀-賀荃-玟奭->26세 希元-浩-亨元->27세 萬發-宗文-騫-麟->28세 應璧-忠國-應斗-夢良->29세 成輔-成龍-廷郁-廷峻-潤-景華->30세 起祥-三錄-汝裕-汝苾-茹蘭-暄-嘷->31세 時明-有昌-俊昌-汝昌-時蘭-時英-杙(無后)-成輝->32세 達元-永震-永憲-永遠-友桂-友杞-柱廈->33세 達春-再春-善佑-善重(판관공파조)-善弼-善基(호군공파조)-善耈-琳-德楷 등이다.

 이후 백(伯)자 항렬 40世까지 약 1,200여 년이 된다.

 이상으로 지상목표를 완성하게 되었다. 󰃁

(푸른 숲/20100-20130328.)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