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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 뒷동산에는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2집 "내 고향 뒷동산에는"(60)아버지의 회갑연

신작수필

60. 아버지의 회갑연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인간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일생동안 통과의례(通過儀禮)가 있다. 바로 출생, 돌, 생일, 입학, 졸업, 승진, 결혼, 회갑, 칠순, 미수, 장사(葬死) 등이다.

네델란드 『반 게넵스』라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나라, 민족에 대하여 통과의례를 연구한 사람이다. 단지 세상의 사람들이 언어 소통만 다를 뿐이지 인간이면 누구나 통과의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겪어야 하는 여러 가지 일들 중에 특이한 고비를 넘긴다. 어느 누구나 거쳐야 하는 명사형 낱말에서 우리는 찾아 볼 수 있다. 사람의 죽음이다. 조금 전 시대만 하여도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참 짧았다. 1960년 산업화과정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1960년에 남여평균 52.4세였던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살려고 그렇게도 아등바등 살게 된 것인가?

내가 초교 3학 때(1959년) 아버지 회갑(回甲)이었다. 평균 수명이 짧았던 시대이었기에 통과의례 중에 회갑이 시골에서는 최고의 잔치로 치러지고 있던 때 이었다. 우리 집에는 형제자매뿐만 아니라 남여사촌들까지도 많았다. 백부와 작은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 가셔서 자식 치송(治送)은 모두가 아버지 몫이었다.

 기해(己亥)년 음력 시월 스물 사흘 날이 아버지 송명거사(松明居士) 화갑(華甲)일이었다. 이미 전날부터 사돈(査頓)들까지 방마다 가득차고, 친척들은 열흘 전부터 이웃집 방까지 빌려서 먹고 자고 하였다. 그때는 그랬다. 아버지 회갑이 대연회가 되었다. 송아지와 큰 돼지 한 마리도 이미 잡았고, 국수와 떡, 술, 감주 등 모든 준비와 동네 그릇 계에서 빌려온 그릇이 산더미 같다. 이미 불국사역전의 로터리사진관 김 사장님도 미리 와 있었고, 동네 사물놀이패들이 아침부터 분위기를 돋우었다.

 아랫동네 윗동네에서도 논둑길로 흰옷 입은 부부들은 쌍쌍이 줄지어 골골이 모여든다. 아낙은 단지 째로 술과 감주를 이고 오고, 남정네들은 청주를 대병으로 들고 온다. 큰집과 작은 집, 우리 집 췌객들이 줄줄이 모여 들어 마당에 그득하다. 마당에는 흰 광목천막이 쳐 있었고, 멍석이 마당에 깔려 있다.

 당시 시골 무명인의 회갑이지만 주변 관공서에 근무하는 분도 넥타이 매고 양복차림으로 그득히 들어선다. 또 마을 유지들도 평상복이 아닌 차림새로 자전거 몰고 와서 집 앞 밭에는 임시주차장으로 즐비하게 주차한다.

 마당 가장자리에서는 부조기(扶助記)하느라고 우리 동네 서기분이 붓을 들고 부지런히도 기록하신다. 기록이 재미있다. 번호 쓰고, 이름 쓰고, 본동 주류 일두(斗) 등으로 기록한다. 나는 어려서 본동이 무슨 뜻인지 잘 몰라 서기님에게 여쭤 보았다.

“고놈 참! 별걸 다 묻네. 그래 본동(本洞)은 ‘같은 동네’라는 뜻이다.”

“하하하. 같은 동네시래.”

 본동, 본동! 아 맞다! 우리 동에 어르신 택호 중에 본동댁(本洞宅)이 있지. 같은 동네에서 결혼하였기에 본동댁이로 구나. 하하하. 그것 참 재미있는 말이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자 해지기 전에 사진 촬영하여야 한다고 아버지, 어머니 먼저 찍고, 가족사진 찍는 데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시골이라 뒤 배경 가림으로 뒤에서 머슴들이 병풍을 들어 주고 사진을 찍었다.

 오후가 시작되자 본격적으로 사물놀이패들이 어울리기 시작하였다. 지잉! 콰르릉, 땍∼때데∼닥∼딱! 소고소리가 시작되면 어찌 그리 신명나 하는지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대연회 회갑연이 베풀어졌다.

 마침내 아버지, 어머니를 형님과 매형들이 차례로 업고 마당에서 춤을 추었다. 어린 나로서도 잊지 못하는 아버지 회갑잔치이었다. 오후 늦게 시작하여 밤이 캄캄하도록 징, 장고, 꽹과리, 소고로 땅이 내려앉으라는 듯이 떠들고 육자배기 노래를 하고 지신을 밟고 축가(祝歌)를 한다.

 당시 짧았던 평균수명에 회갑까지만 살아도 잘 살았던 시대이었다. 할아버지는 쉰아홉에 백부 겨우 예순에 회갑은커녕 살아남으시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러니 예순한 살까지 살아남는 다는 것이 행운 자체이었다.

 누구나 돌아가는 톱니바퀴에서 인간은 한번은 죽고 마는 것이다. 죽음은 왕후장상(王侯將相)이라도 통과하지 못한다. 죽기 전에 통과의례에 따른 회갑을 한다는 것이 큰 잔치임에 틀림없었다.

 요즘은 먹고 살기에 나름대로 건강을 구가하고 살 수 있는 것만 해도 행복의 시대인 것이다. 당시 아버지 예순하나의 연세로 사신 것이 바로 장수의 시작이었다. 그 후 아버지는 일흔다섯에 돌아 가셨다. 화갑에서 수(壽)를 14년을 더 넘기시었다. 󰃁

(푸른 숲/20100-20130326.)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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