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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59)시조 시향대제 봉행

신작수필

59. 시조 시향대제 봉행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나는 어려서 근교에 시제를 많이 따라다녀 보면서 느꼈다. 시조 묘는 어디에 있을까 하는 항상 궁금증에 빠지곤 하였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 시조 산소를 찾아가기는 어려웠다. 시조산소가 있는 당시 기장에 아버지께서 다녀오면서 음식을 싸오곤 하였다.

“아버지 우리 본관이 차성인데 어디입니까?”

“글쎄. 무슨 연유로 차성인지 난 잘 모른단다. 그러면 우리는 월이(月李)에서 분적하였다고 하니 언제 시간을 내어 나를 따라 가보자구나.”

 내가 감히 초교 3학년 때로 이런 질문을 던졌으니 1959년이었다. 의문이 풀리려나 싶어서 아버지를 따라 경북 경주시 동천리 표암재(瓢巖齋)에 들렀다. 문이 굳게 닫혀 있어 할 수 없이 재실 곁 담장을 따라 광임대(光臨臺)로 올라갔다.

 정말 신기한 것은 어린 나이임에도 그곳에 신비가 있어 보이고, 우리의 씨족을 낳게 한 비조의 탄강지 바위에 붉은 색을 남겨 두었으니 본종의 원류를 희미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사이에 학교 공부하고 직업을 갖느라고 잊고 살았다. 결혼하고 조상의 필요성을 늦게나마 1980년에야 알았다. 한 번도 못가 본 시조 묘를 찾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교통이 불편하였고 가는 길도 잘 몰랐다. 불국사기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 더욱 찾기 편할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러나 당시 기차는 오전에 일찍 가고 없었다.

 매년 음력 시월 초엿새에 시향대제를 모신다는 것만 알고 막연히 경주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누구에게 묻지도 못하고 출발하였다. 시향대제 날에 시조산소를 찾아 가고픈 마음만 급급해서 부산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말았다. 부산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려 기장 가는 방법을 여쭤보니 어렵게 설명하여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가 일러 주었다. 길을 잘 모른다고 하니까 기장 가는 방법은 수영을 거쳐 가는 시외버스를 타라고 일러 주었다. 그냥 물어물어 그렇게 우연히 기장 가는 버스를 탔다. 기장에 내렸다. 또 막막하였다. 시외버스 주차장에 아무나 붙들고 여쭤 보았다.

“아저씨 기장 시제에 가려는데 어디서 무슨 버스를 타야 합니까?”

“어디, 경주에서 왔소?”

“예. 경주에서 온 차성이가입니다. 오늘이 시제라서 가려고 합니다.”

“경주양반이구려! 내도 동래 가는데 같이 갑시다.”

“예. 차성이씨 시조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예. 잘 알지요. 경주양반 아닙니까? 만다(화)리 동서마을에 내려 오른쪽 산길로 조금 올라가면 나옵니다. 차성이씨는 정말 양반이지요. 우리들은 그 묘를 ‘차릉’이라고 불러요.”

“예. 감사합니다.”

나는 자세한 말씀으로 참 쉽게 찾아갔다. 요즘 같으면 동래에서 반송동을 거쳐 고개를 넘고, 고촌-안평을 지나면 만화리 동서마을이다.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나는 그렇게 어렵게 찾아 갔다.

현장에 이르니 아는 집안의 재종형님들을 만났다.

“종제, 오늘 어째 찾아 왔나?”

“이래 저래 아무나 붙잡고 물어물어 왔습니다.”

“그래 잘 왔네.”

 처음 찾아 간 시조시제는 체계도 없고,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우왕좌왕하였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년에는 꼭 사전에 준비하여 일찍 와서 정리하여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침 위토답을 붙이는 분이 제수를 차려 왔다. 진설하고 부산에서 오신 분들이 많았다, 그래도 경주식으로 진설을 완료하고 봉행을 하였다. 또 홀기도 없었다. 준비할 것이 많았다. 그래도 용케 시제 진행을 완료하고 음복에 들어갔다. 음식이 많아서 오신 분들이 봉송을 많이 쌌다.

 올 때는 만화리 고개에서 동래 가는 버스를 타고 반송동으로 나오니 아주 가까웠다. 동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경주로 돌아왔다.

 다음 해 시제가 되었다. 이제 가는 길을 미리 알았고, 항렬자 번호패를 준비하고, 도기(到記)를 만들고 시조 시향대제 도기증을 만들고 단단히 준비하고 나섰다.

 바로 도기를 기재하는 동시에 주소를 기재하고 항렬을 파악하여 패찰을 드려서 패용하였다. 홀기도 준비하고 시조 시향대제 진행절차에 따라 참가 하신 분 중에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진행자와 독축자를 정했다. 시제를 시작을 알리면서 보니 항렬자 패용으로 항렬 순으로 도열하였다. 모두가 계획대로 잘 진행되었다. 홀기에 따라 진행하니 이설도 없다. 같은 뿌리에서 가지를 벋어 나온 후손들이 시조 시향대제를 경건하게 진행하였다.

 매년 음 시월 초엿새에 차성이씨 시조 휘위(諱渭)시향대제를 봉행한다. 󰃁

(푸른 숲/20100-20130325.)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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